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훈 논설위원, KBSI 분석과학마이스터

이석훈 논설위원
이석훈 논설위원

매년 10월은 노벨상 수상 발표 시즌이고, 올해도 어김없이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들이 차례로 발표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신속한 백신 개발의 기반이 되어 코로나19 극복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mRNA(메신저 리보핵산) 연구 공로로 헝가리 출신 미국인 여성 과학자 카탈린 카리코(Katalin Kariko) 독일 바이오엔테크 수석 부사장과 드루 와이스먼(Drew Weissman)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가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원자 내부의 전자 움직임까지 잡아내는 아토초(100경분의 1초)의 빛 펄스를 생성시키는 실험방법을 고안하여 미시연구의 신기원을 연 공로로 미국, 독일, 스웨덴 국적의 3인 과학자가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아토초의 섬광 생성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 등을 규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학진단·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 응용되어 산업에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노벨화학상은 입자의 크기가 광학적·전기적 특성을 결정하는 양자점(퀀텀닷, Quantum Dot)을 발견하고 균일한 합성법을 개발한 미국의 3인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나노미터 크기의 초미세 반도체 결정인 양자점은 크기에 따라서 서로 다른 색을 흡수하거나 방출할 수도 있고, 빛이나 전류를 받아도 크기에 따라 다양한 색을 낼 수 있다. 양자점의 크기와 모양을 조절하면 원색에 가까운 색을 구현할 수 있고, 대량 생산법을 통해 산업에 적용될 수 있다. QLED TV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노벨상은 1901년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제정된 상으로, 과학 분야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인류에 가장 크게 기여한 연구에 시상한다. 올해도 노벨과학상은 기초과학 분야에서 오랜 기간 연구를 통해 창출되어 인류 삶의 질 향상에 그 파급효과가 매우 큰 업적을 낸 과학자에게 주어졌다. 수상자들이 거의 미국인 독무대이긴 하지만, 60대 후반 및 70대 과학자들이 여전히 현직에 근무하고 있는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국가연구소 연구원은 61세에, 대학교 교수는 65세에 현직을 떠나야 한다. 더 이상 연구에 집중할 수 없다는 말이다. 노벨과학상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국내 저명 교수들은 65세가 되면 70세까지 계속 연구할 수 있다는 열정 하나로 연고도 없는 지방의 신규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러나 이것도 극히 일부 과학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자리이고 보면 대다수 과학자는 퇴직으로 더 이상 연구를 지속할 수 없어 수십 년 동안 축적된 국가 지적 자산은 폐기되고 만다. 더구나 신정부 들어 정부 연구개발 예산이 감축되어 미래 국가연구개발의 주역인 학생연구원과 박사후연구원들이 연구개발 경험을 축적할 기회를 잃게 되어 과학인재 양성의 한 축이 무너져 노벨과학상은 고사하고, 국가의 미래가 심히 우려되는 지경이다.

30년 가까운 침체, 좁혀진 국력과 소득 격차, 한류의 부상, 역사문제 등으로 한국에서 일본은 ‘별 볼 일 없는 나라’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일본을 결코 과소평가는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전히 경제 규모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자 아시아 유일의 G7 참여국이라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그동안 축적해 온 과학기술과 인프라가 막강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장 껄끄러운 이웃임에도 한국이 향후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0 : 25 (일본), 한·일전 배구 경기의 점수 차이가 아니다. 노벨상이 제정된 1901년 이후 한·일 간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격차다. 1900년대에는 쇄국정책, 일제 강점, 전쟁, 경제개발 추진 등으로 기초과학 연구에 집중할 수 없는 시기여서 그렇다 치더라도, 21세기 노벨과학상 수상 기록(20명)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일본은 1990년대 초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하고 5년마다 과학기술 기본계획을 수립해 기초과학 육성에 집중하며, 2001년 ‘과학기술 기본계획’에서 “50년간 30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이라는 목표를 세운 이후 20여 년 만에 20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2000~2002년, 2014~2016년, 2018~2020년 3년 연속 수상자를 세 번이나 배출하는 등 노벨과학상 수상자는 세계 5위, 21세기 이후로는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 많은 수상자를 냈다.

이러한 일본의 저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일본은 1917년 기초과학 연구소인 이화학연구소(RIKEN)를 설립해 기초연구 기반을 구축하고, 이후 GDP 대비 연구개발비, 기초과학 투자비 등에서 꾸준히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일본이 2000년대 이후 노벨상을 휩쓸고 있는 것은 이렇게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된 기다림과 투자 덕분이다. 이러한 정책은 일본뿐만 아니라 노벨과학상 수상 주요국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어 온 정책이다. 기초과학연구 기반을 구축하고 장기적 투자를 지속하며 100년 이상을 기다려 온 결과이다.

올해 들어 유난히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의 한국 방문이 잦다. 9월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 2023’에 참석한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은 때마침 불어닥친 정부 연구개발 예산 삭감에 대해 한결같이 우려를 표명하며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국가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과 교육 투자’로,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설 수 있었던 요인이 인재양성과 과학기술 투자임에,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도 정부의 과학기술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기초과학에 투자하면 100배 넘는 이득을 볼 수 있지만 문제는 긴 시간이 필요하기에 기업보다는 정부 투자가 중요하다고 기초과학 분야의 정부 투자를 강조했다.

미국은 1908년도에 이미 경제강국이었지만 실질적인 과학강국은 1940~1950년대였으며, 일본 역시 1960년대 경제강국이었지만 30~40년이 지난 뒤 과학강국에 올라섰다. 이처럼 과학 발전은 굉장히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만큼 투자에 따른 시차가 존재함을 이해하고, 이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한국이 과학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인재양성과 과학기술에 투자를 지속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지금부터라도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야 20~30년 후 매년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배출되는 과학강국 대한민국의 비전을 꿈이 아닌 현실에서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