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논설위원, 전 KBS해설위원실장

이동식 논설위원
이동식 논설위원

우리가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파치족, 수족, 체로키족, 나바호족 등의 이름을 가진 부족들이었다. 미국의 서부영화에서 그들은 서부로 진출하는 백인들에게 쫓기어 천막을 접고 황급히 도망치다 되돌아와 백인을 습격하는 유목민처럼 묘사된다. 이런 관념은 미국인들이 서부로 확장한 18세기 이후에 형성된 지식이다. 백인들이 오기 전 미국 인디언들의 삶은 과연 어땠을까? 그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주는 유적이 미국 남서부 사막 속에 남아있다.

미국 콜로라도주 남서부에 있는 메사 베르데 국립공원(Mesa Verde National Park) 안에 그들이 살아온 유적지가 있다. 스페인어로 '초록색의 대지(臺地)‘라는 뜻으로, 207㎢에 이르는 넓은 공원 내에 인디언들의 부락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푸에블로 인디언의 선조로 알려진 아나사지 인디언들은 먼저는 평평한 대지에서, 이어서는 높고 거대한 벼랑에 생긴 움푹 들어간 공간(알코브)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공원 안에 이러한 유적지가 600개에 이른다.

광활한 메사 베르데 공원 일대(미 콜로라도주).
광활한 메사 베르데 공원 일대(미 콜로라도주).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는 절벽 궁전(Cliff Palace)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얼핏 보면 군데군데 나무가 위태롭게 붙어있는 암벽뿐이다. 골짜기 바닥에서 180m나 높이 솟아오른 곳이라 사람이 전혀 살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인디언들은 절벽에서 수평으로 튀어나온 넓적한 암벽의 밑과 틈에 돌과 진흙으로 건물을 지었다. 방이 220개나 되고, 침실과 거실도 있었다. 경사진 곳에 몇 개 층으로 만든 방은 사다리를 타고 다녔다. 그들이 중시하던 ‘키바’라 불리는 예배실도 20개 이상 갖추어져 있었다. 최소한 천 명 이상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종의 아파트단지였다.

암벽의 밑과 틈에 조성된 절벽 궁전(Cliff Palace).
암벽의 밑과 틈에 조성된 절벽 궁전(Cliff Palace).

 

아나사지 인디언들의 생활용기.
아나사지 인디언들의 생활용기.

원래 아나사지 인디언들은 서기 550년경부터 이 대지 위에서 사냥을 하고 옥수수와 호박과 콩을 경작하며 살았다. 정교한 관개 시설을 발전시켰으며, 솜씨 좋은 항아리 제조 기법도 창안했다. 그들은 땅을 약 30cm쯤 파서 바닥으로 하고 나무 기둥을 네 귀퉁이에 세워 지붕으로 만든 집을 짓고 살다가 수백 년 후엔 벽돌 모양의 돌로 집을 짓고 부락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1200년경 벼랑으로 내려가서 움푹 파진 알코브에 대형으로 집을 지어 오늘의 유적지가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집들은 벼랑 속에 자리 잡은 아파트촌이었다. 몇 층 높이로 집과 방을 만들고,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린 흔적이 남아있다.

유적지를 분석한 과학자들은 절벽을 오르내리느라 불편하기는 했겠지만 생활은 쾌

아나사지인들의 건물 축조 방식.
아나사지인들의 건물 축조 방식.

적했을 것으로 보았다. 대부분의 집은 남쪽 절벽에 있어,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을 북쪽 절벽이 막아주고, 햇볕이 잘 들어 따뜻한 데다 여름에는 골짜기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이상적인 냉난방 시스템(?)을 갖춘 건축물이라고 분석한다. 그런데 1300년경 그들은 살던 곳을 버리고 항아리며 심지어 옷까지 다 내버리고, 금방이라도 다시 돌아올 것처럼 갑자기 사라져버렸고, 그들이 살았던 곳은 오랫동안 텅 빈 채 남아 있었다. 왜 이들이 갑자기 떠났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연속되는 극심한 가뭄으로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어 할 수 없이 다른 지역으로 흩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메사 베르데 인디언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고 있다. 
  메사 베르데 인디언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고 있다. 

