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논설위원, 전 KBS 해설위원실장

이동식 논설위원
이동식 논설위원

20세기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도예작품이 지난달부터 청주에서 전시되고 있다. 청주의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청주 미술픔 수장센터)에서 일반 공개되고 있는 작품은 107점이다. 2021년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돼 있던 작품들인데, 이번에 공개가 되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미술가 피카소의 작품은 회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 그가 65세 되던 1946년 여름에 남프랑스 도예마을인 발로리를 방문해 마두라 공방을 운영하는 조르주 라미에 부부를 만나 점토로 시작품을 몇 개 만들어본 뒤, 이듬해 그것들이 다 구워져 작품이 된 것을 다시 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격해서 도예에 전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피카소 도예전 포스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피카소 도예전 포스터. 

그는 91세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마두라 공방을 통해 3000점이 넘는 도예작품을 만들어내었다. 지금부터 41년 전인 1982년 2월 27일부터 약 두 달 동안 덕수궁에서 KBS 주최로 피카소 도예전이 열렸을 때 186점이라는 많은 작품이 소개됨으로써 우리도 피카소의 도예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 측이 그동안 그의 도예작품을 100점 이상이나 모은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회장의 다양한 관심과 수집안을 다시 확인하는 셈이다.

피카소는 처음엔 화병과 항아리로 창작을 시도하다가 인물이나 동물형으로 바꾸어 만들기 시작했고, 점차 그만의 독창적 표현방식을 찾아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접시에 그림을 그려내는 초기적 표현방식을 넘어 도예의 흙을 조각작품의 흙으로 생각하고 다양한 형태를 포함하고 변형해 표현세계를 다양화, 다채화하고 있다. 곧 도예에 회화와 조각, 판화의 요소를 두루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인과 동물, 신화와 투우, 사람들과 얼굴 등 각각의 주제를 반복적으로 표현하거나 주제의 상충적 결합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을 즐겼다. 피카소 특유의 입체주의 성향도 드러나고 있다. 

     전시된 피카소의 도예작품 중 몇 점.
     전시된 피카소의 도예작품 중 몇 점.
 9월 1일 시작된 이번 전시는 내년 1월 7일까지 열린다.  사진 이동식
 9월 1일 시작된 이번 전시는 내년 1월 7일까지 열린다.  사진 이동식

그런데 이런 그의 도예작품들을 보면서 우리 한국인들은 뭔가 굉장히 친근한 요소가 있음을 느끼지 않는가? 엄밀하게 말하면 피카소의 작품들은 자기가 아니라 도기라 하겠다. 도기는 자기에 비해 표현력이 다양하다.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그의 대표작들은 회화작품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나는 그것을 우리 조선시대 분청도예의 분위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작품에 우리나라 분청의 요소가 녹아있다는 뜻이다. 대개 피카소 연구자들의 글을 보면 다채로운 표현세계에 대해서는 많이 밝혀놓았지만, 도자예술에 영향을 준 동양 도예가들의 작품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피카소는 도예를 막 시작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1950년에 파리에서 일본의 현대 도자전을 보고 동양의 도자예술에 매료된다.(田口知洋 ピカソの陶器と日本陶磁--陶器芸術における伝統と近代) nii.ac.jp https://cir.nii.ac.jp › crid ​

기타오지 로산진. 도예가, 서예가, 요리 연구자 등 면모가 다양하다.
기타오지 로산진. 도예가, 서예가, 요리 연구자 등 면모가 다양하다.

1950년 11월 프랑스 파리의 체르누스키 미술관에서 현대일본도자전이 열렸다.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49명의 작품 71점이 몇 달 동안 전시돼 프랑스인들의 호평을 받았고, 소문을 들은 피카소도 전시장을 찾았다. 피카소는 전시작품들 가운데 특별히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 魯山人, 1883~1959)의 작품에 매료되어 작품에 대해 메모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그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이 전시회를 자신이 있는 남프랑스로 옮겨 열자는 것이었다. 피카소의 강력한 요청으로 이 작품들은 이듬해인 1951년 7월부터 두 달 동안 그의 작업장이 있는 남프랑스의 발로리스에서 전시됐다. 이때 피카소 자신도 40여 점을 출품했다. 피카소가 자유자재의 표현력을 발휘해 많은 작품을 빚은 시기이다. 전시회를 자신의 마을로 유치할 만큼 일본 현대 도예작품에 매료됐으니 그 인상이나 느낌이 그의 이후 작품에 녹아들어갔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전시회에는 로산진 외에도 카와이 간지로(河井寬太郞, 1890~1966), 토미모토 겐기치(富本憲吉, 1886~1963) 등의 도예작가들이 참여했는데, 이들은 한국의 옛 도자기 가마를 방문해 한국의 도자기 제조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그 영향을 그들의 작품에 짙게 남긴 사람들이다. 1950년을 전후해서 도자기에 심취했던 피카소가 일본 현대도예에 깊은 관심을 보였기에 이후 그의 도자기 작품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피카소는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은 하지 않는 예술가이기에 일본인들은 나서서 그런 말을 하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피카소가 일본 현대 도예를 좋아했고, 그 도예의 뿌리는 한국이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피카소는 일본 도자기를 통해 한국 전통도자기의 세계를 흡수한 것이 된다.

