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논설위원,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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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유 공수거(滿手有 空手去)’, 손에 가득 쥐어봤으니 빈손으로 간다는 뜻이다. 지난 9월에 별세한 이종환(李鍾煥) 삼영화학공업 창업자의 말이다. 그가 경영했던 삼영화학은 연 매출 2000억 원 정도의 중견기업, 그런데 그가 사재를 털어 만든 관정(冠廷) 이종환 교육재단은 기금 규모가 1조 7000억 원이다. 개인이 만든 장학재단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다. 설립 이래 23년간 1만1500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줬고 이 중 750명이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부분은 이공계가 전공이었는데 인문계로는 경제학이 유일하다. 이유는? 노벨상에 경제학 부문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는 우리나라 학자가 노벨상을 받기를 소망했다. 그들의 축적된 연구와 지식으로 우리나라가 더 발전하기를 바랐다. 일본이 노벨상을 많이 타 선진국이 됐으니, 우리도 노벨상을 많이 받아야 진정으로 일본을 넘어서는 나라가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그보다 더 많은 부(富)를 일군 기업인은 있어도 그보다 더 많이 베푼 기업인은 없었다. 그는 "돈 버는 것은 천사처럼 못했어도 돈 쓰는 것은 천사처럼 하리라"고도 했다. 잘 벌고 잘 쓴 그는 진정한 부자였다. 그리고 기부를 통해 부자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보여줬다.

   올해 7월 14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장학증서 수여행사.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제공
   올해 7월 14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장학증서 수여행사.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제공

지난 10월 세상을 떠난 세계 최대의 면세점 업체 DFS(Duty Free Shop) 창업자 찰스 척 피니도 기부를 통해 부자의 힘을 보여줬다. 그가 1997년 루이뷔통(LVMH)과 법적 분쟁을 벌일 때, 법정에서 공개된 회계장부를 통해 그가 15년간 40억 달러를 대학과 사회단체 등에 기부해 온 사실이 알려졌다. 그는 면세점을 통해 억만장자가 됐지만 200만 달러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자신이 설립한 자선재단 애틀랜틱 필랜스로피를 통해 대학, 병원, 미술관, 도서관 등에 기부했다. 자신의 DFS 지분을 루이뷔통에 넘기고 받은 16억 달러도 모두 자선재단에 기부했다. 그의 기부처를 보면 그가 어떤 세상을 원했는지를 알 수 있다. 건강하고 품위 있는 세상을 만들기를 꿈꿨던 이 억만장자는 방 두 개짜리 임대아파트에서 그의 모든 것을 사회에 넘겨주고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다.

얼마 전 한국에 왔던 홍콩의 영화배우 주윤발(周潤發)은 "내게 필요한 것은 점심, 저녁 먹을 흰 쌀밥 두 그릇뿐"이라며 1조 원에 달하는 재산(56억 홍콩달러)을 기부했다. 왜 두 그릇이냐는 질문에 아침은 먹지 않는다고 했다. 앞서 홍콩의 영화배우 성룡(成龍)도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기부한다고 했다. 외아들이 있지만 "능력이 있다면 재산이 필요 없고, 능력이 없다면 모두 탕진해 버릴 것"이라며 가족보다 사회를 위해 재산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세운 학교만도 21곳에 이른다. 셀럽들의 이런 기부행렬에서 우리는 어째서 홍콩이 몇십 배나 큰 중국 본토보다 더 잘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부자들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기부 DNA를 가진 착한 부자들이 사회의 주름살을 펴고 빈틈을 메우고 있다. 이들은 모두 돈을 잘 벌어서가 아니라 잘 써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기부를 촉진하기 위해 일각에서는 상속세율을 높이고 공제한도를 줄이자고도 한다. 강제적 방법이다. 그래서 기업의 주식공제한도(총 발행 수의 5%)를 규제하고 기부금 소득공제도 세액공제로 바꾸기로 했다. 그러나 돈은 정부보다 민간이 더 잘 쓴다. 그리고 권력이 돈을 만나면 반드시 부패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30년 전 신경영을 시작하면서 달동네에 탁아소를 건립토록 했다. 무슨 뜬구름 잡는 얘기인가?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달동네 부부들이 아이들을 맡길 곳이 있으면 더 열심히 일하고 몇 년이면 집을 장만할 수 있다고 했다. 달동네가 잘살면 부자들은 더 많은 득을 본다고 믿은 것 같다. 후일 이 얘기는 경영학계에서 ‘탁아소 윤리학’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부자의 힘은 이런 곳에 있다. 이건희 회장은 사후 12조 원의 세금과 1조 원의 기부를 했다. 아쉽다. 만약에 상속세 1조 원과 기부 12조 원이었으면 어떠했을까? 상상이지만 달동네는 더 환해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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