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신구대 식물원 원장

전정일 교수
전정일 교수

요즘 주변에서 나이가 한두 살 위인 분들로부터 자녀를 결혼시킨다는 청첩장을 심심치 않게 받고 있다. 그럴 때마다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건네면서도 마음 한편에서 부러운 마음이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집에 하나 있는 딸은 친구들에 비해 늦게 얻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도 아직 대학도 못 들어가고 재수생 생활을 하는 상황이니 이 마음이 어떨지 다들 이해하시리라. 물론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겠다는 아이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고, 아이를 일찍 갖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예전에 선배님들이 우스갯소리처럼 나이대에 따라 목소리가 큰 친구가 달라진다고 하던 얘기가 떠오른다. 20대에는 좋은 대학 들어간 친구가 목소리가 크고, 30대에는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가, 40대에는 사업하는 친구가, 나이 50 전후로는 자녀가 좋은 대학 들어간 친구가, 60 전후로는 자녀를 결혼시킨 친구가 목소리가 커진다고 했던 말이 공감이 가기 시작한다. 애써 내가 늦은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빠른 것이라고 위안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자녀가 결혼한다는 것은 그 자녀들이 ‘독립’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에 사회적으로도 축하해야 할 일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녀들은 어떡하든 부모에게서 벗어나지 않거나 또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늘고 있으니, 자녀들이 결혼하고 분가하는 일은 그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여러 측면에서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적으로 널리 쓰이는 용어로 ‘캥거루족’과 같은 말이 오늘날 젊은이들의 독립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대변하는 것 같다. ‘캥거루족’은 우리나라에서 쓰는 말이지만, 인터넷을 뒤져보면 전 세계가 공통으로 이런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패러사이트(Parasite) 싱글, 미국의 트윅스터(twixter), 프랑스의 탕기(Tanguy), 이탈리아의 맘모네(mammone), 영국의 키퍼스(kippers), 독일의 네스트호커(Nesthocker), 캐나다의 부머랭 키즈, 중국의 전업자녀(중국어 표현으로는 全職兒女) 등이 모두 비슷한 표현이다. 지금 전 세계가 이러한 상황이니 결혼하고 분가하는 일이 한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얼마나 축하할 일인가. 

잎 가장자리에서 어린 식물이 다 자라서 뿌리가 나올 때까지 키워서 독립시키는 만손초[칼랑코에; Kalanchoe pinnata (Lam.) Pers.]
잎 가장자리에서 어린 식물이 다 자라서 뿌리가 나올 때까지 키워서 독립시키는 만손초[칼랑코에; Kalanchoe pinnata (Lam.) Pers.]

그럼, 우리가 관심을 가진 식물은 과연 언제 부모에게서 독립할까 궁금해진다. 공교롭게도 식물도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시기가 사람처럼 아주 다양하다. 종자식물의 경우는 기본적으로는 씨앗이 어미 식물로부터 떨어져나오는 순간이 바로 독립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말로 ‘천손초(千孫草)’와 ‘만손초(萬孫草)’, 즉 자손이 일천 명 또는 일만 명이나 되는 풀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들은 어미 몸에 붙어서 충분히 몸집을 키우고 뿌리까지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어미 식물로부터 떨어져나온다. 그러니까, 사람처럼 식물도 상황에 따라서 일찍 독립하는 식물도 있고 혹은 아주 늦게까지 부모의 도움을 받은 후에야 독립하는 식물도 있다는 것이다.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지만, 부모가 일찍 결혼한 가정에서 자녀들도 일찍 결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식물은 그러한 특성이 유전되는 것이 분명한데, 혹시 사람 사회에서도 결혼을 일찍 하거나 늦게 하는 것이 유전적 영향은 아닐까? 그러니까, 나와 집의 아이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유전적으로 그렇게 타고난 것이 아닐까? 재수생으로서 수능일을 다시 한 번 맞이한 안타까운 아이와 그 고생을 옆에서 다시 한 번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이든 부모의 서글픈 마음을 이렇게나마 스스로 위로해본다.

부러움은 뒤로하고, 이 가을 결혼하는 모든 부부와 자녀를 결혼시키는 모든 부모님께 마음 깊이 축하 인사를 보낸다. 그리고 또, 오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모든 학생과 부모님, 선생님께 응원과 위로의 마음을 보낸다. 대학 입학이 모든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인생의 과정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니, 우리 모두 마지막까지 힘내봅시다. 그리고 결과가 어떻든, 그동안 준비하고 시험 치르느라 몸과 마음이 무척이나 지쳤을 학생들을 따뜻하게 안아줍시다. <다음 글은 11월 30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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