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우현 논설위원, 한불협회 회장, 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전 숙명여대 객원교수

손우현 논설위원
손우현 논설위원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하마스가 지난 7일 이스라엘에 기습 공격을 감행하면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지상전으로의 확전이 임박한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5일(현지 시각) 미 CBS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한다면 “큰 실수"(”big mistake")가 될 것이라며 자제를 촉구했다. 외신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르면 이번 주 이스라엘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미국은 대(對) 이스라엘 추가 공격 및 전쟁 확대를 억제하기 위해 중동 지역에 항공모함전단과 F-15E 전투기 등을 추가로 배치했다.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제 우크라이나에서 중동으로 분산되고, 미국이 우려하던 두 개의 전쟁이 현실화되고 있다.

외신에 의하면 현재까지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의 사망자 수는 3500명이 넘으며 피란민 수는 100만 명에 달한다.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지구 주민 230만 명의 절반에 해당하는 110만 명에게 13일 내린 대피령 마감시한을 다시 연장한 가운데 세계보건기구(WHO)는 대피령은 '사형 선고'와 다를 바 없다고 경고했다. 지상전이 시작될 경우 잡혀간 인질과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인간 방패로 쓰이면서 ‘인도적 재앙’이 우려되고 있다.

한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뒤 이란으로부터 무기와 훈련 등을 지원받았다고 밝히자 미국과 카타르는 카타르 은행에 예치돼 있는 이란 자금 60억 달러(약 8조 원)를 이란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합의했다고 12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이는 미국의 대 이란 제재에 따라 한국에 동결돼 있던 원유 대금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내년 미국 대선의 새로운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공화당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이 이란에 (억류자) 석방을 대가로 60억 달러를 지급했다”고 바이든 행정부를 공격했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도 X(옛 트위터)에 “이란이 이스라엘을 겨냥한 이번 전쟁의 자금을 댔고, 조 바이든의 대이란 유화 정책이 그들의 금고를 채워줬다”고 비판했다. 폭스뉴스 등 우파 매체들도 비슷한 논조의 보도를 내놓았다.

앞서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기습을 당한 7일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즉각 전화회담을 한 후 백악관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은 가자의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이 이스라엘에 자행한 이 끔찍한 공격을 분명히 규탄한다”며 “우리는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수단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선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미국 사회 유대인 단체장들을 백악관에 초청, 이스라엘과의 연대를 과시했다. 이 모임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가 주선했는데, 변호사인 그는 미국 부통령 배우자로는 최초의 유대계다. 미국은 국무장관, 법무장관 등 정부 요직과 정계, 재계, 학계, 언론계, 문화계 등 사회 각 분야에 유대계 엘리트들이 포진해 있다. 미 정계가 여야를 초월하여 이스라엘을 전폭 지지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을 이스라엘에 급파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함께한다”(“We stand with Israel.”)고 선언한 블링컨 장관은 이스라엘 일정을 마친 뒤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요르단, 카타르,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등도 연쇄 방문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 순방 결과를 가지고 16일 이스라엘을 다시 방문 중이다. 한편 그는 14일 이스라엘에 대해 비판적인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도 전화통화를 해 중국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의 확산을 막는 데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AFP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 등이 보도했다. 미국이 중동으로 전쟁이 확산되지 않도록 주변국들과 중국에 대한 외교 총력전을 이어가는 동안 러시아는 1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 채택을 제안했다.

미국의 보수주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은 2019년 보고서에서 “미국은 동시에 두 개의 큰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The US may not be able to fight two big wars at once")이란 평가를 제시한 바 있다. 미국은 두 개의 전장(戰場)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과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개선을 추구해왔다. 그 핵심이 미국이 공을 들이고 있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 움직임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가 양국 간의 수교를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사상자가 늘어나면 사우디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할 것이며 하마스가 이를 노리고 이번 기습 공격을 자행했다는 분석도 있다. 사우디 언론은 서방 국가들의 이스라엘 지원을 비판하는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스라엘이 공격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하마스는 유대교 안식일 새벽에 5000여 발의 로켓포탄을 퍼부었지만 세계 최고의 정보 수집력을 자랑한다던 이스라엘 모사드는 공격 징후 탐지에 실패했다. 이스라엘은 수십억 달러를 들여 ‘아이언 돔’ 로켓 방어 시스템을 도입하고, 무장 세력 침투를 막기 위해 스마트 국경 시스템과 지하 벽을 설치했지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막지 못한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아랍의 기습 공격에 대비하지 못한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 최악의 정보 실패로, ‘이스라엘판 9·11 테러’ ‘중동판 진주만 공습’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뉴욕타임스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군사 기밀과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deep knowledge’)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태가 이스라엘인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며 그 결과로 이들의 정부와 군에 대한 신뢰는 흔들리고 있다고 논평했다.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의 유발 샤니(Yuval Shany)교수는 ”국민들은 정부와 군부 지도자들에게 분노하고 있다“며 ”건국한 지 75년이 지났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국민 생명 보호라는 기본적인 책무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네타냐후가 권력에 대한 견제를 약화시키기 위한 이스라엘 사법제도 재편에 몰두하면서 가자 사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고 분석했다. 미 NBC 방송은 이스라엘에서 네타냐후 반대 여론이 비등하고 있으며 이번 전쟁으로 그가 사임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이번 사태는 유가 급등과 세계 경제 불안을 초래하고 우리 경제와 안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의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Politico’)는 이번 전쟁으로 미국의 대(對) 이란 제재가 강화되고,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개선이 무산되며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며 그럴 경우 유가는 급등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 중동의 화약고를 성공적으로 관리해 왔다고 자평해 온 바이든 행정부에게 '충격’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장기화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추이가 내년 미 대선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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