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신구대식물원 원장

전정일 교수
전정일 교수

식물원장으로 다시 돌아와서 마주하는 식물원의 모습은 일반 교수로서 다녀갈 때와 많이 다르게 보인다. 책임에서 벗어나서 바라볼 때는 아름답고 멋있게 보이던 꽃과 나무들도, 다시 책임을 지고 나니 어딘가 좀 부족해 보이기만 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되고, 보완해야 할 것은 없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런 마음으로 식물원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소나무와 젓나무의 모습에서 새삼 자연이 알려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식물원 한쪽에는 ‘나무관찰원’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을 심어서 그 특성을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약 15년 전에 이 나무들을 심을 때 광경이 생각난다. 식물원이기에 큰 나무를 심기보다는 작은 나무들을 심어서 커가는 과정도 볼 수 있게 하자는 생각에 대부분 동의했었다. 그렇게 해서 작은 나무들을 심다 보니 다소 빼곡하게 자리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나무의 일생에 대해 생각해보면 15년이 그리 긴 세월은 아니다. 그러나, 그 길지 않은 시간에도 나무관찰원의 나무들은 어느새 저마다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어른으로 자라나 있었다. 아이를 키울 때, 마냥 어린애 같았던 아이에게서 어느 날 문득 성숙해진 면모를 발견하면서 놀라는 마음과 비슷한 느낌이다.

어릴 때 빼곡하게 심었던 나무들이 이제는 제법 몸집을 갖추다 보니 경쟁이 심해지고, 저마다 살아가려는 노력을 다하는 과정에서 나무들이 가진 고유 특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한 집에 여러 형제가 자라다 보면 각자의 개성이 강해지면서도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처럼, 나무들도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식물원의 ‘나무관찰원’에서 시선을 붙잡은 나무는 ‘젓나무’와 ‘소나무’였다. 둘의 특성을 살려 심었지만, 이웃하게 심기다 보니 커가면서 서로를 심하게 간섭하고 있다. 젓나무와 젓나무, 소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젓나무와 소나무, 이렇게 같은 종 간에, 또 다른 종 간에도 경쟁하고 있다. 심한 경쟁 속에서 나무 종류별로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젓나무는 표준어 표기법으로는 ‘전나무’라고 부르는 것이 맞지만, 이름의 유래가 하얀 젖 같은 송진이 나오는 것에서 ‘젖나무’로 불리다가 ‘젓나무’로 바뀌게 된 것을 고려하면, ‘젓나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당하다고 생각하기에 필자는 늘 그렇게 부른다. 이름은 그렇다 치고, 젓나무와 소나무의 ‘개성’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본다. 두 나무 모두 사철 푸른 잎을 보여주는 상록수이며 잎이 바늘처럼 뾰족한 침엽수이다. 두 나무가 우리나라의 상록침엽수를 대표하는 나무라고도 할 수 있다. 젓나무는 주로 우리나라 북쪽 지방에서부터 중부 지방까지 비교적 추운 곳에 자라는 나무이다. 소나무는 대체로 우리나라 전역에 자란다. 이렇게 두 나무는 한 집의 아이들처럼 비슷한 점이 많지만, 개성도 강하다. 

뒤편 그늘에서 곧게 자라는 젓나무와 앞쪽에 빛이 드는 밝은 쪽을 쫓아 굽어 자라는 소나무(신구대학교식물원 나무관찰원). 사진 전정일
뒤편 그늘에서 곧게 자라는 젓나무와 앞쪽에 빛이 드는 밝은 쪽을 쫓아 굽어 자라는 소나무(신구대학교식물원 나무관찰원). 사진 전정일

젓나무는 햇빛이 부족한 그늘에서도 잘 견디며 자라는 특성이 있는 ‘음수(陰樹)’인 반면에 소나무는 그늘을 견디지 못하는 ‘양수(陽樹)’이다. 이러한 생리적 특성 차이로 젓나무는 그늘 속에서도 곧게 자라서 꼿꼿하고 굳건한 기상을 상징처럼 보여준다.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입구의 젓나무 숲이나 흔히 ‘광릉수목원’이라고도 불리는 국립수목원의 젓나무 숲을 방문해보면 그 기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특히, 한겨울 수북이 눈이 쌓인 젓나무의 모습은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을 것 같은 기상을 보여준다.

반면에 소나무는 그늘에서 잘 자라지 못하다 보니, 다른 나무들과 경쟁에 놓이게 되면, 그늘이 드리워진 가지는 점차 죽고 새 가지는 빛이 있는 방향으로 자라게 되어 결국 구불구불하게 굽어 자라는 모습이 되고 만다. 어둠에 굴복하고 빛이라는 권력에 복종하는 나약한 모습으로 보인다. 물론 백두대간 일대에 자라는 ‘금강송’이라 불리는 소나무는 곧게 자라는 특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소나무는 이렇게 빛을 쫓아 굽어 자란다.

우리 사람 사는 세상에도 젓나무처럼 가난 속에서도, 그늘 속에서도 굳건한 기상으로 존경받는 분들이 많다. 또, 소나무처럼 돈이나 권력과 같은 빛을 쫓아 그때그때 몸을 구부리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옳은 것일까. 젓나무와 소나무에게 물어보고 싶다. 너희들은 왜 그렇게 살고 있냐고. 두 나무가 어떻게 대답하든, 그리고 어떻게 자라든 나는 두 나무 모두 사랑한다. <다음 글은 10월 19일에>[데일리임팩트 관리자 ]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