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슬아 논설위원, 작가·컨텐츠 기획자

송하슬아 논설위원
송하슬아 논설위원

마약과 사기, 자극적인 두 단어로 연일 떠들썩한 2주였다. 해당 인물과 관련해 조회 수 200만을 기록할 정도로 소문이 자자했던 영상 하나가 있다. 마약으로 이미지가 바닥으로 추락한 유명 남자배우를 향한 무속인의 예언이었다. 3년 전, 그가 톱스타 반열에 올랐을 때 최상의 이미지를 가졌던 그에게 난데없이 10월에 수갑을 차는 구설수를 조심하라 했던 무속인의 말이 2023년 10월에 적중했다. 이로 인해 영상 속 그 무속인을 당장 찾고 싶다는 반응이 수두룩했다.

용한 점집을 소개받고 방문하는 과정에서 지인의 입소문은 매우 크게 작용한다. 나 역시 친구들을 만나면 가끔씩 용한 점집에 갔던 경험을 나누곤 한다. 신기하게도 연말이나 신년이 되면 각자 사주와 타로 같은 점술 상담을 이용했다는 일화를 나누는 일이 꼭 서너 번씩은 있다. 사람들이 점을 보러 많이 다니고 있다.

며칠 전 나도 지인을 통해 추천받은 점집에 다녀왔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도 전혀 아니었다. 그저 기분 전환을 위해서 찾았을 뿐이다.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한 점 집은 이미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는 티가 났다. 테이블 위에 두둑하게 쌓인 종이, 그리고 그 위에 빼곡히 채워진 점과 선이 보였다.

사주를 보러 가면 가장 먼저 이름, 생년월일, 태어난 시간 정보를 사주 전문가에게 건네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주 해석을 의뢰한 우리와 사주 전문가 사이로 여덟 개의 획 많은 한자가 빈 종이에 펼쳐진다. 영 알아볼 수는 없지만, 나를 표현하는 사주팔자 풀이를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눈과 귀를 활짝 열고 펜을 움켜쥔다.

오늘 나를 처음 보는 전문가가 나의 길흉화복을 점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릴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이 나를 향해 하는 말 같지만, 모두에게 다 해당되는 애매한 조언일 수 있었다. 그래도 그때만큼은 사주 전문가의 확신에 찬 말에 조금 의지하고 싶었다. 그뿐이다.

‘점, 신년 운세에 대한 인식조사’(한국리서치)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점(사주, 타로, 관상, 신점)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41%다. 나의 주변에도 점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었다. 젊은이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진 MBTI(사람을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성격유형 검사)와 마찬가지로 나와 주변의 타인을 궁금해하고, 이해하고 싶어 하는 지점과 비슷하게 점 보기 문화가 성행하고 있다.

심지어 역술인에게서 직접 풀이를 듣는 사주 카페를 넘어서, 역술인에게서 직접 배우고 풀이해 보는 온라인 점 보기 클래스가 인기 강좌라고 하니 점보기도 놀잇거리이자 즐길 거리가 됐다. 이 밖에도 명리학 스터디 모임, 사주 풀이 유튜버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고 있는 걸로 보아 옛날의 부모 세대가 말하는 ‘점을 본다’는 의미하고는 확실히 무게감이 다르게 들린다. 훨씬 가벼운 느낌이다.

점을 보며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사람들의 심리는 예상과 달리 매우 큰 경제적 가치를 지녔다. 국내 점 집, 철학관의 개수는 4만2000여 개이다. 이는 국내 편의점 개수인 4만8000여 개와 비슷한 정도일 뿐 아니라, 점술 중개 플랫폼 ‘천명’이 추산한 점술 시장의 규모는 약 1조 4800억 원가량 된다고 한다. 점술 중개 플랫폼 ‘천명’은 5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고, 모바일 운세 콘텐츠 서비스 ‘포스텔러’는 국내 누적가입자 수 750만 명을 보유했다. 해외로 서비스 확장을 추진할 정도로 성장 가능성도 이미 충분한 분야다. 한때 허구와 미신이라는 취급을 받던 ‘점 집’ 이미지가 이제는 불안과 위로의 콘텐츠로 인간미까지 더해졌다.

사람들은 왜 점을 보러 갈까? 아니 나는 왜 계속 점을 보러 가고 싶을까? 끝없는 저성장과 불확실성이 가득한 시대에 조금이나마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반영된 것 같다. 설령 운을 100% 맞히지 못하더라도 나를 객관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정보의 거울로서, 가까운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계속해서 점 짐을 찾는 것 같다.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는 한 불안감 해소 솔루션 비즈니스는 계속될 것이다. 믿음의 시장이 이렇게나 크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