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슬아 논설위원, 작가·컨텐츠 기획자

송하슬아 논설위원
송하슬아 논설위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정신건강의학과에 근무하는 정다은(배우 박보영 역할) 간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다. 11월 초 공개 직후 단숨에 OTT 시청률 1위를 찍었지만 3주도 채 안 돼 화제성을 잃은 이 드라마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타깝다.

3년 차 간호사 정다은이 정신병동으로 근무지를 이동하면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정신질환 환자들과 의사, 간호사들의 이야기이다. 정신병동이라는 ‘정상적’인 상태와 거리감이 느껴지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공시생, 사회초년생, 워킹맘 등 평범한 사람들이 환자복을 입고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등을 치료받는 공간으로 이야기를 채운다.

이 작품은 함부로 희망을 품으라며 강요하지 않는다. 쉽게 극복하라고 하지 않는다. 꽤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드라마도 작품의 결말을 위해 해피엔딩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회마다 고난에 허우적대는 주인공일지라도 마지막 회에는 극복하는 것으로 결론이 날 때가 있다. 22년 동안 제작된 ‘전원일기’라면 다소 현실적일 수 있어도 시즌1밖에 안 되는 12부작 드라마들은 삶의 연속성을 반영하는 데 당연히 한계가 따를 수밖에.

“나(극중 정신병동 간호사)는 자살을 시도했던 우울증 환자다. 그래서 이곳 정신병동에 왔다. 내가 만난 많은 환자처럼. 나는 아프다.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것을 먹고, 같은 데서 자고 있다. 난 여기서 나만이 아프지 않은 사람이라 믿었다.”

'정신병동'의 간호사 정다은(박보영 분).
'정신병동'의 간호사 정다은(박보영 분).

배우 박보영(주인공)은 밝고 귀여운 이미지를 지녔다. 그렇지만 극중 박보영은 당차고 야무지게 털고 일어나는 캐릭터라는 기대를 무너뜨린다. 남을 나보다 더 챙기고 담당 환자들에게 공감을 아끼지 않는 간호사인데, 환자를 자살로 잃고 마는 장면이 있다. 심각한 우울증과 무기력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다. 언제든 증상이 다시 돌아올 수 있어 장기간 약을 먹기 시작한다. 급기야 정신병동에 입원한 경험이 있는 간호사를 향해 환자 가족들이 신뢰할 수 없다며 치료 거부와 병원 시위까지 맞닥뜨리기도 하는데, 정신과 치료 경험자가 사회로 재적응하기까지의 현실의 막막함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또한, 이 작품은 ‘과정’을 담아서 전개 속도가 꽤 느리다. 요즘 인기 드라마는 빠른 전개와 자극적인 장면으로 화제를 놓치지 않는 적절한 포인트를 잘 알고 있다. 시청자의 마음을 쥐락펴락할 줄 아는 똑똑한 작품이 요새 참 많아졌다. 이 드라마는 느리게 진행된다. 극중 캐릭터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무대 위 핀 조명 쏘듯이 차례대로 비추면서 서서히 극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렇다고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신질환 환자의 증상이 점차 호전되는 순간에 깊게 공감이 됐다. 더욱 눈길이 갔던 부분은 환자를 돌보는 의사와 간호사의 속사정이었다. 정신병원 환자가 치료를 통해 나아지는 장면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니까. 환자들을 대하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갖고도 환자를 위해서 사는 헌신적인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면, 극중 박보영이 우울증으로 끝내 무너졌을 때, 워킹맘 간호사가 내 아이가 아플 때에도 함부로 휴가를 낼 수 없을 때가 더욱 와닿았다.

“아침에 일어나고, 삼시 세끼 잘 챙겨 먹고, 밤에 잘 자고, 이런 평범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회복이라고 봅니다. 기분이라는 건 완전히 사라질 수 없어요. 기분을 컨트롤하는 연습을 하셔야 해요.”

결국, 환자라는 필터를 벗겨내면, 평범한 일상을 기준점 삼아 ‘살아나가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나 다름없다. 일상을 회복하고 사회성을 되찾기 위해 치료를 이어가는 마음이 일시적으로 아픈 상태인 사람들이 있었다. 환자들에게 밥 먹고, 잠자고, 외출하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 치료의 궁극적 목표가 된다. 드라마를 통해 나의 실제 무난한 일상들도 결코 헛되지 않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은 12부작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은 12부작이다. 

이전보다 훨씬 나은 조건으로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에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병을 지닌 채 삶을 영위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예상치 못하게 마음의 병이 생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도 굳이 극복해보자, 이겨내자는 희망을 함부로 품게 하지 않아서 좋다. 단지 그 상황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공감하게 해주는 장면만으로도 굳어 있던 마음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 슬며시 누그러졌다.

“누구나 아플 수 있는 거예요. 치료가 길어질 수도 있고요. 원래 아침이 오기 전에는 새벽이 제일 어두운 법이잖아요. 처음부터 환자인 사람은 없고 마지막까지 환자인 사람도 없어요. 어떻게 내내 밤만 있겠습니까? 곧 아침도 와요.”(극중 정신건강의학과 수간호사(이정은 분)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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