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논설위원, 전 KBS해설위원실장

지난달 미국 여행 때 초등학교 정문에서 큰 표어 같은 것을 발견하고 순간 머리를 갸

이동식 논설위원
이동식 논설위원

우뚱하게 되었다. "Be kind to your mind"라는 표어였다. 뜻은 "당신의 마음에 친절하라"일 것인데, 초등학교 정문에 있으니 학생들에게 "여러분들의 마음에 친절하세요"라고 권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마음에 친절하라'니, 이 말이 무슨 뜻인가?

궁금해서 알아보니 이 말이 미국에서는 폭넓게 사용되고 있었다. 비영리단체인 '미국정신건강(Mental Health America)'은 이 문장을 전면에 내세우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국 LA의 한 초등학교 정문의 표어.
미국 LA의 한 초등학교 정문의 표어.

"우리 마음도 우리의 몸처럼 돌봄이 필요하다. 안 좋은 음식, 흡연, 그리고 운동을 안 하면 육체적으로 나빠진다. 우리의 정신건강도 마찬가지이다. 불안, 초조, 걱정을 하고 잠을 잘 못 자면 삶에 의욕이나 흥미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의 마음을 바로 보고 집중하라. '자동조종(Automatic Pilot)'이 되지 말아야 한다."

​'자동조종'이라는 말은 '현재의 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그저 기계적으로 행동하는 것. 혹은 의도하지 않은 생각, 기억, 느낌, 계획에 사로잡히는 것' 을 뜻하기에 자신도 모르게 휩쓸리거나 정신을 잃지 말고 자신의 마음,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도 친절하고 이를 통해 자기긍정과 자기실현을 해나가야 한다는 뜻이 된다.  

       마음에 친절하자고 촉구하는 포스터.
       마음에 친절하자고 촉구하는 포스터.

정신건강을 다루는 많은 기관이나 단체도 "마음에 친절하라"는 이 말을 내걸며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당신이 아무리 힘들고 자신을 나쁘다고 비하하고 싶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일, 자랑할 일이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잘 대하는 것만큼 당신 자신에게도 잘 대해야 한다. 당신의 생각, 말, 행동을 좋게 보고 긍정하고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것만큼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당신의 마음에 친절하라"는 말은 곧 자기 자신을 바로 보고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고 그것으로 올바른 생각,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표어가 게시되어 있는 것을 미국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을 하필 초등학교 학생들이 보라고 크게 붙여 놓은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성인뿐 아니라 초등학생들에게도 마음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 된다. '미국정신건강'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5분의 1이 정신건강 이상으로 진단될 수 있는 상황이며, 42.5%가 불인 증세를 호소했다고 한다(2017년 조사). 습관성 약 복용에 의한 문제도 7.74%에 이른다. 더구나 이 조사에서는 미국 청소년의 10분의 1이 우울증(디프레션)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이 청소년들이 가정이나 사회에서 생활할 때 적응 능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이다. 미국은 본래 어른들에게 이런 말을 했는데, 어느 틈엔가 초등학생 때부터 이 문제에 바르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초등학교에도 이런 표어를 내걸고 있는 것이다.

미국 이야기가 아니라 최근 우리나라가 더 큰 문제다. 사회에서건 학교에서건 연이어 나쁜 소식이 들려온다. 몇몇 아이들이 성적 문제로 극단선택을 하더니 학교 내에서는 교실 내 폭력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고, 이런 문제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일선 교사들이 압박을 받아 잇달아 극단선택을 해서 충격을 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원인 진단은 여러 가지이고 그 대책의 일환으로 일부 학부모들의 과도한 학내 문제, 학생 지도에 대한 개입을 막아줄 제도의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라고 하겠다.

다만 최근의 이러한 극단선택의 바탕에 우울증이니 자포자기 등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앞에서 본 대로 미국에서는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이 '자동조종'이 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실제로 상담학에서는 사람이 자동조종 상태가 되면 어떤 것을 좋은 것, 혹은 나쁜 것으로 쉽게 판단해버리게 되고, 쉽게 부정적인 사고나 감정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자신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로 보고 생각의 흔들림에 휩쓸리지 않음으로써 우리 마음이 자동조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런 뜻에서 마음에 친절하라는 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알고, 자신의 부족함도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라는 뜻이 된다. 

 마약을 추방하자는 미국 초등학교 표어.
 마약을 추방하자는 미국 초등학교 표어.

 

미국에서는 초등학생들도 마약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지 오래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약 음료를 시도한 사건이 충격을 주었다. 금전을 노린 이런 한심한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도 초등학생 때부터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해서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껴 몸과 마음을 지키도록 유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제는 학생들도 그렇지만 선생님들도 함께 스스로에게 친절해야 하는 때인 것 같다. "당신의 마음에 친절하세요"라는 이 말은 미국에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까지 하는 말이지만 사실 우리에게도 학생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그렇게 해야 할 상황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미국은 해마다 5월을 정신건강의 달로 정하고 맑고 밝은 생각으로 이 사회를 살아가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음을 필자는 이번에 알게 되었다. 정신건강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더 심한 것 같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우울증 진료 환자가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연령 별로는 20대 우울증 진료 인원이 18만 5942명(18.6%)으로 가장 많았고, 30대 16만108명(16%), 40대 14만 2086명(14.2%)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우울증 진료를 받은 초중고 학생도 3만 7386명에 달한다. 이는 2018년 2만 3347명에서 무려 60.1%(1만 4039명) 증가한 수치다.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이 '위기'인 것이다.

우울증이건 자포자기건 너무 쉽게 자기 자신에게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라는 미국 학교 앞의 표어가 우리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가정에서 가족 간의 갈등, 친구나 이웃과 사소한 말다툼, 어투까지도 극단으로 생각해서 자신을 캄캄한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거기다가 어린 자녀는 물론 다 큰 자녀들도 참혹하게 살해하는 이 땅에서 이제 우리들은 자신을 학대하지 말고, 자포자기하지 말고, 죽음이나 죽임의 유혹보다도 함께 살아가는 희망의 빛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더 친절함으로써 밝은 미래를 찾아 멋진 삶을 추구해야 할 때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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