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신구대 식물원 원장

전정일 교수
전정일 교수

올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를 하나 꼽으라고 하면 다른 분들께서는 어떤 단어를 꼽을까 궁금해진다. 가슴 아프지만, 필자는 ‘부족(不足)’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돈다. 출생아 수가 ‘부족’하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얘기이고 그러다 보니. 몇 년 전부터는 각급 학교에 학생 수가 ‘부족’하다는 것을 걱정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방을 담당할 군 병력 자원까지도 ‘부족’하다고 걱정해왔다.

인구 부족을 얘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올해 들어서는 언제부터인가 국가에 세수가 ‘부족’하다는 뉴스가 크게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다양한 국면의 ‘부족 상황’을 볼 때, 현재 대한민국은 한마디로 ‘부족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국가 살림살이가 이러하니 공익사업을 수행하는 각급 식물원과 수목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공립 식물원•수목원들은 직접적으로 예산을 줄여야 하는 어려움에 부닥쳤겠지만, 사립 식물원•수목원은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그간 사립 식물원•수목원들은 국가로부터 직접적 지원을 받지는 못하지만, 국가가 해야 하는 사업 일부를 위탁받아 수행하면서 일부 운영비에 도움을 받아왔다.

그랬던 사업들이 내년에는 대부분 폐지되었다는 충격적 소식이 얼마 전 전해졌다. 재정적으로 취약한 사립 식물원•수목원들에는 그간 그 적은 수입이 큰 마중물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국가 위탁사업의 폐지는 엄청난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식물원 재정 운영의 한 축이 무너진 꼴이 되었기에 내년도 운영 계획을 어떻게 수립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부족한 환경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말 못 하는 식물에 묻는다. 식물이 살기에 환경 조건이 부족한 대표적인 장소가 습지이다. 얼핏 보기에 습지는 식물이 살아가기에 좋은 환경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이 많다는 것 때문에 식물이 살기에 좋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항상 물에 잠겨있다 보니, 식물 뿌리가 호흡할 수 있는 산소가 부족하다. 또, 유기물 분해가 잘되지 않아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양분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토양이 염기성으로 변해 무기물 흡수도 저해된다.

​습지에 살면서 부족한 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포충엽(捕蟲葉)을 발달시킨 사라세니아(Sarracenia leucophylla Raf).​
​습지에 살면서 부족한 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포충엽(捕蟲葉)을 발달시킨 사라세니아(Sarracenia leucophylla Raf).​

그런데, 이렇게 살기에 좋지 않은 습지에 정착해서 사는 다양한 식물을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식물이 사라세니아와 같은 식충식물(食蟲植物)이다. 많은 식충식물은 습지에서 사는데, 뿌리로부터 양분을 흡수하는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부족한 양분을 보충할 수 있는 특별한 기관을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즉, 잎과 같은 식물의 기관 일부를 변형시켜서 곤충을 잡고 분해하여 물질을 흡수함으로써 부족한 양분을 보충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식물 한 개체를 보면 ‘부족’은 결국 죽음으로 분명하게 연결된다. 그러나 식충식물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식물 종의 진화 측면에서 바라보면 조금 다른 사실, 그러니까 부족함이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경을 바꿀 수는 없으니 자신을 바꿔서 부족한 양분을 보충하는 포충기관(捕蟲器官)을 발달시킨 식충식물이 정말로 위대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식물원•수목원은 어떻게 해야 이렇게 부족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아직 정답은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식충식물이 뿌리로부터 양분을 흡수할 수 없으니 잎을 변형시켜 곤충을 잡듯이, 식물원•수목원 운영에 필요한 재원 확보 방법을 다양하게 찾아야 할 것이고 직원들의 역할도 많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아픔도 있을 것이 분명한데, 그것도 함께 이겨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이 이렇게 부족한 환경에서는 조직뿐만 아니라 개인도 영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각자 부업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그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지만,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활동이 필요한 것 같다. 더 좋은 직장으로 옮겨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것이 아니라, 업무 효율을 높여서 조직의 발전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취지이다. 새로운 배움을 위해 퇴근 후 학원을 가거나, 주말에 자격증 공부를 위해 온라인 강의를 듣는 등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이 조직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한 개인의 노력을 조직이 마음만으로라도 지원할 때, 그들이 성공적으로 조직의 발전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맞이한 부족함과 어려움을 계기로 우리나라 사립 식물원•수목원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일하는 많은 사람이 조직과 개인의 혁신을 이루어 새로운 성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한편으로, 사립 식물원•수목원들이 공익사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지원을 기대해본다. <다음 글은 12월 28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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