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도시설계)

김기호 논설위원
김기호 논설위원

독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 M.)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먼저 떠올릴까? 괴테? 또는 국제도서전시회? 그러나 사실 프랑크푸르트는 매우 성공적인 상업도시다. 유럽중앙은행(유로 등 EU 통화정책)이 있는 유럽의 금융 중심도시이며 매우 큰 전시 및 박람회장(Messe Frankfurt)이 있어 각종 상업전시와 비즈니스가 활발한 도시다. 거기에 더해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유럽대륙의 허브공항으로 경쟁하고 있다. 독일 다른 도시와 다르게 도심지에는 수십 층 높이의 오피스 빌딩이 즐비하다.

얼마 전 자료를 탐색하다 ’Museumsufer Frankfurt’(프랑크푸르트 박물관강변)라는 단어가 눈에 띄어 본문을 찾아 읽어 보니 우리 대한민국의 공연 팀이 ‘박물관강변’지구 축제에 초대받아 노래, 춤, 태권도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여 갈채를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한독(韓獨)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초대국가가 된 것이다. 이런 품위 있는 도시 문화특성지구에서 우리 문화가 소개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인데, 이 지구(地區)의 이름은 나를 40년 전으로 끌고 가 흥미로운 추억에 잠기게 하였다.

프랑크푸르트 도심 파노라마. 가운데 원통형 건물이 쉬른 갤러리(Schirn Kunsthalle), 그 뒤 삼각형 지붕 앞이 도심 뢰머광장(Roemerberg), 배경에 은행 등 고층건물군이 보인다. 좌측 마인강 아이제르너(Eiserner) 보행교가 박물관강변지구와 역사도심을 연결하고 있다. 사진: Alexander Paul Englert,  https://www.museumsufer.de/
프랑크푸르트 도심 파노라마. 가운데 원통형 건물이 쉬른 갤러리(Schirn Kunsthalle), 그 뒤 삼각형 지붕 앞이 도심 뢰머광장(Roemerberg), 배경에 은행 등 고층건물군이 보인다. 좌측 마인강 아이제르너(Eiserner) 보행교가 박물관강변지구와 역사도심을 연결하고 있다. 사진: Alexander Paul Englert, https://www.museumsufer.de/

1984년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서독) 최초로 건축박물관(Deutsches Architekturmuseum; DAM)을 개관했다. 건축가 웅어스(O.M.Ungers, 1926∼2007)는 이 지구 내 산업혁명기(19세기 말)에 지어진 저택(Villa라고 부름)을 ‘집 속의 집(Haus im Haus)’이라는 개념으로 건축박물관으로 개축 설계하여 곧 이 지구의 상징적인 건축물이 되었다. 뒤이어 당시 세계 최고의 건축가로 칭송받던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 1934∼ , 미국)가 설계한 디자인박물관(Museum Angewandte Kunst)도 건축되었다. 이 동네는 이내 ‘박물관강변(Museumsufer)’으로 불리며 많은 건축 관련 사람들, 나아가 여행자들의 프랑크푸르트 방문 희망 1순위가 되었다. 1985년, 학교의 건축답사여행으로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던 나의 마음은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찼다.

클래식한 외관과 모던한 내부가 대조를 이루는 건축박물관. ‘집 속의 집(Haus im Haus)’ 개념을 잘 보여준다. 사진: 김기호, 2007
클래식한 외관과 모던한 내부가 대조를 이루는 건축박물관. ‘집 속의 집(Haus im Haus)’ 개념을 잘 보여준다. 사진: 김기호, 2007

현재 ‘박물관강변’지구(박물관 미술관이 구분 없이 사용된다)에는 26개의 다양한 박물관이 있다. 2007년 이후 프랑크푸르트의 박물관을 대표하는 기구로 등장한 ‘Museumsufer’ 아래에는 39개의 박물관이 있어 프랑크푸르트를 단순 상업도시가 아니라 박물관도시, 문화도시로 이끌고 있다. 40년 전을 생각할 때 상상할 수 없는 진전이다. 한 도시가 이렇게 꾸준히 문화적 특성을 키워 가기 위해 진심을 다하는 것은 참 부럽고 본받고 싶은 일이다.

마인강변(우측)을 따라 플라타너스 산책길이 이어지고, 길 건너에는 잘 보전된 19세기 말 저택들이 증·개축 및 신축을 통해 다양한 박물관들로 전환되고 있다. 사진: 김기호, 2007.
마인강변(우측)을 따라 플라타너스 산책길이 이어지고, 길 건너에는 잘 보전된 19세기 말 저택들이 증·개축 및 신축을 통해 다양한 박물관들로 전환되고 있다. 사진: 김기호, 2007.

마인강변 평화의 다리(Friedensbruecke)부터 이그나츠 다리(Ignatz Bubis Bruecke)까지 약 2km에 걸쳐 강의 좌우에 다양한 박물관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강변에 조형적으로 아름답게 가꾼 플라타너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박물관들이 내뿜는 건축적 분위기와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방문객들은 관심을 끄는 박물관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다. 실제로 매년 200만 명 이상 방문객이 이곳을 찾는다니 대성공이 아닐 수 없다.

프랑트푸르트 문화지형의 변화는 1978년 시의 문화국장 힐마 호프만(Hilmar Hoffmann)이 발터 발만(Walter Wallmann) 시장과 함께 도심에 가까운 이곳에 문화지구 개념을 구상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 정원이 큰 마인(Main)강 남쪽의 빌라저택 지구를 보전하여 박물관, 미술관으로 개조하거나 증·개축하는 공원 속의 문화지구를 구상했다. 그리고 그 첫 주자가 바로 건축박물관이었다.

디자인 박물관. 모더니즘 계승자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의 순백의 건축물과 전시물. 사진: Anja Jahn, 2014 (https://www.museumsufer.de/),  김기호, 2007
디자인 박물관. 모더니즘 계승자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의 순백의 건축물과 전시물. 사진: Anja Jahn, 2014 (https://www.museumsufer.de/), 김기호, 2007

그 외에도 영화박물관, 성화(聖畫, Ikonen)박물관, 커뮤니케이션 박물관, 힌데미트(Paul Hindemith,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 1895∼1963) 자료관 등 다양하다. 역사적으로 독일제국의 자유도시였기에 특정 귀족이나 제후 등의 미술품 컬렉션이 없는 프랑크푸르트로서는 박물관 건립이나 수장품 수집, 운영기관 설립 등 모든 일을 시민과 시장이 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프랑크푸르트 박물관강변’ 뉴스를 보니 2000년대 초 용산기지 반환이 논의되고 반환부지 및 주변의 활용방안을 구상할 때가 생각난다. 삼각지(전쟁기념관)에서 한강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서빙고로변 국립중앙박물관을 연결하는 문화벨트(약 2.5km)를 조성할 것을 제안했다. 용산기지(현재 대부분 공원으로 구상)와 한강대로변 시가지 사이에 문화시설 및 공간을 조성하여 공원 속의 문화벨트를 만드는 것이다. 최근 문을 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이런 개념에 충실히 부응하고 있다. 이제 공공에서도 좀 더 이런 구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앞으로 30여 년이 지난 후 대한민국과 서울을 대표하는 박물관(미술관) 문화벨트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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