이 유적지는 그동안 숨어 있다가 1888년 외부로 알려지면서 유적지 유물들이 유출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국은 1906년에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1978년에는 미국에서 제일 먼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해 보호하고 있다. 아나사지라는 말은 다른 미국 원주민인 나바호족이 부르는 말로, ‘옛날의 것’이라는 뜻이며 이들의 후예가 애리조나와 텍사스 일대에 살고 있는 푸에블로족으로 믿어지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방송사의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1987년 상반기 넉 달 동안 북미대륙의 문명을 취재할 때 이곳의 존재를 알았으나 취재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이곳을 가서 미국대륙의 선주 주민인 이른바 인디언들의 삶이 이런 사막 한가운데 깊은 계곡 속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서 좀 난감해졌다. 그것은 잃어버린 고대로 갑자기 던져져, 인간들의 삶이 어느 순간에 갑자기 바뀌고 그 사회와 문명이 껍데기로만 남아있는 것을 보는 당혹감이었다. 그리고 이 유적이 우리 현대인들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나사지는 수백 년 동안 천천히 발전한 자치 사회였다. 그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과 교역을 했지만 전쟁을 한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아나사지 내에 종교적 혹은 정치적 지도자나 세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던 건 분명하지만, 그들 사이에 계급적 혹은 사회적 구분은 없었던 듯하다. 그런 평화로운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살던 곳을 급히 버리고 떠날 상황을 맞이한다.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급격한 기후나 환경의 변화에 의해 생존의 한계점을 맞아서였을 것이다.

그러한 심각한 상황이 현대라고 다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 지구 온난화로 표현되는 급격한 환경변화가 진행되고 있고, 강력한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세계는 반세기 이상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왔지만 어느새 전쟁의 위험이 높아지고 심지어는 핵전쟁까지 거론되는 상황이 되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한다는 이유로 과학이 모든 분야에 파고들어 정신까지도 지배하려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고, 지구라는 환경에 너무 갑자기 돌발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점점 높아가고 있다. 말하자면 이 문명 자체의 격변 내지는 붕괴, 즉 인류 절멸의 가능성까지도 거론되는 것을 보게 된다.

 영화 ‘혹성탈출’(1969년)의 포스터. 주연 찰톤 헤스톤.
 영화 ‘혹성탈출’(1969년)의 포스터. 주연 찰톤 헤스톤.

1963년 프랑스에서 발표된 소설을 바탕으로 1969년에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의 마지막은 원숭이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탈출한 마지막 인간 생존자들이 기껏 여행에서 도착한 곳이 물 속에 잠긴 미국 뉴욕이며 바닷물 속에 하반신이 묻힌 자유의 여신상이 그들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현대 인류문명의 끔찍한 종말을 우화적으로 설정한 것이지만 이미 반세기 이전에 인류 문명의 종말을 고민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미국 사막 속의 메사 베르데 유적을 보면서 이 영화가 생각난 것은 무슨 뜻일까? 그만큼 이 유적은 우리가 사는 오늘날의 문명을 다시 보라고 경고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미국인들에게는 역사적 유적이고 그곳 인디언들에게는 선조들의 삶의 현장이지만 현대인들에게는 이것이 어느 문명이든 뜻하지 않게 큰 변화나 충격을 받아 종말을 맞이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문명의 거울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급격한 환경변화와 인간 의식의 혼란이 예상되는 시대에 인류의 지속적 유지를 위해 우리가 처한 상황들을 다시 돌아보고 국제적으로, 범 세계적으로 대책을 함께 강구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너무 거창하거나 황당하게 보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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