 일본 아다치 미술관의 로산진 특별전. 2023년 6월
 일본 아다치 미술관의 로산진 특별전. 2023년 6월

 

일본 도예가 로산진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 시마네(島根) 현의 아다치(足立)미술관에서는 지난 6월 로산진 특별전이 열렸다. 전시장 분위기는 우리나라 도자기 전시장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는데, 이러한 로산진의 도예세계를 피카소가 보고 칭찬한 만큼 그의 창작기법이나 표현세계가 피카소에 녹아 들어갔을 것이다.

1954년 뉴욕에서 만난 피카소(왼쪽에서 두 번째)와 로산진(오른쪽 끝).
1954년 뉴욕에서 만난 피카소(왼쪽에서 두 번째)와 로산진(오른쪽 끝).

​피카소는 마두라 공방에서 도공들이 빚은 접시나 화병에 그림을 그려 넣는 작업을 하다가 점차 도자의 모양을 변형하면서 자신만의 조형적 특성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면서 판화처럼 원 작품을 만들면 그것을 재현하는 작품들을 공방에서 도공들과의 합작으로 일정한 숫자로 만들어내어 일반인들이 그의 도예를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당시만 해도 그의 원작들은 너무 고가여서 일반인들은 그의 작품을 즐길 엄두도 내지 못하였는데, 피카소는 대중을 위해 에디션을 넣어 도자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그가 도입한 도예에서의 에디션 개념은 20세기 도자 역사에 새로움을 불어넣었고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했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되고 있는 작품들도 에디션 작품이란다. 원본을 복제한 ‘에디션 피카소(edition picasso)’, 작품 원판을 석고틀로 제작하고 점토로 찍어내는 ‘엉프렁트 오리지널(empriente originale)’, 리놀륨 판화에 새겨 만든 도장을 점토 위에 눌러 제작한 ‘뿌앙송 오리지널 드 피카소(poinçon original de picasso)’ 등의 방법으로 만든 작품들이라고 현대미술관 측은 설명한다.

도예가이며 서예가이며 미식 연구가로 최근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로산진은 28세 때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와서 약 3년 동안 머무는 동안 조선의 도자기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1928년 5월에 다시 와 계룡산, 강진, 순천, 하동 등지를 돌며 도자기도 수집하고 파편을 끌어보아 트럭으로 한 대 분의 도자기를 일본으로 반출했다. 이어 막 시작한 자신의 가마에서 조선 도자기를 철저히 연구했다(강소영, ‘미의 탐험자 기타오지 로산진과 한국’, 일본연구 제58호). 그의 작품에서 계룡산 분청의 영향을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그것이 1930년대 이후 그의 도자기 작품으로 다시 탄생한 것인데, 이런 사실을 눈여겨보지 않은 우리들은 우리 도자문화의 유럽 전파를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1982년에 KBS 주최로 피카소 도예전이 서울에서 열렸지만 이런 점은 어디에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왼쪽이 로산진의 사발. 오른쪽은 계룡산 사발(일본 소재)
왼쪽이 로산진의 사발. 오른쪽은 계룡산 사발(일본 소재)

생전에 피카소는 파리에서 도자기 예술에 대해 강의하면서 우리의 '분청'을 언급했다고 당시 유학생이었던 민희식 전 불문과 교수가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피카소도 우리 도자기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우리는 외국 유명 대가들의 작품세계를 보고 감탄하지만 그 속에 우리 문화의 특성과 요소가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세계로 퍼져나갔는지를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 더 수준 높은 문화를 창조할 역량을 갖추게 할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도자기 수집에 보여준 열정에 탄복하면서 피카소의 도자기예술에 숨어 있는 우리 조상의 숨결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도록 관계자들의 연구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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