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논설위원, 가천대 명예총장

이성낙 논설위원
이성낙 논설위원

필자가 우리나라 마당극인 탈춤에 푹 빠진 것은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역동적 춤사위는 물론이거니와 탈[가면, 假面)]이 가진 특별함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갖가지 탈의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네 탈에서는 피부 병변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피부과 전문의로서 필자는 취발이탈, 미얄할미탈, 신할아비탈, 샌님탈, 문둥이탈 등등의 이름에서 피부 병변을 어렵지 않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 경이롭기 그지없고,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입니다.

필자는 그동안 파리의 케 브랑리 박물관(Le Musee du Quai Branly)에서, 뉴욕에서, 런던에서 수많은 아프리카 민속 가면을 비롯한 다른 대륙, 다른 나라의 탈을 살펴보았습니다만, 어디서도 우리 탈에서와 같은 다양한 피부 병변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시아 문화권인 중국,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네팔 같은 나라에도 예외 없이 고유한 가면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중국의 경극(京劇), 일본의 노가쿠(能樂), 그리고 한국의 탈춤은 가면극이라는 점에서 같은 장르이면서도 그 지향하는 바가 크게 다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중국의 경극(京劇, 왼쪽), 일본의 노가쿠(能樂) 가면.​
​중국의 경극(京劇, 왼쪽), 일본의 노가쿠(能樂) 가면.​

“중국 가면극-영웅의 이야기. 주로 영웅을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 가면극 가구라(神樂)-기도하는 이야기. 신에게 올리는 제사의 한 과정으로 연행(演行)된다. 신을 형상화한 가면을 쓰고 신을 흉내 내는 가면극은 신을 즐겁게 한 보답으로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개인과 집단의 기도이다. 한국 가면극-어우러짐의 이야기. 한국의 가면극은 탈놀이라고도 한다. 일상의 고통을 잊고 일(노동)에서 벗어난 일탈과 휴식을 의미한다. ……행복한 결말을 지향한다.”(《국립민속박물관》 vol. 293. 2023. 11.) 

취발이탈(봉산탈춤)
취발이탈(봉산탈춤)
미얄할미탈(왼쪽)과 신할아비탈(양주별산대놀이).
미얄할미탈(왼쪽)과 신할아비탈(양주별산대놀이).

우리 탈춤놀이에 등장하는 몇몇 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취발이탈. 알코올 중독자인 주정뱅이로 취한(醉漢)에서 그 명칭이 붙었습니다. 그에 걸맞게 탈의 안면(顔面) 이마에 깊은 주름살이 보입니다. 

알코올 중독증상으로 인한 고름 주머니, 곧 농양(膿瘍)이 보입니다. 이마의 깊은 주름은 알코올 중독자에서 흔히 보는 피부증상입니다.

알코올중독자의 이마.
알코올중독자의 이마.

둘째, 미얄할미탈과 신할아비탈. 미얄할미와 신할아비는 부부지간입니다. 한반도 남쪽 멀리서 할미를 찾아 나선 할아비와 할미가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게 나눈 거친 대화에서 ‘양반’이 아닌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 미(米)얄일까요? 검정 피부에 주근깨(Freckles)를 간접 표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반면 남편 신할아비는 피부질환인 전신성 백반증(Vitiligo) 환자로 추정하여 봅니다.

샌님탈.
샌님탈.

셋째, 샌님탈. 태생은 양반이지만 좀 모자라는 역으로 등장합니다. 의학적 소견으로, 샌님탈에서는 토순(兔脣, 언청이)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민속학자 이두현(1924~2013)은 “양주별산대놀이의 샌님 과장(科場)에서는 남녀의 갈등보다는 양반과 평민 간의 대립 관계에 역점을 두어 …… 양반에 대한 모욕을 첨예화시키고 있다.” 《한국의 가면극(韓國의 假面劇)》 (李斗鉉, 一志社 1979)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주해: 탈의 바탕 색깔을 보면, 양반은 흰색, 서민은 검은색이다.)

넷째, 문둥탈. 나병(癩病)에서 비롯된 명칭입니다. 1950년대만 해도 서울 거리를 배회하는 ‘문둥병 환자’를 간혹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주위에서는 그런 환자를 볼 수 없고, 병명 또한 ‘한센병’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사라진 질병이고 잊힌 병명이지만, 탈춤 놀이마당에서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문둥탈과 관련해 전해오는 몇 가지 대사가 흥미롭습니다.

<수영야유(水營野遊) 제2과장>

양반: 니가 무엇 하는 물건고?

영노: 내가 날물에 날잡아먹고, 들물에 들잡아먹고, 양반 아흔아홉 잡아먹고 하나만 더 잡아먹으면 득천(得天)한다. (중략)

양반: 니가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고?

영노: 참양반이 호령을 하면 물러가겠다.

양반: 옳지! 우리 고조할아부지는 영의정이요, 우리 증조할아부지는 이조판서를 지냈고, 우리 아부지는 부마도위(駙馬都尉)요, 나는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으니 내야말로 참양반이로다. 이놈! 영노야, 썩 물러나라.

영노: 옳지, 그런 양반을 잡아먹어야 득천하겠다. (양반을 강제로 끌고 퇴장한다.)

(주해: ‘영노’는 오광대놀이, 꼭두각시놀이에도 등장하는 인물. 흉하게 생긴 괴물로 양반을 응징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 탈춤에 등장하는 각종 탈이 보이는 피부 증상은 매우 사실적일 뿐만 아니라 탈춤 마당마다 담긴 대사의 유머 감각은 감탄스럽기까지 합니다. 통영오광대(統營五廣大)에서는 한센인이 춤을 추면서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요래봬도 난(한센인) 양반이란 말야, 저 상놈들쯤이야 내 호령 한마디에 그저 허리가 굽실 쩔쩔매야 하거든.” “양반이란 참 좋은 거지, 얼씨구 좋다, 양반 좋다.”

당시 사회 저변에 자리한 계층 간 갈등을 신랄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필자는 한국 탈놀이에 담긴 각별한 의미를 봅니다.

그런데 우리 탈춤의 공통점은 1년에 한 번 고을의 지주인 양반이 놀이마당을 능동적으로 마련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연희에 등장하는 소작인 계급인 ‘농노(農奴)’가 탈을 쓰고 즉흥적인 대사에 온갖 비속어로 주인 양반은 물론, 주인마님도 거리낌 없이 야유(揶揄)한다는 사실입니다. 전해오는 녹취록을 읽다 보면 얼굴이 화끈해질 정도입니다.

우리의 마당극 탈춤에서 특기할 점은 놀이가 끝나면, 지주가 놀이마당에 등장한 주역들과 그들이 사용하였던 가면을 함께 밟아 부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고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자는 뜻으로 술을 거나하게 퍼마시며 스트레스를 확 풀었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우리네 마당놀이 탈춤이 연극적 요소를 극대화하면서 집단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추구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삶의 지혜가 오롯이 우리 옛 탈춤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회학자가 “한반도에서 이어져 온 농경사회에서 농민 폭동이 거의 없었던 것은 탈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는 사실을 곰곰이 되새기게 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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