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보 논설위원, 한국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 회장

민경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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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立冬)이 지나면서 반갑지 않은 정전기(靜電氣)가 찾아왔다. 옷을 입고 벗을 때나 차를 타려고 문고리를 잡거나, 심지어 지인과 악수를 할 때도 전기가 와 깜짝깜짝 놀라고, 기분도 그렇다. 그래서 정전기를 없애준다는 스프레이 종류를 찾아서 옷에 뿌리거나 건조하지 않도록 손에 크림을 바르기도 하지만 정전기를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한다. 이런 현상은 건조해지는 날씨 탓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몸이 건조해지니 더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런데 정전기를 없애 준다고 하는 제품도 많이 쓰면 좋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제품에 표시된 문구만으로는 도대체 어떤 물질이 들어 있는지 유해 여부를 알 수 없다.

전북 김제시 백산면에 사는 맏동서(86세)는 평생 농사만 짓다가 10여 년 전부터 손을 놓고 있다. 나이도 그렇지만 신체적으로 문제가 생겨서다.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병 때문인데, 원인을 찾으려고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혹시 농약 중독은 아니냐고 물어봤지만, “그럴지도 모르지요.” 정도로 확답을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동서 얘기로는 동네 노인들 대개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농약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지만, 농약 회사를 상대로 소송할 엄두는 내지 못한다. 농약 회사가 없어지기도 했고, 적게는 칠십이고 많게는 구십 넘은 고령이기도 하고, 도회로 나간 자식들이 원치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면 이유이다.

필자는 젊은 시절(1993~2001년) 플라스틱 제조업의 CEO를 했다. 범용플라스틱(ABS, PP, PE, PS, PVC 등)을 압출기, 성형기 등을 이용해 냉장고 부품, 식품 용기, 건축자재 등으로 생산했다. 건축자재는 PVC 재질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 재질의 특성은 혼자서는 성형(成形)이 어렵지만 여러 종류의 첨가제를 넣고 배합(Compounding)하면 금형(Molding)대로 모양이 잘 만들어지고 생산성은 물론 내구성도 좋은 제품이 된다.

그런데 여러 종류의 첨가물 중에서 제품을 부드럽게 하는 가소제(可塑劑, Phthalate 계열) DEHP, DBP, BBP가 환경호르몬 추정물질로 2006년부터 금지되었다. ‘화학물질 안전보건 자료(MSDS:Material Safety Data Sheet)’를 제시하도록 의무화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당시 생산 현장엔 화학물질의 이력(履歷)에 대해 간단하게 화학식 정도만 명기되어 있었고, 위험(해골 그림)으로 표시된 물질은 반드시 방독면과 장갑을 끼고 취급하도록 주의판을 게시해 놓는 정도였다. 솔직히 한여름에 방독면을 쓰는 것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당시 원료 배합실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의 건강이 새삼 걱정된다.

화학물질을 방기(放棄)한 최고의 사례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 가습기 살균제 이야기다. 1994년부터 무려 18년 동안 인체에 해가 없는 세계 최초의 신제품 살균제라며 ‘깨끗한 가습기’ ‘건강한 실내공기’ , 여기에 더하여 ‘내 아기를 위하여’를 광고한 살균제가 우리에게 준 피해는 대단하다. 지난 9월 5일 제36차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가 열리면서 아직도 진행형인 사건이다. 가습기 물통에 물과 함께 부어 사용하는 살균제로 세계 최초 발명품이라고 광고했던 신제품이 사람을 병들게 하고, 죽음으로 몰고 가는 독성물질로 판명되었다. 2011년 판매 중단되기까지 950만 개 이상이 팔렸다(가습기 살균제 노출과 질환 간 역학적 상관관계 보고서 2022, 국립환경과학원 참조).

올해로 참사가 일어난 지 12년이 지났다. 피해신고자 7854명 가운데 5041명이 피해자로 인정받았고, 1821명은 이미 사망했다. 나머지 재심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2813명이 새로 신청했는데 약 36%는 아직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종합포털 참조). 지난 10월 26일 서울고법 재판부는 살균제 물질 중 CMIT(클로로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 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가 유해 물질이라는 국립환경과학원의 새로운 연구보고서를 증거로 채택했다. 이날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영유아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죽어야 했고, 살균제를 구매하여 사용한 부모들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 피고인 전원에게 엄중한 처벌을 요구한다.”고 검찰은 재판부에 요청했다.

2020년 8월 24일 경희대 박은정 교수는 코로나 방역을 위해 많이 사용하고 있던 분무형 소독제 성분 가운데 BKC(염화벤잘코늄), DDAC(염화디데실 디메틸 암모늄) 등이 폐 세포에 만성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소독제는 필자를 포함한 거의 모든 국민에게 노출되었고 지금도 어디선가 살포되고 있다. 걱정스럽다.

화학물질관리법,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2013년 5월 22일 제정, 이하 화평법)에 따라 새로운 화학물질의 검증은 국가가 규제하고 있다. 화평법의 제정 일자를 보면 가습기 소독제 사건과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래에 빈대 출몰로 야단인데, 기존 살균제로 잘 퇴치되지 않아 약 8종의 새로운 살균제를 긴급 허가했다고 한다. 이렇게 저렇게 등장하는 새로운 화학물질 관리가 엄격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환경부는 화평법을 연내 개정해, 기업의 화학물질 등록비용을 절감해 주는 것이 규제개혁(10월 26일 ‘데일리임팩트’ 필자 글 참조)이라고 나섰다. 인체에 위험한 물질의 잠복 기간이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이 넘는다고 하니, 발병되고 나면 원인 규명 또한 어렵다. 11월 9일 대법원은 가습기 살균제 민사배상 책임에 대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처음으로 확정했다. 국가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해야 한다.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국가가 담보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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