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 논설위원, 가정경영연구소장,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가족 문제로 넌지시 상담을 청하는 친구나 지인들이 많다. 그중에도 자식 문제로 속을 끓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몇 마디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아니라 10여 회의 상담을 필요로 하는 심각한 문제이면 다른 전문가를 소개해 준다. 아무리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어려울뿐더러 상담자의 기본인, 끝까지 비밀을 유지하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가 어릴 때는 1차 방정식이었는데 자녀가 커갈수록 문제의 난이도는 점점 높아져 2차, 3차 방정식처럼 풀기가 어렵다. 세상에 참 어려운 일이 많지만, 자식 문제만큼 어렵고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또 있을까?

장성한 자녀와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 무엇보다 적당한 거리,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할 것을 강조한다. 결혼한 자녀들을 분가시킨 뒤에도 심리적, 정서적으로 떠나보내지 못하고 끊임없이 간섭하고 개입하면서 갈등을 부르는 부모가 있다. 며느리와 사위를 비교하고 경쟁시키면서 생각 없이 이 말 저 말 옮기다가 오해와 불신이 커져 자녀를 서로 원수지간처럼 갈라놓기도 한다.

지금이라도 가르쳐야 한다며 다 큰 자식 버릇 고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는 부모도 있는데 그 전에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부모 잘못이 크다. 아들딸은 그래도 함께한 세월이 있고 키운 공을 모르지 않기에 소화가 되는 얘기도 며느리나 사위에게는 서운하고 언짢은 기억으로만 남을 수 있다. 그러기에 가능하면 지적하고 나무라는 일은 줄이는 게 좋다.

부모로부터 경제적, 심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손 벌리고 의존하면서 부모 노후를 발목 잡는 자식도 많다. 결혼한 자녀들과의 끈끈한 가족애를 자랑하는 부모도 있는데 자녀들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서로가 독립된 삶을 살지 못하고 지나치게 얽혀서 서로를 구속하고 의존하는 사이는 건강한 관계라고 할 수 없다.

비행기에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산소마스크를 부모가 먼저 쓴 뒤, 어린 자녀를 도우라는 지침이 있다. 그런데 자녀 교육에 몰빵하고 재산을 다 물려준 후, 자녀로부터 부양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어 부모와 자녀가 모두 불행해지는 사례를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자녀를 삶의 전부로 삼지 말고 독립시킨 후에는 노후를 챙기면서 자녀에게 짐이 안 되는 길을 찾는 것이 먼저다.

대학 안 가고 장사하겠다면서 등록금을 미리 달라, 결혼 자금이나 사후에 물려줄 유산을 미리 주면 사업 자금으로 쓰겠다면서 마치 맡겨 놓은 재산을 내놓으라는 식으로 떼쓰는 자식이 있다면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그것은 부모 재산이며 장사나 사업은 네 돈으로 하고 책임도 네가 져야 하는 것이라고. 부모의 불안심리를 이용하여 집 나가겠다. 죽어버리겠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할 때도 휘말리거나 흥분하지 말고 부부가 뜻을 모아 당당하게 대처해야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누가 최종 결정권을 가지는 것이 옳은지 따져보라는 조언을 할 때도 있다. 대학에 갈 건지 말 건지, 어떤 전공을 선택할 것인지, 어떤 직장을 선택할 건지, 결혼이나 출산 여부, 손주 이름을 뭐로 할지, 손주를 사립학교에 보낼 건지 공립학교에 보낼 건지는 자녀가 최종 결정권을 갖는 것이 옳다. 부모나 조부모로서의 희망 사항이나 걱정은 얘기할 수 있겠지만 최종 결정권은 자녀에게 주고 그 결정을 존중해 준다면 책임도 자녀가 지는 것이다. 손자녀 양육이나 교육 문제는 부모인 자녀에게 맡기고 부모가 볼 수 없는 것, 줄 수 없는 것을 챙겨주는, 넉넉하고 지혜로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자.

4년제 대학을 4년만 다니는 학생이 드물 정도로 휴학이나 군대 등으로 ‘공부 중’인 자녀가 많다. 취업은 안 되고 아무 일이나 하기는 싫고, 독립해서 나갈 형편은 못 되니 계속해서 부모의 지원과 보살핌을 받으며 안주하기를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나가야 한다.

자식이 결혼을 안 해서 걱정이라는 부모가 많지만, 행복한 삶을 위해 결혼할 것인지 동거나 독신을 선택할 것인지는 자녀들의 몫이다. 시간을 갖고 설득을 해 보았지만, 반대하는 결혼을 자녀가 끝까지 하겠다면 그때부터라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지지해 주는 것이 어른의 태도라 할 것이다.

하지만 마흔을 지나고 쉰이 넘도록 결혼도 안 하고 부모 집에 계속 얹혀사는 것은 기한을 정할 필요가 있다. 자녀를 집에서 내보내거나 한 푼도 안 보태주는 것이 부모의 목적은 아니며 진정한 어른으로 키워서 잘 떠나보내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신체적, 지적, 사회적, 도덕적 성숙과 함께 무엇보다 경제적인 독립을 해야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가 저지르는 큰 실수나 착각 중의 하나가 “다 너 잘 되라고,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며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일정 나이가 되거나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면 성인 대 성인의 관계로 자녀들의 의견과 선택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수없이 반복했던 똑같은 얘기는 삼가자. 자녀를 위해서 하는 얘기라지만 자신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하는 설교나 훈계, 충고나 지적은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젊었을 때는 아무리 얘기를 해도 못 알아듣는 게 있다. 그 입장이 되어보고 스스로 깨져 보고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대가를 치른 후에야 깨닫게 되는 세상 이치가 있다. 그때까지는 ‘끊임없이 내려놓고 버리고 믿고 존중하면서 기다리기’를 화두처럼 붙들고 결의를 다지고 또 다지면서 인내하자.

내가 키웠으니 내 자식을 다 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린 시절의 자녀와 현재의 자녀는 다르다. 부모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는 것, 드러내지 않는 것도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부모만 모르는 것도 많다. 까다롭고 어렵고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털어놓고 상의할 수 있는 부모, 조용히 들어주고 공감하며 격려해 주는 마음의 항구 같은 부모, 자녀가 닮고 싶은, 성숙한 부모가 되기 위해서 부모도 어른 되는 연습을 열심히 해야 한다. 자녀를 나무에 비유하면 햇빛이요 물이요 공기이며 기름진 토양이라고 할 수 있는 부모가 짐 되지 않고 즐겁고 화목하게 잘 사는 일이야말로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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