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논설위원,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논설위원
권오용 논설위원

얼마 전 어느 지자체의 공무원을 만났다. 고향사랑 기부금 모금이 너무 부진해 시장에게 면목이 없다고 했다. 옆의 지자체는 3억이 넘었는데 자기네는 1억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기부금을 관리하는 전문 인력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세금을 담당하는 과에서 담당자가 기부자를 확인하고 영수증을 보내주는 일이 관리의 전부라고 한다. 특별한 사업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역시 없다고 말한다. 어떤 사업을 하기에는 돈이 턱없이 모자라 한 3년 모아두었다가 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사업은 계획도 없고 관리할 인력도 없는데, 고향이라는 이름만으로 기부를 호소하는 셈이다. 사랑이라는 정서와 답례품이라는 대가가 기부의 유인책으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묻지마 기부를 정부가 국민에게 요청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이렇게 되면 곤란하다. 기부제도는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국민들을 향한 기부 교육이다. 기부자들은 자신의 선호에 따라 기부단체를 선택하고 얼마를 기부할지 고민하는 과정을 거친다. 기부금의 쓰임새를 기부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성과를 기반으로 또 기부를 해주기를 요청한다. 세제 혜택만의 인센티브에 만족하되 내 기부금의 쓰임새가 확인되면 보람을 만끽한다. 그래서 또 기부하고 싶어진다. 이것이 민간 공익법인이 하는 모금의 상식이고 관리의 방식이다. 그런데 관이 주도하는 고향사랑 기부에는 사업도 전문가도 없다. 좋은 일이 사업이고 의욕만이 관리의 유일한 방식이 되어 있다.

그래서 고민하는 지자체 공무원에게 올해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내년에는 먼저 사업계획과 예산을 세우라고 했다. 고향의 발전을 위해 얼마가 들어가니 얼마를 기부해 달라는 것이 기부자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또 많은 모금이 아니라 좋은 사업이 우선이라고 했다. 사업 수행을 위한 전문 인력은 반드시 확보하라고도 조언했다. 어쩌면 이를 통해 사회복지사업에 능통한 전문인력의 채용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 바람직한 고용 창출이 지역을 기반으로 전국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겠다.

일부 지자체의 도 넘은 홍보는 지양되어야 한다. 이미 우리 지역은 무엇무엇을 기부의 대가로 드리겠습니다라고 신문에 광고한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기부의 대가는 착한 사업이지 답례품이 될 수는 없다. 기부하면 무엇을 되돌려 받는다는 왜곡된 기부문화는 배척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우리는 얼마를 모금했고 전국 243개 지자체 중에서 몇 등을 했다는 무의미한 실적경쟁도 경계되어야 한다. 벌써 지역 내의 기업들은 모금 실적에 목마른 공무원들로부터 기부 권유를 받고 있다. 기업의 기부는 금지되어 있지만 역내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주의 입장에서는 관의 목마름을 두고만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지자체가 모금을 늘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딱 부러진 사업과 투명한 관리, 이것만으로 기부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세금을 거둬가는 정부가 앞장서 모금까지 하는 것에 민간 공익법인의 걱정이 크다. 정부가 가져가는 몫만큼 민간의 몫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정부가 고향사랑 기부금을 오랫동안 지방에서 활동해 온 풀뿌리 공익법인을 통해 지역에 환류시키면 어떨까? 지자체별로 고향사랑 기부 플랫폼을 만들어 이곳에 지방 소재의 공익법인을 등재시켜 본다. 기부자들은 답례품이 아니라 공익법인들의 사업을 보고 기부한다. 대신 플랫폼에 등재된 공익법인들은 공시-감사-평가에 이르는 투명성 검증 과정을 거치게 한다.

이렇게 된다면 이 플랫폼은 공익법인들의 투명성과 사업 계획의 경쟁 무대가 된다. 지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비영리 공익법인들은 지자체의 도움을 받아 모금활동에 편의를 제공받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이렇게만 된다면 고향사랑 기부제는 우리나라 기부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투명성 확보라는 성과까지 거둘 수 있게 된다. 출범 둘째 해를 맞는 내년에는 고향사랑 기부제가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우리나라 기부시장을 견인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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