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보 논설위원, 한국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 회장

민경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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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옛 부국인 아르헨티나 대선 결선투표(11월 20일, 현지시간)에서 '남미의 트럼프'라는 하비에르 밀레이가 당선되었다. 언론은 좌파의 몰락이고, 기후변화정책은 물 건너갔다고 보도했다. 우파인 그가 선거유세에서 기후변화는 거짓말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환경정책이 지금 그렇다. 우여곡절 끝에 일회용품 규제 일정을 기껏 마련해 놓더니 느닷없이 11월 7일 일회용품 관리방안이라는 걸 발표했다. 2022년 11월 24일 이미 시행됐어야 했던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등 일회용품 사용규제 계도기간을 또다시 연장하고, 전면 사용금지 예정이던 비닐봉투 사용을 자율에 맡기겠다고 한다. 이어서 나온 얘기가 황당하다. “일회용품 품목별 특성을 고려해 규제를 합리화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어려운 소상공인들의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일회용품 감량에 자발적 참여를 위함”이라고 하면서, “일회용품 정책은 자발적 참여에 기반하는 지원정책으로 전환”한다고 했다.

그동안 이런 틈새시장을 노려 플라스틱 빨대 대체품(종이, 쌀)을 개발하거나 다회용 컵 사용을 위해 세척기 등을 준비한 소상공인들은 어쩌란 말인가? 더구나 종이컵은 얘기도 없다. 종이컵 원지(原紙)는 거의 중국에서 수입해 국내에서는 가공만 한다. “모두를 만족하는 정책이란 있을 수 없다. 환경을 위해서는 희생도 해야 한다.” 등의 명분으로 그간 말 많았던 일회용품 규제 일정을 이렇게 뒤집으면 정책당국을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지난 9월 4일 UNEP INC 사무국의 ‘UN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 초안(Zero Draft) 발표를 보고도 이러는지 묻고 싶다. 협약 목표에는 플라스틱 수명 주기 전체에 걸친 오염 예방과 플라스틱의 점진적 감소와 제거를 맨 앞줄에 명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유해 화학물질과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일회용 플라스틱을 지칭) 사용을 단계적으로 신속히 퇴출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더욱이 플라스틱 감소를 위한 국가별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이행한 보고의무까지 규정하면서 보고는 목표 진행 상황에 대해 정기적이고 그리고 공개적으로 하게 했다. 국가별 계획에는 플라스틱의 단계적 퇴출계획과 인체에 대한 건강 보호 계획, 재사용과 재활용을 염두에 둔 제품 설계와 리필(Refill) 모델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제3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3)가 지난달 13~19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개최되어 협약 초안의 구체적 세부 항목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핵심 쟁점은 ‘제1항 신재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었다. 각국 정부는 앞으로 전 세계 공통의 감축 목표를 정할지, 국가별 목표만 정할지, 또는 두 가지 모두 적용할지를 두고 열띤 논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달 ‘국제플라스틱 우호국 연합(HAC)’의 북유럽 회원국 각료회의에서는 2040년까지 2019년 대비 플라스틱 생산량을 40% 줄인다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 생산량이 세계 4위(1270만 톤, 에틸렌 기준, 2021년)인 만큼 대책을 서둘러야 하는데, HAC 멤버임에도 플라스틱 생산 감축 계획 대신 폐기물처리 단계인 재활용(화학적, 열적)이나 바이오 플라스틱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2021년 재활용업계가 동반성장위원회에 제출한 ‘플라스틱 재활용사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제안이 지난해 11월 28일 중소기업은 물리적 재활용, 대기업은 화학적(열분해) 재활용으로 역할 분담되어 협약되었다. 기다리고 있던 석유화학 기업의 화학적 재활용공장이 올해 안에 착공된다. 이제 양쪽 모두 폐플라스틱 원자재 확보의 불공정 문제가 초점이 된 상황이다. 재활용은 원자재 상태가 좋아야 한다. 펠릿(Pellet) 상태면 생산성이 더 좋아진다.

머지않아 우리나라 폐플라스틱시장은 요동을 칠 것이다. 시장은 자본력으로 승패가 거의 결정 난다. 열분해(화학적 재활용) 공장에서 사용되는 폐플라스틱은 사진 가와 나 같은 A, B급 폐플라스틱을 싹쓸이할 것이다.

 사진 가. 재생 플라스틱 펠릿(왼쪽), 사진 나. 양호한 폐플라스틱.
 사진 가. 재생 플라스틱 펠릿(왼쪽), 사진 나. 양호한 폐플라스틱.
사진 다. 전남 영암 야산에 버려진 폐플라스틱(왼쪽)과 사진 라. 필리핀에 수출했다가 망신당한 폐플라스틱. *사진 출처: 구글
사진 다. 전남 영암 야산에 버려진 폐플라스틱(왼쪽)과 사진 라. 필리핀에 수출했다가 망신당한 폐플라스틱. *사진 출처: 구글

중소기업에서 세척하고 선별한 폐플라스틱도 단가를 조금만 올려주면 그곳으로 몰려가게 된다. 세계에서 문제가 되는 폐플라스틱은 나, 다 상태이다. 석유화학기업이 진정으로 폐플라스틱이 걱정이라면 C, D급 정도의 폐플라스틱을 처리해야 한다. 열분해하겠다는 폐플라스틱은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시장에서 잘 순환되고 있다.

그래서 필자가 누차 말하고 있지만, 폐플라스틱의 등급화를 국가가 정해서 수요처에 맞게 공급하는 게 플라스틱 순환의 첫발이다. 환경은 규제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A등급의 폐플라스틱으로 에너지를 투입해 기름을 짜는 것보다는 플라스틱 제품에 재활용 원자재를 품목에 따른 품질별로 재활용률을 정하고 사용하는 것이 바른 자원순환이다.

화학을 전공한 학자나 순환경제 전문가들께 물어보시라. 자원순환의 순서는 재사용- 재제조-물적 재활용-화학적 재활용-열적 재활용이라고 전 세계 교과서에 나와 있다. 그래서 미 환경보호청(EPA)이나 EU 등도 열분해가 플라스틱 소각의 다른 형태일 뿐 재활용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제 내년 제4차 회의가 캐나다에서,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완성되는 제5차 회의는 부산에서 열린다. 국제사회가 요구해온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감축, 그리고 재활용 원자재 사용 의무(2030년 30% 사용;EU·미국) 규정에 대비해야 한다.

환경은 사람이 살아가는 바탕이며 터전인데도 우파가 집권하면 환경을 도외시하고 좌파가 득세하면 친환경 정책을 하는 것이 패턴이 되고 있다. 물론 경제성장의 발목을 환경이 잡고 있다는 것일 텐데, 그래서 기업 친화 정책을 한다는 정도는 필자도 안다. 그러나 환경이 망가지고 나서 국민소득이 올라가 잘산들 무슨 소용인가?

COP28이 11월 30일부터 12월 12일까지 두바이에서 열리고 있다. 과연 기후 위기를 원인 제공한 앞마당에서 어떤 결과를 낼지 궁금하다.

*UNEP: 유엔환경계획(United Nation Environment Program)

INC: 정부간협상위원회(Intergovernmental Negotiating Committee)

HAC: 플라스틱 종식을 위한 우호국 연합(High Ambition Coalition)

COP28: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The 28th Conference of the Par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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