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논설위원, 전 한국일보 심의실장

정숭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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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민청’을 만드는 걸로 자신의 능력과 운을 국민에게서 판단 받으려 한다고 보는 시사 평론가들이 꽤 있다. 내년 총선 출마를 희망하는 장관 6명을 내보낸 지난 4일의 개각에서 빠진 그는 이틀 뒤인 6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정책 의원총회에 등장해 의원들에게 이민청 설립 계획을 설명했다. 25분쯤 계속된 그의 설명은 “우리 정부와 국민의힘은 미래를 정교하게 대비하는 사람들이고 국가와 국민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말로 끝났다. 평론가들은 그의 이날 정책의총 등장을 “총선 출마 선언이 확실한 그가 이미 확인된 자신의 스타성을 최대한 더 이끌어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한다.

한 장관은 지난 7월 15일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제46회 대한상의 제주 포럼’에서 이민청에 대한 생각을 일반에 공개한 바 있다. 500여 명의 기업인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그는 이민청이 왜 필요한지,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 이 기관이 한국과 한국인의 미래에 가져올 효과는 무엇이며 부작용은 무엇인지, 효과는 극대화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민청과 관련해 취임 후 1년 반 동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상세히 설명했다. 40분 동안 계속된 그의 설명은 이런 내용이다.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강연하는 한동훈 장관. 법무부 유튜브 캡처.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강연하는 한동훈 장관. 법무부 유튜브 캡처.

1.2047년이면 대부분의 지방은 소멸하고, 2100년에는 인구가 2000만 명으로 줄어든다. 수요도 없고 공급도 못 해 나라 경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2022년 기준 0.76명에 불과한 내국인의 출산율을 끌어올리기는 지극히 어려운 실정이므로 외국인에 대한 한국 이민 문호를 활짝 열어젖히지 않으면 안 된다.

2.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이민을 먼저 받아들인 국가가 이민정책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체계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합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노동력 공급이라는 문제로만 접근했기 때문에 이민자와 내국인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고 깊어졌다.

3.한국은 유럽 국가들의 실패담을 거울삼아 이민정책을 추진하면 이런 갈등을 미리 막을 수 있다. 후발국의 장점을 살리자는 거다.

4.현재 한국의 이민정책은 법무부(출입국과 비자 문제), 노동부(외국인 노동), 여가부(다문화가정)가 분야별로 따로 관장하고 있어 효율적이지 못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느 부서의 책임인지 따질 수 없는 체제이니 어느 부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습성도 뿌리 깊다. 이민청을 만들어 이민정책의 컨트롤타워로 삼아야 한다.

5.현행 이민비자(E-9비자)는 10년까지만 한국 체류를 허가하고 있어 10년이 지나면 불법체류자가 되거나, 떠나기 전까지 어떻게든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해 이민자들에게 한국에 대한 애착 혹은 충성심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이들에게 열심히 일하고 자발적으로 한국에 기여한다면 10년 이상 체류가 가능하고 가족을 초청할 수 있는 장기취업 비자(E-7-4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또 이들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억 원을 투자하면 영주권을 주는 현행 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돈으로 영주권을 받은 사람과 열심히 일하면서 한국에 동화하려는 노력으로 영주권을 받은 사람 중 누가 더 한국에 기여한다고 보는가?

6.숙련 근로자, 고소득 이공계 인재들이 한국에 정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건 아니라고 본다. 고급인력이 한국을 외면하는 것은 현행 제도로는 이들도 장기체류가 보장되지 않는 E-9비자로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고급 인력에게는 가족 동반 이민을 허용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세계적 IT기업이 있는 한국이다. 한국은 IT가 산업과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을 뿐 아니라 문화/예술적 기반도 높다. 이미 세계가 인정하는 매력 있는 나라 한국에 고급 IT, 고소득 전문직 인력이 왜 안 들어오겠는가?

7.이민자들이 한국어를 중시하도록 하겠다. 유럽국가 이민정책 책임자들을 만났더니 자기네 이민정책 실패는 이민자들을 언어로 자국 사회에 동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민자들이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기네끼리 모여 있으면 내국인들과 통합될 수 없다. 이민자와 내국인의 갈등은 여기서 비롯된다. 한국어에 익숙한 사람이 더 쉽게, 빨리 이민을 올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한국에 더 일찍 동화되고 통합을 이룰 수 있다.

이민청이 필요한 이유와 이민정책의 방향에 대한 한 장관의 설명은 여기 옮겨 놓은 것보다 훨씬 논리가 정교하고 내용이 풍부하다. 그가 중시하는 ‘팩트’를 그 특유의 화법으로 펼쳐 놓았다. “선진국 중 이민정책에서 실패하지 않은 나라도 없고 이민정책을 하지 않은 나라도 없다”, “먼저 경험한 나라들의 경험과 우리의 상상력을 결합하면 이민정책이 실패할 리가 없다”라는 말이 그런 화법의 예일 것이다. 책상에 앉아 머리만 굴려 기획한 게 아니고 국내는 물론 외국의 이민정책 현장까지 직접 보고 참고해서 만든 것이라 틀렸다고 나설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다.

하나 더, 그는 40분의 설명에서 앞의 16분을 1950년의 농지개혁의 성과와 그 과정을 설명하는 데 썼다. 한국이 초고속 성장과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여러 정책적 결정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이승만 대통령과 조봉암 농림부 장관이 설계하고 실행한” 농지개혁이라는 점을 무려 15분 동안 강조했다.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의 하나”, “소작 농민들에게 주인 의식을 심어줘 6·25에서 대한민국을 수호토록 한 결정적 역할”, “대지주 계급을 해체해 한국을 만석꾼의 나라에서 기업인의 나라로 만든 박력 있고 정교한 리더십이 국민의 지지와 이해를 만난 것” 등의 수사로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했다.

설명이 끝나기 직전 그는 다시 농지개혁으로 돌아가 “혁신적이고 공공성이 있는 선의의 정책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이민청 신설, 이민정책의 획기적 개선은 70년 전의 농지개혁에 못지않은 역사적 결정이 된다는 확신을 에둘러 말하는 것 같았다. 이민청을 정치적 포부나 희망, 선거 승리용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사명으로 삼은 듯하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이승만과 조봉암이 농지개혁으로 후세의 평가를 받고 있는 것처럼 자신도 이민청 설립으로 한국의 역사를 바꾸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역할이 농지개혁에서 조봉암이 맡은 기획자 역할로 국한되더라도 후세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읽혔으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법무부는 연내 당정협의를 마무리하고 의원 입법 형식으로 이민청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통과는 될지, 통과된다면 그게 언제일지, 통과 과정은 순탄할지, 야권은 어떻게 반박하고 그는 어떻게 대응할지 등 여러 가지가 궁금하다.

또 연말이 될지, 내년 1월이 될지 그의 총선 출마 선언 전에 드러날 한동훈의 이민청이 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국민의힘에 등을 돌리려는 집토끼들을 주저앉히고, MZ세대와 젊은 여성 유권자들, 중도층을 과연 더 붙잡아올지는 더욱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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