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우현 논설위원, 한불협회 회장, 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전 숙명여대 객원교수

손우현 논설위원
손우현 논설위원

“예루살렘이 기도할 때 텔아비브는 놀이한다(While Jerusalem prays, Tel Aviv plays.)”라는 말이 있다. 구약시대를 사는 유대교 근본주의자들과 세속적이고 진보적인 현대 유대인들이 긴장 속에 공존하는 두 개의 이스라엘을 풍자한 ‘언어유희(pun)’다.

이스라엘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128만은 구약시대의 율법을 이스라엘 민주주의보다 더 중시하는 하레디파다. 작년 12월 출범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극우 연립 정부에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인 '샤스', 보수 유대 정치연합인 '토라유대주의연합' 등이 참여하면서 이스라엘 정치의 주변 세력이었던 하레디파가 이스라엘 정치의 주요세력으로 부상했다. 지난 7월 네타냐후의 ‘사법 정비’와 관련한 첫 번째 법안이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를 통과했다. 헌법재판소 역할도 겸하는 이스라엘 대법원을 무력화하는 이 법안의 추진에는 “이스라엘을 유대교 중심 국가로 만들자”는 유대교 근본주의자들과 극우 정치인들의 의지가 작용했다.

초정통파(ultra-Orthodox)라고도 불리는 하레디파는 근대성을 포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현대 정통파나 개혁파 유대인들과는 달리 현대사회와 격리된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며 할라카(유대교 종교법)를 고수한다. 21세기의 바리새파라 할 수 있는 하레디파는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부류와 불인정하는 부류로 나뉘어 있다.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하레디파를 ‘국가 안의 국가(A state within a state)’라고 부르는 이유다.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FP)는 이스라엘에서는 ‘미국 못지않게 격렬한 문화전쟁(a culture war no less bitter than the one in America)‘이 진행 중이라고 분석했다. 데이비드 로젠버그(David E. Rosenberg) 편집장은 지금 이스라엘은 ‘초정통파 유대인들의 전성기(apogee)’이며 그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논평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사법개혁은 단순히 사법부의 독립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민주적인 세속 국가로 남느냐 또는 폐쇄적인 종교 국가가 되느냐에 관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하레디파의 세계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왔으나 최근 독·불 합작 공영 방송인 아르테(Arte) 등 유럽 언론들의 심층 탐사 보도를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징병제 군대지만 하레디파는 병역 대상에서 면제되어왔으며 소수의 지원자만 군 복무를 해왔다. 하레디파에게는 이스라엘의 기본법보다 토라(Torah, 구약성서의 첫 다섯 편으로 모세오경 또는 모세율법이라고도 함)의 율법이 더 우선적이다. 이스라엘은 문서화된 헌법은 없고 대신 기본법이 있다.

하레디 남성의 절반은 직업이 없이 세속적인 교육을 포기한 채 토라 공부에만 매진한다. 이들은 정부에서 주는 약간의 생활 보조금을 받는 한편 배우자들이 직업을 가지고 생계를 책임진다. 아르테 특집에 출연한 한 여성은 “남자는 밤낮으로 율법 공부하러 태어났다”며 자신이 가정을 부양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하레디파 가정의 빈곤율은 일반 이스라엘 가정의 두 배다. 중매로 조혼하는 이들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구약 성경 가르침대로 출산율이 높아 현재 이스라엘 인구의 13%에서 2042년에는 21%, 2062년에는 3분의 1을 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의 생활에는 유대교 지도자인 랍비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스마트폰을 구입하려도 랍비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등재한 어플도 사용하기 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레디파 가정에서는 부부가 자녀 보는 앞에서 포옹하거나 신체적인 애정 표현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또한 하레디파 여성 가수는 여성 청중 앞에서만 공연할 수 있다. 남녀유별의 율법 때문이다. 검은 전통 복장에 중절모를 쓰고 길거리에 서 있던 한 하레디 남성은 프랑스 여기자가 질문하기 위해 다가서자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외간 여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율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유대교 근본주의자들에게 이스라엘 대법원은 오랫동안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15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은 인구의 70%가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양성 평등과 같은 세속적인 가치를 옹호해왔다. 특히 ‘종교 대 세속’ 논쟁에서 초정통파 유대인들에게 유리할 수 있는 정책들에 제동을 걸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공장소에서 유대교 지도자가 남녀를 한 장소에 있지 못하도록 한 것은 위법하다”는 2015년 판결이었다. 한 시립 유대인 공동묘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랍비로부터 “남성 조문객들과 화분으로 구분된 공간에서 떨어져 서 있으라”는 지시를 받은 여성이 제기한 소송이었다.

하급심은 “종교에 기반을 둔 남녀유별 조치는 차별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대법원은 “차별이 맞다”며 파기 환송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특정 장소에서 분리되도록 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추구하는 세계관에 위배된다”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2017년엔 유대교 안식일인 ‘샤바트(토요일)’에 소규모 식료품점은 문을 열 수 있도록 한 텔아비브의 조례가 합법이라고 판결했다. 또 유대교 초정통파 신학생들에게 징병을 특별히 면제하도록 한 법률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이런 대법원의 판결이 앞으로는 어려워질 전망이다. 네타냐후 연정의 최종 목표는 대법원 판사들을 대거 물갈이하고 대법 판결을 의회가 다수결로 뒤집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 75년간 어렵사리 민주주의를 지켜온 이스라엘, 그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Quo va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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