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삼미남’이 삼십대 미혼 남성을 지칭한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고재석 기자가 쓴 책 ‘세습 자본주의 세대’를 읽으면서 말이다. 책은 1980년대생이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왜 윤석열 후보 지지로 돌아섰는지, 그 핵심에 문재인 정부의 참혹했던 부동산 정책 실패가 자리하고 있음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2022년 대선 당시 30대라면 1983년~1992년생일 텐데, 이들이 누구던가.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에 환호했던 세대요, 노무현 대통령 탄생에 열광했던 세대이자, 대학 시절 진중권, 강준만, 김규항, 홍세화 등등 진보 논객의 책을 탐독하며 스스로 진보주의자임을 자랑스러워했던 세대라는 것이다. 그랬던 30대가 자본주의도 세습되는구나를 뼈저리게 곱씹으며, 내 집 마련을 향한 가느다란 희망의 사다리가 여지없이 부서지는 현실 앞에서 미련 없이 민주당 지지를 거두었다는 고백이었다.

그때 20대였던 1993년~2002년생 중에서도 특별히 ‘이대남’은 윤석열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지지했다. 당시 20대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30대 이준석 당 대표가 내세웠던 구호는 ‘여가부 폐지’와 ‘병사 월급 200만 원’이었고, 그 바탕에는 능력주의야말로 공정 실현을 위한 최선의 도구라는 논리가 깔려 있었다.

새삼 대선 때 2030 남성의 투표 성향을 무대로 다시 불러낸 건 유시민이었다. 그는 노무현재단 유튜브에 출연하여 2030 여성 유권자는 지난 대선 때 충분히 자기 몫을 했건만, 2030 남성 유권자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이재명 대표가 탄압을 받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폄으로써, 2030 남성 비하 논란에 빠졌다. 심지어 민주당 지지자는 깨어있는 시민이요, 국민의힘 지지자는 깨어있지 못한 시민으로 양분하는 무모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과거에는 표심이 지역, 계층, 연령, 성별 등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종속변수였다면, 지금은 어느 정당 혹은 누구를 지지하느냐가 독립변수가 되어 사회적 균열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은, 한국의 정치 현실에도 잘 들어맞는다. 이제 계급 불평등이나 지역 차별 등에 따른 이해관계의 충돌보다는, 좋고 싫음이란 원초적 감정에 기반한 충돌이 정치적 분열의 핵심을 이룬다는 주장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여가부 폐지와 병사 월급 200만 원 구호에 열렬히 반응했던 이대남의 세대 정서 깊은 곳에 어떤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을까 궁금하다. 지금의 20대라면 진보 논객의 담론 세례보다는 디지털 테크놀로지 혁명의 충격을 온몸으로 경험한 세대요, 2010년 한국에 등장한 스마트폰을 한 손에 쥐고 사춘기를 지나온 세대 아니던가.

이들이 여가부 폐지를 지지했던 이면에는 젠더 평등을 둘러싼 ‘정치적 올바름’ 속에서 일련의 피로감을 느끼며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있다. 20대 남성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 여성을 차별해본 경험도 없고, 부모님 또한 아들 딸 차별하지 않고 키웠으며, 학교 다니는 동안 선생님도 남녀 차별을 하지 않았건만, 구조적 불평등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니 남성이라면 의당 구조적 성차별에 대해 일련의 책무감을 느껴야 된다는 진보 진영의 주장 앞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을 것이요, 때론 여성우호적 정책으로 인해 여성들에게 새치기당했다는 억울함에 시달리기도 했을 것이다.

게다가 과거 군필자만 공개채용 자격이 부여되던 시절(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다. 1993년 삼성그룹이 여대생 공채를 시작하기 이전, 여성은 대부분 비공식적 채용 대상이었다.), 군 복무는 남성으로서의 의무이자 특권의 요소가 있었지만, 채용과정에서 군필 조항이 사라진 지금, 20대 초반 황금 같은 시기에 ‘군대에서 썩어야 하는 현실’은 심한 박탈감을 부추길 것이 분명하다. 이 대목에서 남성도 희생자라고 주장하려는 순간, 남성 쇼비니스트로 몰리는 현실은 또 얼마나 부당한가.

그렇다고 20대 남성이 보수화되고 있다는 주장에 한 표를 던지려는 것은 아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이대남은 민족 국가 조직을 앞세우는 거대담론보다는 개인주의에 기반한 실용주의를 선호하는 것이요,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 명분보다는 구체적 보상을 요구하는 탈이념화 성향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제 2024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당별로 표심 계산에 한창일 것이요, 지지층 확산 전략을 짜내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세대별 성별 갈라치기 전략만큼은 다시 선거 무대에 등판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지난 대선을 통해 우리가 배운 값비싼 교훈을 망각하는 것은 진정 억울한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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