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현 논설위원, (주)터치포굿 대표

박미현 논설위원
박미현 논설위원

나무가 열매로 결실을 맺고 씨앗으로 내년의 한해살이를 준비하는 가을철이다. 매년 이맘때면 사회에서도 각종 활동의 성과를 정리하고 나아갈 방향과 개선점을 정리하곤 한다. 올해는 특히 전국 4090개(2022년 9월 기준이니 2023년엔 더 늘어났을 것이다) 사회적기업의 활동이 도마에 오르고 있어 뉴스를 볼 때마다 귀가 가려울 지경이다.

“사회적기업도 형태상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인데 왜 정부가 지원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은 사회적 경제에 우호적인 정부 때도 제기되곤 했다. 하지만 사회적기업이 단순히 좋은 일을 하기 때문에 지원을 받는다거나 지원을 받아야 생존하는 경쟁력 없는 조직이라는 오해는 쉽게 풀렸다.

사람들이 모여 정치와 사회를 구성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소외되는 시민이 발생하고 각종 사회문제도 같이 발생했다. 세금이라는 형태로 사회문제 해결을 정부에 위탁했지만, 인구가 많아지고 사회문제도 복잡다단해지면서 정부가 직접 해결하는 데 한계가 생긴다. 정부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서 비정부기구, 비영리 단체가 생겨나고 복지단체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전문 조직도 발족됐지만 기업이라는 전략적이고 적극적인 면모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합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사회적기업의 등장 배경이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에서 사회적기업의 존재 이유는 더 빛이 났다. 경제적 위기가 동반돼 많은 기업이 인력 구조조정을 했던 것과 달리 90%의 사회적기업은 일자리 취약계층이 길거리로 내몰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알기 때문에 적극적 대응을 통해 고용 수준을 유지했다. 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유연한 대처를 무기로 삼아 36.4%의 기업이 신규 제품 및 서비스 개발로 위기를 함께 넘겼다. 심지어 15.1%의 사회적기업은 대출을 통해 일자리를 유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기업 조직원의 충성심이 높아지고 업무 효율이 좋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마스크 제작이나 소독 등 코로나19 특수를 누린 사회적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기업을 돕는, 일반 경제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모든 사회문제가 해결되어 파트너인 사회적기업이 필요하지 않고 존재의 이유가 사라졌다면 사회적 기업가들은 다 같이 손잡고 거리로 나와 축제를 벌이며 축하할 것이다. 코로나19가 큰 고비를 넘기면서 간이선별소와 지원제도가 없어지는 것을 아무도 아쉬워하거나 지속을 원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날이 심해지는 기후위기와 사회문제 앞에서 사회적 경제는 더 큰 위기를 겪고 있다. 단순히 예산이 줄어들었다는 문제가 아니다. 가장 잘 눈에 띄기도 하고, 화가 나는 부분은 사회적 창업을 준비하는 팀에 대한 교육과 사업비 지원을 하는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예산을 없애다시피 삭감한 것이다. 대학에서 창업 수업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고, 내년 계획으로 사회적기업 창업을 준비하는 시민을 만나는 기회가 많다 보니 더 강하게 체감된다.

지원금만 보고 사회적기업을 창업하는 팀은 나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적기업을 시작하겠다는 것 자체가 불공평하고 비효율적인 출발선에서 출발하는 일이다. 장애인을 고용해 훈련하는 것은 비장애인 훈련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롤로 되어 있는 새 원단에 맞추어 표준화된 패션 산업에서 버려진 조각 원단을 사용하려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표준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사회적기업의 지원은 초기 3년 최대 5년으로 제한되어 있어 계속 비효율적으로 세금을 쏟아붓는 모델은 사회적기업에서 가능하지 않다. 훈련시간을 더 들이더라도 훈련을 마치고 나면 비장애인과 경쟁해도 우위에 있는 사업 모델을 만들기 위해 사회적기업은 고군분투한다. 업사이클(upgrade+recycle, 버려진 자원으로 고품질 제품을 만드는 것) 기업들은 조각난 원단으로 만든 제품이 기존 제품과 비교할 때 더 가치있고 더 편하도록 밤낮없이 연구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을 보전하고, 불공정한 곳에서 시작을 선택한 사회적기업들이 적어도 경쟁시장에서 같은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사회적기업 지원의 핵심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 창업을 방법으로 선택하여 생각도 해본 적 없는 기업가의 길로 들어선 지 17년차이다. 그간 대통령이 여러 번 바뀌었고, 크고 작은 변화를 마주했지만 정부의 기본 역할인 사회문제 해결에 효율적 방안을 제시하는 사회적기업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후위기로 인한 질병 발생, 새로운 사회문제 등장으로 사회적 경제는 국제적으로 가장 성장하는 분야 중 하나이다. ESG 열풍을 타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환경적(Environmental) 가치와 더불어 사회적기업의 풍부한 사회적(Social) 경험의 가치를 배우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집에서는 식충이라고 구박받다가 밖에서는 환대받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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