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논설위원, 전 한국일보 심의실장

정숭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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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것들은 왜 이 모양이냐?”라는 어른들의 탄식은 기원전 1700년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에 수메르 사람들이 만들어 햇볕에 바짝 말린 점토판에도 새겨져 있다고 하지요. 수메르 사람들의 이 글을 두고 젊은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불만은 인류 문명이 시작되면서부터일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불만도 그만큼 오래됐을 거로 생각해야 할 겁니다.

수메르 시대에도 “라떼는 말이야”를 시작으로 온갖 ‘꼰대 짓’ 늘어놓는 늙은이들이 없었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입니다. 수메르의 젊은이들이 돈과 시간이 없어 점토판에 새겨 놓지 못했을 뿐 노인들에게 한 말씩 들을 때마다 속으로, 들릴 듯 말 듯 “요즘 늙은것들은 왜 이 모양이냐?”라고 구시렁거렸을 거라는 말입니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은 더 그럴 것 같아요.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노인들이 눈에 띌 때마다, 수메르의 어른들이 젊은이들 꾸짖듯, 노인들에게 뭔가 한마디씩 하고 싶은 한국 젊은이들도 많아졌을 거라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할 것 없이, 내 이야기 하나만 할게요. 인터넷으로 송금을 하려는데 “인증서가 만료되니 갱신하세요”라는 안내가 먼저 뜹니다. 여러 번 해 본 일이라 인증센터에 들어가 전에 했던 대로 몇 번 클릭해 인증서를 바꾼 후 돈을 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튿날, 또 인터넷 뱅킹을 하려는데 “인증서를 갱신하세요”라는 안내가 또 뜨는 겁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 더 바꿨지요. 그리고 챙겨 보니 전날 송금도 안 됐더라고요. 액수는 얼마 안 됐지만 제날짜에 송금이 안 돼 이자를 내게 됐습니다. “이것들은 틈만 나면 고객 돈 뜯어내서 억대 연봉 받아먹는구나!” 명백한 인터넷 뱅킹 시스템 오류 탓인데 나한테 책임을 지우는 대한민국 은행 것들 버르장머리를 고쳐줄 생각으로 고객센터에 전화했습니다.

“상담직원에게 소리도 지르지 마라, 욕하면 더 큰일 난다. 이거 다 녹음된다”라는 ‘경고’가 흐른 후에 상담직원과 연결됐습니다. 목을 가다듬고, 최대한 점잖게 ‘은행 측’을 꾸짖으려 하는데, 이 상담직원은 내 말을 곧바로 자르고는 “다시 한번 해보세요. 인증센터에서 인증서 갱신을 클릭하세요”라고 합니다. “영감님 번지수 잘못 짚었어요. 영감님이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요”라고 말한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내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점잖음 대신 짜증과 분노가 듬뿍 실린 건 물론이지요. “너, 나 늙다리라고 그러는 거지? 어디 한번 해보자. 나 시간 많다”라는 생각을 담아, 전의를 높이는데, 상담직원 목소리도 점점 까칠해집니다. 하지만 몇 합 겨루지 못하고 내가 무참하게 깨졌습니다.

인증센터에 들어가면 ‘인증서 재발급’, ‘타 은행 인증서 등록’ ‘인증서 갱신’ ‘인증서 관리’…, 이렇게 항목이 뜹니다. 내 신경질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그 상담직원 말을 정리하면 이런 거였지요. “영감님, 갱신하라고 했잖아요. 영감님은 갱신을 안 누르고 재발급을 누른 거잖아요, 다시 인증센터 들어가서 갱신을 클릭하면 만사 해결됩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점점 힘 빠지는 목소리로 “아, 재발급 아니고 갱신을 눌러야 한다 이 말이구나 …”라고 말하고는 먼저 끊었습니다. 내 잘못이 너무나 뻔해 “왜 재발급이 맨 앞에 있느냐? 재발급이나 갱신이나 그게 그거 아니냐?”라고 한마디 덧붙여 볼 기력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끊고 난 후에도 그 상담직원이 “나, 영감님 같은 영감님 벌써 많이 봤어요. 왜 하라는 대로 안 해서 우리를 까칠하게 만드나요?”라는 말도 하는 것 같았고, 또 “요즘 늙은이들 왜 이러냐?”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딴 늙은이 이야기도 하나 할게요. 마을버스를 탔는데, 한 노인이 내리면서 카드를 태그하더니 곧장 기사에게 왜 요금이 이렇게 많이 찍혔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우리 동네 마을버스 요금은 1350원인데 이거보다 훨씬 많은 액수가 찍혔다는 거였습니다. 알고 보니 이 노친네, 내릴 때는 누적 요금이 찍히는 걸 모르고 소리를 지른 건데, 그날 젊은 버스기사 표정도 “요즘 늙은 것들 왜 이러냐?”라는 것 같았습니다.

딴 수 없습니다. 모르는 거 나오면 그저 열심히 익히고, 잘못되면 내 실수 아닌가 먼저 살피고, 남의 실수 보면 흉보거나 비웃기 전에 이해해 주려 노력하고…. 이것 외에 무슨 방도가 있겠습니까. 늙은이는 젊은이들 실수 보면 “아직 젊잖아, 곧 익숙해지겠지”라고 생각하고, 젊은이들은 늙은이들 실수 보면 “아유, 늙으셨잖아. 나도 늙을 텐데 이해해야지”라고 서로 이해해주며 같이 살아가는 거지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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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점토판. 사진: World History Encyclopedia, CC. Jan van der Crabben.
수메르 점토판. 사진: World History Encyclopedia, CC. Jan van der Crabben.

 

아래는 수메르 사람들이 점토판에 새겨 놓은 ‘요즘 젊은것들 꾸짖는 글’을 한국 젊은이들이 늙은이들 꾸짖는 걸로 살짝 바꿔 봤습니다. 그냥 재미로요. (괄호 안이 수메르 점토판 글.) 

어디 사는데 오늘 또 나왔냐?(어디에 갔다 왔느냐?)

갑갑해서 나와 봤습니다.(아무 데도 안 갔습니다.)

도대체 왜 집에 안 있고 나다니느냐? 제발 나잇값 좀 해라. (도대체 왜 학교에 안 가고 빈둥거리느냐? 제발 철 좀 들어라.)

왜 그렇게 이해심이 없느냐? 젊은이들에게 고마워하고 항상 너그럽게 대해라. (왜 그렇게 버릇이 없느냐? 너의 선생님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항상 인사를 드려라.)

심심하면 경로당 가지 않고 왜 밖을 배회하느냐? 경로당이 싫으면 집에 있거라. (왜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오지 않고 밖을 배회하느냐?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오너라.)

내가 다른 노인들처럼 용돈이라도 벌어 오라 하였느냐?(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땔감을 잘라 오라 하였느냐?)

주식이나 코인 투자해서 재산 불려달라 했느냐?(쟁기질하게 하고 나를 부양하라고 하였느냐?)

도대체 키오스크 쓰는 법은 왜 안 배우느냐?(도대체 왜 글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냐?)

아비가 자식 안 부끄럽게 하는 것은 신께서 인간에게 내려주신 운명이다. (자식이 아비의 직업을 물려받는 것은 신께서 인간에게 내려주신 운명이다.)

 ......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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