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훈 논설위원, KBSI 분석과학마이스터

이석훈 논설위원
이석훈 논설위원

세계는 지금 대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에 따른 기후 위기와 이를 억제하고자 하는 탄소중립(Net Zero)을 목표로 하는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탄소배출량 억제 정책은 환경 회복과 더불어 무역규제로 확대되어 각 국가는 에너지분야 저/무탄소 기술혁신과 산업 재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패권 경쟁을 벌이며 신냉전 시대를 초래한 미·중은 자국 내의 생산·소비 시스템만으로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기에 탄소 배출량이 세계 1·2위를 다투어도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자원도 인구도 부족한 우리는 제조업 및 수출로 경제발전을 이어가야 하므로 유난히 탄소 배출량 줄이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위기 극복을 위한 탄소중립 정책 관련 한국의 부문별 온실가스 배출량 비중을 보면 발전 37.0%, 산업 35.8%, 교통·운송 13.5%, 건물(냉난방) 7.2%, 농·축·수산업 3.4%, 폐기물 2.3%, 기타 0.8% 순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발전과 제조업 분야의 기술혁신과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교통·운송 분야에서 배·비행기를 제외한 자동차를 전부 전기자동차로 교체한다 해도 운행을 위한 전력이 필요하다. 결국 발전 분야의 비중을 늘려야 하기에 전력 생산에서 저/무탄소 에너지원에 집중해야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선진국들은 탄소중립을 위한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석탄·석유 대신 저탄소 발전원인 천연가스의 비중을 높이며, 원자력의 중요성을 재평가하여 원자력 개발에 힘쓰고 있다. 석유왕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풍력·태양광 발전이 1%에도 못 미쳐 원자력발전을 도입하고자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2011년과 2022년 한국의 에너지원별 발전 비중을 비교하면 석탄은 40.8%에서 32.5%로 전체 전력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줄었고, 원자력 역시 31.1%에서 29.6%로 약간 감소했다. 대신 천연가스 비중이 22.7%에서 27.5%로 약 5%포인트 늘어났고, 신재생에너지는 2.2%에서 8%로 3배 이상 증가해 비중만 고려하면 신재생에너지의 비중 증가율이 높지만, 여전히 전체 전력 생산량에서 가장 비중이 큰 에너지원은 석탄과 원자력이다.

문제는 한국의 총 전력 사용량이 산업 발전과 경제성장에 따라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총 전력 사용량은 2011년 497Twh(테라와트)에서 2022년 594Twh로 증가했다. 석탄의 비중은 약 8% 줄었음에도 절대 발전량은 2011년 203Twh에서 2022년 193Twh로 소폭 줄어들었을 뿐이다. 원자력은 다른 에너지원의 비중 변화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거의 30%를 유지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선 피할 수 없는 주요 에너지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나라지표 통계표에 따르면 2021년 신재생에너지 총발전량이 8.0%이나 산업 발전량 순위는 수력 61.2%, 풍력 14.8%, 태양광 12.3%, 매립지 9.7%, 연료전지 1.9%, 바이오가스 0.1% 순으로, 수력이 신재생에너지에서 절대적임을 알 수 있다.

영국 기후에너지 씽크탱크 엠버(EMBER)의 ‘국제 전력 리뷰 2022(Global Electricity Review 2022)’에 따르면 전 세계 풍력·태양광 발전 비율은 2021년 10.3%를 기록해, 파리 기후협약을 맺은 2015년(4.6%) 이후 6년 만에 그 비중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2020년에 비해 태양광 발전량은 23%, 풍력 발전량도 14% 증가했다. 풍력·태양광 발전 비중이 10%를 넘어선 국가가 40개에 이르고, 특히 중국(11.2%)과 일본(10.2%), 몽골(10.6%), 베트남(10.7%)과 아르헨티나(10.4%), 헝가리(11.1%), 엘살바도르(12.0%) 7개국이 새로 합류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풍력·태양광 발전 비중은 4.67%로, 조사 대상 국가 중 45위에 머물고 있다. 태양광 발전 보급을 위해 많은 투자를 했음에도, 이 정도인 것은 우리나라 여건상 재생에너지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통계이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지난 2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하 산자위)가 내년도 원자력 분야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정부에서 원전 감축 정책에 따라 피폐해진 원전 생태계 복원을 위한 예산 7개 항목 1831억 원이 삭감됐다. 혁신형 소형 모듈 원자로(i-SMR : innovation-Small Modular Reactor) 개발 예산 332억800만 원 전액 삭감을 비롯해, 원자력 생태계 지원을 위한 1112억800만 원, 원전 첨단제조기술 및 부품장비 개발 60억 원, 원전 기자재 선금 보증보험 지원비 57억8500만 원, 소형 모듈 원자로 지원센터 구축비용 1억 원, 원전 수출을 위한 해외 보증예산 250억 원이 삭감되었다. 중기부 예산에서도 원전 R&D 예산이 줄줄이 감액됐다. 중소기업 기술혁신개발, 중소기업 상용화 기술개발, 창업성장기술개발 분야에서 원전 R&D 과제 129개의 예산 총 208억 원이 감액되었다.

반면, 실태조사에서 태양광 비리가 속출하여 375명이 추가 수사 의뢰되는 상황 속에서도 내년도 신재생에너지 보급 지원 1620억 원, 신재생에너지 금융지원 사업 2302억 원, 신재생에너지 핵심기술 개발 579억 원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예산 4500억 원이 증액 의결되었다.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에너지바우처 예산 6948억 원, 에너지 수요관리 핵심기술 개발 예산 187억 원 등도 증액되었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소형 모듈원자로(SMR)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EU는 2022년 2월 원전과 천연가스를 ‘그린 택소노미(Taxnomy :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의 범위)’에 포함시켜 지원하고, 화석연료 부국에서조차 원전 설치를 서두르는 등 탄소중립을 위한 친환경에너지원으로서 원자력 개발에 힘쓰고 있다. 이에 반해, 국가 미래 경제성장 동력 창출을 위해 황폐화된 원자력 생태계 복원을 막는 예산 삭감은 스스로 국가의 경쟁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세계적 흐름에 역행한다. 원전산업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켜 궁극적으로 국가 에너지 안보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결정이다.

i-SMR이 경제성·안전성·친환경성 모든 측면에서 효과가 의심된다며 삭감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만, 전력 생산 평균단가나 이미 친환경에너지원으로 인정한 선진국의 결정 어디에서도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더구나 태양광 발전을 위해 산림이 파괴되어 흉한 몰골을 하고 호우로 누차 산사태를 경험했음에도 경제성이 떨어지는 태양광 보급에 원전 관련 예산 몇 배를 증액하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의 발로이다.

국가 에너지 정책은 국민의 문제이다. 1970년대 겪었던 에너지 위기를 잊었는가. 전력량 부족으로 해마다 여름이면 28℃, 겨울이면 18℃ 유지를 강요하면서 더운 여름철 은행에서 쉬어가던 일이 추억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등으로 고유가 시대가 이어지며 전기료 인상은 피할 수 없는 민생 문제가 된 상황이다. 그런데 에너지 정책을 정파적 문제로 풀어가는 것은 자신에게 올가미를 씌우는 지극히 편협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 기회가 있다고는 한다. 진정 국민을 위하는 국회라면 국민을 위하는 지혜가 무엇인지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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