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올 추석도 조촐하게 지나갔다. 부모님 생전에는 친족왕래가 제법 빈번했는데, 베이비 붐 세대가 조부모 대열에 합류하고 나서 친족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 살아 계시면 94세였을 나의 어머니는 평생 당신 사촌 여동생을 친자매 이상 의지하며 지내셨다.

중학교 2학년 때던가, 체육 시간에 동대문 실내 빙상장에서 스케이트 수업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사립초등학교 피겨 스케이트 선수로 일본 원정경기도 다녀오곤 했던 사촌 여동생이 폼나는(?) 선수용 스케이트를 내게 물려주는 바람에 친구들 부러움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 시절엔 비슷한 또래 사촌이 여럿 있어 집안 행사 때면 함께 모여 낄낄대며 어울렸고, 형편이 여유롭던 이모 고모 삼촌 댁에서 사촌들이 입던 오버코트나 값나가는 옷가지에, 교복과 교과서도 물려받곤 했는데...

얼마 전 믿거나 말거나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의 결혼 상대 부모와 상견례 자리에 나갔는데, 이게 웬일! 신랑 어머니와 신부 아버지(아니, 신랑 아버지와 신부 어머니던가?)가 육촌 사이더란 것이다. 하기야 사촌 간에도 뜨악하게 지내니, 육촌은 말해 무엇하리요.

추석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길고 긴 연휴를 어찌 보낼지 물었다. 생선전, 호박전, 동그랑땡 등은 차례상에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성균관 유권해석(?)도 나온 데다, 며느리 명절 증후군도 눈에 띄게 약화된 요즘, 20대 초반 딸 입에서 흥미로운 선언이 나왔다. “아빠는 사촌들과 가깝게 지내라지만, 나에게 가족은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뿐이야. 사촌은 가족이 아니야. 사촌보단 SNS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훨씬 가깝게 느껴져. 그러니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 

1960년대 초 가족계획사업 당시 서구의 부부 중심 가족이 이상적 모델로 제시되어 핵가족화의 촉매제가 됐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한국은 서구와 달리 외형은 '엄마+아빠+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이지만, 내용은 부계 혈연중심 직계가족의 관행과 규범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오죽하면 여성들에게 배우자 선택 기준을 묻는 설문조사(1975년) 결과, 1순위 '경제력' 다음  2순위가 '차남'이란 응답이 나왔을까. 맏며느리를 한사코 피하던 당시 정서가 지금 생각해도 짠하다.

세월은 흘러 사촌의 존재마저 희미해진 요즈음, 친족이 물러난 자리를 누가 대신하고 있는지 돌아보다가 의미심장한 주장과 만났다. '가족은 형태를 불문하고 역사 속에서 외부 도움 없이 자율적으로 홀로 섰던 적도 없고, 외부로부터 격리된 채 완벽한 프라이버시를 확보한 적 또한 없다'는 통찰이다. 지금 같은 핵가족의 고립이 실상은 강력한 국가의 창작물이라는 것이 미국을 대표하는 가족역사학자 스테파니 쿤츠(Stephany Coontz, 1944~)의 주장이다. 역사적 사료를 추적하노라면 국가는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친족 네트워크, 마을 및 이웃 공동체, 지역 유지들의 힘을 약화 내지 무력화시키고자 핵가족과 연대(aligned)해왔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어는 가구(household)를 의미하는 오이코스(oikos)와 정치 혹은 정부를 의미하는 폴리스(polis), 그리고 친족(clan)을 의미하는 게노스(genos)를 구분하고 있는데, 폴리스의 등장은 게노스의 영향력을 제한하고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맥을 같이 한다.

결국 서구에서 등장한 가족 자율성 및 프라이버시 개념은 국가 주도의 공공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친족의 영향력을 줄이고자 했던 국가의 이해관계와, 촘촘한 친족관계의 책임과 의무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했던 부부 중심 핵가족의 소망이 맞아떨어지면서 진행된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것이다.

사촌이 멀어지고 있는 우리 현실도 서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가족이 친족집단 및 마을 공동체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될수록 국가를 향한 가족의 의존이 더 강화된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그렇다고 친족왕래가 빈번했던 예전 삶을 낭만화하면서 친족관계를 부활하자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복지의 천국이라 알려진 네덜란드에서도 국가가 주도하는 가족 복지 서비스가 지나치게 표준화, 획일화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고, 과거 친족 및 이웃을 통해 자연스레 해결됐던 많은 서비스들이 이제는 시장에서 상품 형태로 거래되고 있는 현실도 문제라면 문제아닐까.

어차피 홀로 설 수 없는 것이 가족의 운명이라면, 국가의 온정주의와 시장의 자비심에 내 가족을 의탁하는 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인지, 고민이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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