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논설위원, 가천대 명예총장

이성낙 논설위원
이성낙 논설위원

근래 강남 사거리를 지나가다가 넘쳐나는 이런저런 조잡한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대부분 정당에서 내건 온갖 주장이 담긴 현수막이 앞다퉈 걸려 있었습니다. 꼴불견이기는 여야(與野)가 다르지 않습니다. 1년 전에도 바로 그 자리에 정당의 현수막이 빼곡하게 걸려 있던 기억이 납니다. 평상을 훨씬 넘는 저질스럽고 사회악에 가까운 우리의 본모습을 보는가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고작 이런 수준인가?’라고 생각하며 매우 심란(心亂)하였습니다. 

잡다한 광고물이 시야를 어지럽게 한다. (1990년대 초 개인 촬영)
잡다한 광고물이 시야를 어지럽게 한다. (1990년대 초 개인 촬영)

1990년대 초 교외에서 현수막과 크고 작은 홍보물이 더덕더덕 붙은 흉측한 건물을 보면서 긴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 건물 옆을 지나다니는 청소년의 머릿속에 서서히 각인될 상(像)을 두고 염려하던 기억이 납니다.

더더욱 놀라웠던 것은 홍보패널이 ‘겹외벽’처럼 둘러싼 곳은 다름 아닌 교회당 건물이었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 30여 년 전의 모습입니다.

결국 홍보물을 덮어쓴 교회당이나 강남 사거리에 널려있는 대형 현수막 사이에는 변화를 바라는 열망 또는 사회적 공감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무겁고 복잡했습니다.

필자는 거리의 현수막이나 건물 외벽의 난잡하고 무질서한 홍보물 문제는 국회의사당에서 펼쳐지는 난잡상(亂雜像)과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여, 이제 더는 방관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수막 문제는 한 지방자치 단체가 나서서 해결책을 모색하여야 할 단계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현수막을 둘러싼 거대 생태계가 분명 조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민심’이 무서워 어느 지자체장이 앞장설 수가 있겠습니까? 결국 전국 단위에서 해결책을 모색하여야 할 단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앞장서면, ‘투표 민심’을 너무 의식하는 나머지, 소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전국 지자체장이 한목소리로 발의하고 정부 차원에서 문제 해결에 힘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황제거리(Kasierstrasse)’, 건물 창가에 홍보물이 안 보인다. (자료: Google에서 캡처)
독일 프랑크푸르트 ‘황제거리(Kasierstrasse)’, 건물 창가에 홍보물이 안 보인다. (자료: Google에서 캡처)

 

유럽 문화권의 여러 나라에는 관련 협약이 있어 건물 외벽에 홍보물을 부착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합니다. 고층 건물 2층 높이 위로는 홍보물을 유리창에 부착하는 것을 엄히 금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취리히, 파리, 런던, 프랑크푸르트 같은 도시의 건물 2층 이상 창문에는 그 어떤 홍보물도 붙어 있지 않습니다.

오래전, 독일에서 동료의사의 개원을 축하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의 개업을 알리는 홍보물의 크기는 고작 B4 용지’(364mm x 257mm) 크기의 Messing 철판 3개를 부착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병·의원의 창마다 무슨 전문 병·의원이라고 홍보할 터인데 말입니다.

그런 가운데 한 예외 경우를 보았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중심가인 황제거리(Kaiserstrass)에 자리한 빌딩 8층 높이 창에 ‘한국여행업’을 한다는 홍보물이 붙어 있었습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 가도 샌다.”라는 우리네 속담이 생각났습니다.

빌딩 외벽이 잡다한 광고물로 혼란스럽게 장식되어 있다.(경기도 성남시) 사진: 개인 자료
빌딩 외벽이 잡다한 광고물로 혼란스럽게 장식되어 있다.(경기도 성남시) 사진: 개인 자료

필자는 중소 도시에 널려있는 4, 5층 건물은 아마도 개인 소유자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건물 외벽이 홍보물로 뒤집어쓴 경우가 너무 많고도 많습니다. 분당지역(경기도 성남시)의 비교적 평면 면적이 넓고 큰 5층 건물도 외벽이 온통 광고물로 덮여있습니다. 명품 미술작품에 ‘개칠’이라도 한 듯이 말입니다. ‘차라리 그 비싼 외장재를 쓰지나 말 것이지’라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온 건물이 ‘광고물 외투’를 걸쳐 입은 듯해서입니다.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는 지식재산권 개념도 없는가 싶었습니다. 건축 정신의 중심인 예혼(藝魂) 없이 끄적끄적 설계도면만을 그려주는 사이비 건축가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자신의 작품이 그렇게 철저하게 농락당하는데도 먼 산 보듯 처신할 수 있겠느냐고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대한건축사협회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유관 단체가 지식재산권과 관련하여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하는지 궁금하였습니다. 건축사협회가 회원끼리 친선만을 도모하는 기구가 아닐 텐데 말입니다.

필자는 서울의 명품 건축물인 힐튼(Hilton)호텔이 지은 지 몇 년 되었다고, 헐린다는 소식을 듣고 허탈해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참조, <헐리는 힐튼호텔에 부치는 조사(弔詞)>, 데일리임팩트, 2022.02.26.) 당시 수동적이기만 하였던 국내 건축계를 지켜보며, 고개를 갸우뚱하였습니다. 실망이 컸습니다. 의사인 필자가 그와 비슷한 행위를 하였다면, 아마도 분명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윤리위원회에 논의 안건으로 넘겨졌을 사안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우리네 상상력을 훌쩍 넘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왠지 떨떠름하면서도 자부심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언행도 그에 걸맞아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드는가 봅니다.

한 나라의 국격을 상징하는 국회의사당에서 횡행하는 부끄러운 언행은 더는 방관할 수준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도시의 현수막 공해나 건물 외벽에 난잡하기 그지없이 전시된 각종 홍보물도 정비가 시급한 지경입니다.

옛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시점에 차분히 생각해봅니다. 새해 갑진(甲辰)년, 용띠해에 걸맞은 작지만 큰 사회적 의미를 가진 ‘생활문화혁명’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소망을 연말에 즈음하여 부치면서, 이제 혼잡하고 저질스러운 우리네 사회풍토도 끝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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