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도시설계)

김기호 논설위원
김기호 논설위원

가족관계가 변화하고 또 고령화해가는 현대사회에서 젊거나 늙거나 많은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외로움이며 이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 부족과 관련이 있다. 젊은이들에게 많이 보이는 ‘혼밥’이나 ‘혼술’ 현상이나 어르신들이 공원 벤치나 길가에 ‘멍 때리고’ 앉아 계시는 모습도 이런 현대사회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근래 로봇은 매우 빨리 우리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 가고 있다. 공장에서 어렵거나 위험한 일을 하던 로봇이 이제는 식당이나 가정에서 편리한 서비스를 하는 등 더 가까운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최근에는 AI를 이용한 챗봇과 같이 우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생성형 AI로봇’이 큰 화제다.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이 반려견 등을 키우듯 반려로봇을 들일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외롭고 대화에 목마른 사람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큰 위로를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심하게, 무료하게 탑골공원 팔각정 계단에 앉아 계시는 어르신들. 사진: 2006, 김기호
무심하게, 무료하게 탑골공원 팔각정 계단에 앉아 계시는 어르신들. 사진: 2006, 김기호

로봇의 형태도 이전에는 작업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기계적 형태를 취했던 것에 비해 일상생활에 가까운 것들은 점차 그 스케일이나 형태가 인간적이 되고 있다. 앞으로는 얼굴이나 피부가 사람과 비슷한 로봇도 나온다고 하니 자칫하면 로봇과 오래 사귀면서(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아니 할 말로 로봇과 정이 들고 우정이나 혹은 애정을 느끼며 사람과 혼동하는 일도 생긴다면 어쩔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공장용 로봇팔이 일하는 모습(좌), 휴먼스케일의 가정용 서비스 로봇(우). 자료: 구글 캡쳐
공장용 로봇팔이 일하는 모습(좌), 휴먼스케일의 가정용 서비스 로봇(우). 자료: 구글 캡쳐

요즘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는 여가생활이다. 해외여행 같은 특별한 이벤트를 제외하면 도시 내 일상생활에서 여가를 보내기에 공원이나 녹지만 한 곳이 없다. 오죽하면 숲세권(숲 근처 지역)이라는 말이 등장하겠는가. 공원 옆이라 조망이 잘 확보된다는 개인적 이득과 함께 언제라도 이웃이나 친지와 함께 소소하게 여가활동을 공원과 연계하여 즐길 수 있다.

아파트 주거지 근린생활 중심역할을 하는 쇼핑센터. 신반포 주구중심. 사진: 김기호, 2017.
아파트 주거지 근린생활 중심역할을 하는 쇼핑센터. 신반포 주구중심. 사진: 김기호, 2017.

그래서 대중교통 역을 중심으로 생활편익을 도모하는 역세권이라는 커뮤니티 중심 외에 요즘은 공원을 중심으로 좀 다른 생활 속 즐거움(자연과 문화 등)을 추구하는 숲세권이라는 커뮤니티 중심도 생각할 수 있다. 예전에는 식료품 잡화 등을 구매하는 슈퍼마켓 등 동네 쇼핑센터가 커뮤니티 생활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문화나 여가를 일상에서 즐기는 근린공원이 새로운 근린 커뮤니티 중심으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의 생할문화가 생계형에서 여가문화형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서울시는 지난해 두 번째 시립도서관(첫 번째는 구 서울시 청사를 이용한 서울도서관)을 서대문구 가재울 뉴타운 중앙근린공원과 연계하여 건립하는 설계안을 국제설계공모를 통하여 선정하였다.

가재울중앙공원 옆 ‘서울시립 김병주도서관’ 단면도(2022 현상설계 당선안). 좌측 공원과 연계되는 1층은 대부분 커뮤니티 용도(북카페 포함)로 설계되어 있다. 공원 속 도서관을 표방하고 있다. 자료: 서울시 보도자료, 2022.9.30.
가재울중앙공원 옆 ‘서울시립 김병주도서관’ 단면도(2022 현상설계 당선안). 좌측 공원과 연계되는 1층은 대부분 커뮤니티 용도(북카페 포함)로 설계되어 있다. 공원 속 도서관을 표방하고 있다. 자료: 서울시 보도자료, 2022.9.30.

개인기부금(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300억 원)으로 지어지는 첫 번째 시립도서관으로, ‘서울시립 김병주도서관’으로 불린다. 공원이라는 매력 있는 근린생활권 중심에 도서관이 가세하여 향후 뉴타운의 커뮤니티센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서울시의 여러 공원에는 숲속작은도서관(도서관법 시행령의 작은도서관 등록)들이 운영되고 있다. 노원구 상계근린공원 속에 있는 상계숲속작은도서관(2014년 개관)은 금년 리모델링을 통하여 더욱 쾌적한 근린 커뮤니티센터로 거듭났다. 애초부터 복합문화센터의 성격을 띠고 지역아동센터와 북카페를 함께 아우르며 출발한 작은도서관으로, 주민들의 성원과 호응에 힘입어 리모델링으로 더욱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제 사람들이 공원에 산책 나왔다가 우연히 도서관에 들르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에 오기 위해 산책을 하게 되는 패턴으로 생활이 바뀌기를 기대하고 있다.

상계작은도서관은 거의 전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용한다. 함께 있는 북카페와 도서관의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활동을 통해 상호 보완하며 좋은 이용 경험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북카페는 주민봉사단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며 숲속도서관의 운영에도 일부 재정적 도움이 되는 등 기능 복합화가 서로 윈-윈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상계숲속작은도서관 열람실. 외부로 상계근린공원의 숲이 잘 보인다. 필요할 경우 도서관 내 활동이 외부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사진: 내손안에 서울, 뉴스, 2023.9.19.
상계숲속작은도서관 열람실. 외부로 상계근린공원의 숲이 잘 보인다. 필요할 경우 도서관 내 활동이 외부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사진: 내손안에 서울, 뉴스, 2023.9.19.

이 같은 공원의 변화에 대하여 너무 여러 기능이 공원을 잠식함으로써 결국 공원이 생태적 경관적으로 잘 감당할 수 있을지 조경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이름이 ‘OO도서관공원’이 아니라 ‘OO공원도서관’으로 불리는 만큼 공원에 방점이 찍힌 점을 유념하여 공원의 생태적 측면을 존중하며 다른 이용을 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가지 도시시설 중의 하나였던 공원이 도서관 등을 품에 안으며 우리 커뮤니티 생활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매우 신선하고 긍정적인 변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로봇친구를 찾기 전에 사람친구나 동식물친구, 나아가 책 친구를 만나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제공하는 활짝 열린 공원커뮤니티센터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10월의 하늘이 우리를 숲속작은도서관으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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