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우현 논설위원, 한불협회 회장, 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전 숙명여대 객원교수

손우현 논설위원
손우현 논설위원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영화관에 다녀왔다. 지난달 개봉하여 화제가 되고 있는 영국의 거장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86)의 신작 '나폴레옹'을 보러 간 것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내 기대와는 달랐다. 유럽을 호령하던 영웅 나폴레옹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한 여인에게 정복당해 왜소해진 패장이 “프랑스, 군대, 조세핀”이라는 말을 남기고 귀양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다. 그런데도 영화관은 만석이었다. 리들리 스콧은 ‘블레이드 러너’, ‘델마와 루이스’, ‘블랙 호크 다운’, ‘글래디에이터’ 등을 제작한 감독이다.

전쟁의 천재이며 프랑스 국력의 전성기를 가져왔던 나폴레옹의 신화는 1000종이 넘는 그에 관한 저술과 영화(TV 드라마 포함)가 보여준다. 전 세계 위인 중 기록이다. 19세기 영국의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은 “역사는 위인들의 전기이며 그중에서도 나폴레옹이 당대의 으뜸가는 경탄의 대상(our chief contemporary wonder)”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스콧 감독의 '나폴레옹'은 기존의 위인전과는 달리 우상 파괴적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영불 간에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 매체들은 "장대한 대서사시" 등 호평 일색인 반면 프랑스 매체들, 특히 우파 매체는 "친영·반프랑스적 영화"라고 비난하며 사실 왜곡도 지적하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영화계의 웰링턴’인 스콧이 관객을 형이상학에 가두지 않으며 장관의 즐거움을 제공한다고 논평하고, 나폴레옹 역을 맡은 미국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가 압권으로 부르고뉴 와인처럼 향이 풍부하다며 별점 5개를 매겼다.

일간 더 타임스도 "눈을 뗄 수 없는 장대한 대서사시에 배우들의 화려한 연기가 등장한다"며 별 4개를 줬고, 영화 잡지 엠파이어는 "나폴레옹에 대한 스콧의 재미있고 그럴듯한 해석"을 높이 평가했다.

한편 프랑스의 우파 성향 르 피가로TV는 특집 대담에서 이 영화는 역사영화라기보다는 오락물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또 나폴레옹 역의 피닉스(49)보다 열네 살 연하의 영국 배우 버네사 커비가 조세핀 역을 맡았는데 이는 잘못된 배역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는 조세핀이 나폴레옹보다 여섯 살이나 연상이었다. 또 나폴레옹법전 등 주요 업적이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적시했다.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나폴레옹 전기 작가인 파트리스 게니페는 우파 성향 시사주간지 르푸앙(Le Point)과의 인터뷰에서 스콧의 ‘나폴레옹’은 "매우 반프랑스적인 영국인의 영화"라고 혹평했다. 게니페는 "영어를 하는 나폴레옹, 도처에 나타나는 조세핀, 무계획적인 전쟁 등은 나폴레옹을 수상쩍은 인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중도좌파 성향의 르몽드는 이 영화가 정치적인 문제는 배제하고 나폴레옹의 내밀한 애정 생활에 중점을 두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스콧 감독은 이 영화가 역사물이 아니며 전기 영화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실 나폴레옹의 대서사시를 한 편의 영화에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영화에서 스콧은 프랑스대혁명, 나폴레옹의 등극과 전쟁 등을 듬성듬성 다루면서 마마보이이자 전쟁터에서 조세핀에게 편지를 쓰는 순정파였던 인간 나폴레옹을 조명하고 있다.

미 컬럼비아 대학 역사학 교수 마크 마조워(Mark Mazower)는 뉴욕타임스에 실린 '나폴레옹’ 영화평에서 나폴레옹이 전설에서 왜소한 인물로 전락한 것은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나폴레옹 같은 한 천재가 역사의 주역이 되어 정치 사회적인 변혁을 가져오던 시대는 지났으며 오늘날 사람들은 그런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리더십의 모델은 전쟁터가 아니고 부(富)를 창출하는 기업의 임원실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튜브에는 몇 개월 전부터 세인트 헬레나섬에서 유배 중인 나폴레옹의 밈(meme)이 올라와 있다. 이 동영상의 제목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There is nothing we can do.)’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고 말한 것이 나폴레옹 아니었던가? 그러나 마조워 교수는 “오늘날 우리에게 공감을 주는 나폴레옹은 바로 이 밈의 나폴레옹이다.”라고 주장한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큰 논란의 대상 중 하나다. 정치적 이념에 따라 그를 보는 시각이 확연히 달라진다. 우파는 그를 나폴레옹법전을 편찬하고 중앙은행을 설립했으며 고등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근대 국가의 기틀을 세우고 국력을 신장한 영웅으로 추모하는 반면, 좌파는 노예제를 부활시키고 민법상 여성을 차별한 독재자이자 전쟁광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1970년대 평화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 프랑스 좌파 정권은 나폴레옹 지우기에 나섰고, 우파 정권은 나폴레옹이 상징하는 국가 권위, 질서 등 보수의 가치와 ‘위대한 프랑스’ 되찾기 운동을 전개했다.

2021년 5월 나폴레옹(1769~1821) 사망 200주년을 맞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일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 묘역을 찾아 헌화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연설에서 “나폴레옹은 우리의 일부”라며 “현재의 법으로 과거를 재단하지 말고, 역사를 직시하고 전체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폴레옹 사망 200주기 행사는 찬양이 아닌 ‘계몽된 기념’이 되어야 한다”며 “교육, 법전, 국가 건설 등에서 쌓은 공적과 함께 노예제 부활 등 과오를 모두 껴안아야 한다”고 했다.

한편 르 피가로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프랑스인의 72.19%는 나폴레옹을 흠모(admiration)한다고 응답한 반면 27.81%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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