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 논설위원, 가정경영연구소장,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 연말에도 ‘2023, 올해의 말 말 말’, 이런 걸 발표할 거다. 요즘, 말들이 하도 거칠고 천박해져서 안 그래도 힘든 세상을 더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정치인이 주고받는 말을 보면 인간의 언어가 얼마나 사악한지를 절감한다.

어떤 주제라도 말을 독점해 버리거나, 만났다 하면 불평, 불만과 남 헐뜯는 얘기로 도배를 하는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다. 남이 써 준 원고를 읽거나, 준비도 없이 단상에 올라 지루하게 설교를 늘어놓는 사장도 딱하다. 남의 행사에 와서 설치고 다니다가 행사 도중에 퇴장해 버리는 정치인, 입만 열면 자기 자랑 일색인 사람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TV 프로그램에서 아무 때나 끼어들어 다른 사람 말을 막고 자기 말만 앞세우는 사람, 토론회에 나와 처음부터 끝까지 싸움닭처럼 덤비는 사람도 채널을 돌리게 한다.

어떤 자리인지 분간도 못 하고 축사라고 하면서 자기 자랑만 늘어놓거나, 위로를 건네는 자리에서도 원치 않는 충고나 조언으로 상처를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 괜찮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무심코 던진 ”괜찮아? “가 상처를 줄 수 있음을, 기를 쓰며 힘내고 있는 사람에게 ”힘내!”라고 하면 화가 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질문한다고 발언 기회를 얻고는 아는 걸 과시하거나 발표자를 위한 용비어천가만 늘어놓는 이도 있다. 주례사가 아니라 강의하는 주례, 양가 부모님을 대신한 장황한 인사말로 시작해서 결혼의 의미를 설명한 다음 주례사에 대한 해석까지 덧붙이는 결혼식 사회자도 보았다.

숱한 사람을 만나고 남의 강의도 들어 보았지만, 진정으로 말 잘한다 싶은 사람은 별로 보질 못했다. 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적은 건 우리 문화 때문이 아닐까.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대화하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침묵이나 과묵을 미덕으로 알고 수직적인 관계에서 자녀나 아래 사람의 말을 말대꾸라며 억압하는 풍토에서는 서양처럼 자유롭게 토론하며 제대로 의사소통하기가 어렵다. 밥 먹을 때 얘기하면 혼났고, 선생님과 토론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말도 권력이어서 특히 군대나 직장에서는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면 뭐하냐?”, “말은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거다”라는, 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편견도 심하다. 말하기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내 돈과 시간을 들여 말하기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은 더더욱 못한다. 말하기를 배우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말은 짧게 하는 것이 좋은데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연장자는 귀담아듣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본인만 모른 채 마냥 지루한 연설로 듣는 사람을 질식시킨다. 자기소개를 1분씩 짧게 해달라는 요청을 무시하고 5분, 10분씩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김이 새어버리는 모임도 많다.

나이가 벼슬은 아닌데 나이 어리다고 반말부터 한 일은 없는지, 자녀의 생일모임에서도 잔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자녀의 흑역사를 폭로해서 당사자를 언짢게 한 일은 없는지, 유머도 남녀가 공감하는 내용이 다른 법인데 남자들끼리나 나눠야 할 ‘19금’ 농담을 부부 동반 모임에서 늘어놓아 뜨악하게 한 적은 없는지, 연로하신 부모님을 생신이라고 모셔 놓고 자식들끼리 호호 깔깔거리며 부모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한 적은 없는지, 들어보면 옳은 말인데도 나이 많은 사람 얘기는 무조건 꼰대가 하는 소리라며 배척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말하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듣기인데 듣기는 관계의 시작이자 끝이다. 말을 잘하려면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도 부정하고 반박하고 싶은 욕구, 지적하고 변명하고 싶은 욕구, 말을 자르거나 질문하고 추궁하고 충고하고 가르쳐 주고 싶은 욕구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온다.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얘기를 진정으로 경청하고 공감하는 일은 도를 닦는 것만큼 힘들다.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경청해야 상대방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법이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혼이 나더라도, 무슨 얘기든지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자녀를 두었다면 자식 농사 잘 지은 거다. 집에 와서 종알종알, 재잘재잘대는 아이들의 신선한 한마디는 부모를 살맛 나게 하는 보약이다.

할 말이 딱히 생각나지 않거나 할 말이 없으면 입을 닫는 것이 좋다. 실험을 한번 해 보시라. 모임에 나가 한마디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아무 문제도 안 생김을.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로 넘쳐나기 때문에 아무도 나의 침묵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를 우연히 펼쳐 보니 ‘말을 적게 하자’라는 구절이 자주 나왔다. 어린 마음에 어떤 생각에서 한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 않아도 될 말, 영양가 없고 영혼이 없는 얘기는 줄이는 게 상책이다.

30년쯤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내가 몸담고 있던 회사에서 개최한 아동문학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작가가 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홀몸으로 7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우리 어머니, 지금은 병이 들어 거동도 불편하신데 오늘 여기 와 계신다.”라는 얘기를 시작하자마자 복받치는 울음에 말을 잇지 못했다. 사회자가 급히 격려의 박수를 유도했지만 수상자는 터진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결국 단상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진심어린 명스피치였다.

갈수록 말이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한마디를 찾기 어렵다. 자기 말에 끝까지 책임지는 성숙한 어른도 찾아보기 힘들다. 쓰레기 같은 말, 비수처럼 꽂히는 말, 독버섯처럼 번지는 말, 추악하고 비열한 말, 교활하고 뻔뻔한 말, 그저 지껄이는 소음들로 어지럽다.

각종 연말 모임에서 수많은 말을 또 주고받을 것이다. 올 한 해, 내가 뱉은 말들이 누군가의 가슴에 어떻게 남아 있을까를 돌아보며 엘리베이터나 택시 안에서 건네는 친절한 한마디, 따뜻하고 여운이 남는 말, 힘과 희망을 주는 말로 한 해를 마무리하자. 진심 어린 나의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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