송하슬아 논설위원, 작가·컨텐츠 기획자

송하슬아 논설위원
송하슬아 논설위원

12월 첫째 주, 부산에서 큰 규모로 열린 북페어(Book Fair, 온갖 책을 모아 벌여 놓고 전시·판매하는 행사) 현장에 다녀왔다. 9~10일 전국 곳곳에서 250개 팀의 창작자와 독자가 부산 서면 상상마당 KT&G 행사장에 모여 개최한 제1회 마우스 북페어다. 북페어는 행사 규모에 따라 참가 팀의 수가 결정되고, 창작자는 고유한 콘텐츠를 맘껏 펼쳐 보이는 자리다. 내 나이 또래나 엄마뻘 되는 얼굴 혹은 앳된 얼굴, 아이 엄마부터 전업 작가, 회사원부터 유명 작가까지 ‘창작자’라는 자격 아래 넓은 스펙트럼의 참가자들과 마주쳤다. 이들이 선보이는 다양한 책이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당연히 눈여겨볼 것은 북페어의 책들이다. 이른바 독립출판 분야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포털의 정의를 빌리면, 기존 출판사와 유통망을 활용하지 않고 개인이 출판의 전 과정에 직접 참여해 책을 세상에 내놓는 방식을 말한다.

제1회 부산 마우스북페어 설치 현장. 사진 송하슬아.
제1회 부산 마우스북페어 설치 현장. 사진 송하슬아.

“안녕하세요~ 제가 쓴 책들 편하게 둘러보세요.”

필자는 ‘(과거) 경험을 책으로 만든 (출판) 경험’을 갖고 있다. 독립출판 제작자 자격으로 이곳에 머무르며, 이틀간 100번은 족히 넘게 첫인사를 반복했다. 내가 직접 엮은 이야기를 들고 이 책을 가장 잘 아는 내가 전문가라는 자신감도 어깨에 둘러 꼿꼿하게 섰다.

책 속 문장을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고, 내 생각을 그대로 적었다며 순수한 감탄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쉽게 지갑을 여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의 눈 맞춤에서 빠져나와 슬쩍 가버리는 사람이 더 많았는데,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내 것을 신나게 소개하는 자체로도 신이 났기 때문이다. 북페어에 나가는 재미는, 책을 만들어본 입장에서 독자의 피드백이 바로 이뤄지는 경험으로 확장되는 순간에 있었다. 

  무슨 소재, 어떤 내용으로 책을 만드나. 생활 속의 모든 것이 다 책이 될 수 있다.
  무슨 소재, 어떤 내용으로 책을 만드나. 생활 속의 모든 것이 다 책이 될 수 있다.

“이런 것도 다 책이 되나요?”

독립출판물은 에세이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그 외 잡지, 소설, 시집, 그림책까지 다양한 종류를 갖췄다. 작가 개인의 일기에서 식물 그림을 담은 그림집까지 소재와 내용 면에서도 매우 다채로운 편이고, 인쇄 부수가 매우 적어 희소성의 가치가 있다. 신선한 날것 문장이 많다. 정제되고 다듬어진 결과물인 기성 출판물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독자에게 마음을 콕콕 찌르는 신선한 자극을 준다.

기성 출판업계에서 스타 작가의 뛰어난 판매 기록은 나와 접점이 크게 없어 보인다. 그에 비하면 독립출판 책은 취향 맞춤이 많다. 책 속의 글이 마치 내 머릿속을 투영한 듯 생생하게 읽힌다.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도 빛나는 문장들이 숨겨져 있다. 모험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1년 중 한정적으로 열리는 북페어 말고도 동네 책방을 꼭 한 번 찾아가 보기를 추천한다. 실제로 기성 출판물에 비해 실험적인 콘텐츠가 많고 수집하듯 취향에 딱 맞는 책을 캘 수 있다.

부스에 펼쳐놓은 필자의 출판물.
부스에 펼쳐놓은 필자의 출판물.

10여 년 전부터, 출판업계가 이미 기울었다는 뉴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독립출판의 입소문’에 머리를 긁적거릴 수 있다. 2023년 13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회조사결과’에 따르면 독서 인구는 48.5%로 나타났다. 2명 중 1명만 책을 읽는다.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전국의 독립서점은 약 800여 곳이다. 매년 증가했고 전년 대비 20% 성장했다. 책을 읽는 것에서 나의 경험을 이야기로 적고 책을 내는 예비 제작자의 수요가 꽤 많다는 점은 종이책의 위기설이 모순적으로 들린다.

대형서점과 다른 매력의 독립출판물은 취향과 경험에 돈을 지불하는 책 소비문화에 있어 의미가 있다. 지난 주말 부산의 독립출판 북페어는 책을 만든 사람, 책을 사(읽)는 사람, 책을 파는 사람들로 이틀 내내 공간이 가득 찼다.

나의 책을 지나쳐 가는 관람객들 사이로, 이웃 창작자들과의 관계는 끈끈하게 연결될 수 있었다. 긴 글을 꾸준히 써본 습관, 출판을 목적으로 글의 짜임새를 구성했던 일, 종이의 질감과 재질을 일일이 비교해 본 경험, 인쇄소에서 책을 무사히 받았을 때의 안도감, 북페어 신청 결과를 문자로 받았을 때의 기쁨까지. 평소 주변 사람에게 꺼내지 않던 제작 과정을 ‘창작’이라는 공통 주제를 갖고 커다란 말풍선을 띄웠다.

무궁무진한 콘텐츠 홍수 속에서 기꺼이 책을 선택하고 책을 만들어 본 독립출판 제작자들의 자리에는 깊은 공감대가 있었고, 다양한 삶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과 삶을 연결하는 종이 책시장이 더더욱 없어져서는 안 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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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독립출판으로 3권의 책을 냈다. 여행 에세이 ‘뭘 이런 걸 다(2020)’, 오기분투 에세이 ‘망하려고 만든 게 아닌데(2022)’, 서울형 로컬 페이퍼 ‘캐면 캘수록(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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