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요즘 대학가는 종강하랴 기말시험 보랴 분주하기 이를 데 없고, 수시 전형에 편입시험에 정시 모집까지 이름도 다양한 입학 업무에 주말도 없이 북적댄다. 이 와중에 의외로 여유롭고 조용한 공간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직장생활 20년을 훌쩍 넘긴 제자가 1년 무급 휴가를 받고 오랜만에 학교 도서관을 찾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가방도 짐도 모두 사물함에 넣고 공부할 거리와 몸만 달랑 들어갔는데, 지금은 아무런 제약 없이 출입이 가능한 데다, 푸근한 조명에 품위 있는 안락의자까지 갖춰져 있어, 도서관이 아니라 누군가의 거실에 초대받은 느낌마저 든다는 것이다. “한데 학기말 시험이 한창인 지금 예전 같으면 도서관 자리 차지하기도 힘들 시기인데, 요즘 학생들은 도대체 어디서 공부하나요?” 하고 물어왔다.

나도 새삼 궁금해져서 답을 찾다가 ‘스카족’을 마주하게 되었다. 스카족이란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는 요즘 세대를 지칭한단다. ‘얼죽아’가 얼어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집한다는 뜻임을 배운지 얼마 안 되었는데, 또 새로운 단어가 불쑥 등장했다.

그러고 보니 또 옛 생각이 고개를 든다. 초등학교 시절, 새 학년이 되면 담임 선생님이 학생생활 실태조사라는 것을 했다. “집에 자가용 있는 사람?”을 시작으로 피아노 있는 사람, TV 있는 사람, 전화기 있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할 때마다 주위에서 손이 하나둘씩 올라가면 모두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집에 공부방이나 자기 책상 있는 사람?”도 단골 질문이었는데, 형제자매가 5명인 데다 공부방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기에, 공부방 있다던 친구가 유독 부러웠던 기억도 생생하다. 어린 마음에 공부방만 있으면 정말 공부를 더 잘할 줄 알았는데...

이제 세월이 흘러 자녀는 하나 아니면 둘만 낳는 데다, 웬만한 형편이면 아이들 공부방이 있을 법한데, 요즘 아이들은 자기 집 멀쩡한 공부방 놔두고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한다니 얄궂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기야 10여 년 전 성수동에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하고 보니, 입주민 자녀만을 위한 독서실을 따로 운영한다는 공지문을 보고 신기했던 적도 있다. 변변한 자기 방 하나 없던 세대로선 훌륭한 자기 방 놔두고 공부는 굳이 독서실에서 하는 심리가 무엇일까 여간 궁금했던 것이 아니다.

스터디 카페는 독서실이 진화한 형태인 것 같다. 다소 답답한 독서실 분위기를 탈피하고 차 한 잔 마시며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카페 분위기를 접목했다고나 할까. 한데 최근 대학가에서 학생들이 선호하는 공간은 스터디 카페에서 한 걸음 더 진화해서, 항공사 고객 라운지 스타일이라고 한다. 실제로 대학 내 곳곳에는 학생들이 편안하게 쉬면서 자신들의 시간을 보내거나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두고 있다.

2020년대 학번을 관찰하노라면, 확실히 공부와 휴식의 경계가 상쾌하게 사라진 듯 보인다. 쾌적한 공간에서 편안한 소파나 안락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 차 한 잔 앞에 놓고, 노트북을 켠 채 시시각각 움직이는 화면을 감상하거나 이어폰을 꽂은 채 음악에 젖곤 한다. 때로는 인터넷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치기도 하고, 쇼츠 혹은 숏폼이라 불리는 1분 정도의 동영상을 쉴새 없이 돌려보며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리포트는 챗GPT에게 맡긴 채 유유자적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딱딱한 책상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벽에 붙은 구호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을 외치던 기성세대 모습과 너무 대조되지 않는가.

다만, 자기 집 공부방을 나와서 스터디 카페나 열린 공간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젊은 세대를 보자면, 저마다 누군가의 관심이나 간섭을 배제한 채 홀로 있지만 나 아닌 타인의 존재를 통해 오히려 안도감에 빠지는 듯한 것이 생경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감정을 주고받는 몰입적 관계보다는 치고 빠질 수 있는 네트워킹을 선호하는 현대인답게, 홀로라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되 고립은 사양하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오래전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 1909~2002)이 주장했던 ‘고독한 군중’ 속 타자지향적 인간, 그러니까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인간형의 한 자락을 보는 것만 같다.

이 시대 대학생들은 얼리 어댑터답게 과학과 기술의 변화를 재빠르게 수용 중이건만, 대학가에서 유독 변화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아직도 불수능이냐 물수능이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과의 문과 침공이 시작되었다고 호들갑을 떨며, 학원 배치표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걸고 보는 시대착오적 입시 관행이 그 주인공인데, 이 또한 변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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