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논설위원, 전 한국일보 심의실장

 

정숭호 논설위원
정숭호 논설위원

‘굼’자를 보면, 특히 노인분들, 어떤 느낌이 드세요? 나는 별로 기분이 안 좋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우리말에서 가장 보기 싫고 듣기 싫은 글자가 바로 이 ‘굼’자입니다. ‘굼’자 속에 노년의 특성과 속성, 노인들 특유의 표정과 행위가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어디 한번 볼까요. 국립국어원이 관리하는 ‘표준한국어사전’에는 ‘굼’자로 시작되는 낱말과 속담이 일흔두 개 나옵니다. 대여섯 개 빼고는 모두 느릿느릿, 꾸물꾸물, 우물쭈물, 위태위태, 기신기신, 오늘내일 …., 이런 느낌과 연결됩니다. 자세히 보겠습니다. 

맨앞에 ‘굼뉘’가 있고 바로 뒤따라 ‘굼닐거리다’가 나옵니다. ‘굼뉘’는 ‘바람이 안 불 때 치는 큰 파도’입니다. ‘굼닐거리다’는 ‘몸이 자꾸 굽어졌다 일어섰다’하는 동작을 말합니다. 건강하고 정상적인 움직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약해졌거나 병이 든 모습입니다. 아니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몸을 억지로 놀리는 모습이네요. ‘굼뉘’는 ‘굼닐거리다’에서 나온 말 같습니다. 바람의 도움 없이 크게 일렁여야 하는 파도라면 정말 엄청나게 ‘굽어졌다 일어섰다’ 해야 하지 않겠어요?

‘굼닐거리다’에 바로 뒤에 나오는 ‘굼닐다’ ‘굼닐대다’는 ‘굼닐거리다’와 뜻이 같고, 그다음에는 ‘굼드렁타령’이 나오는데, ‘거지가 구걸하면서 부르는 노래’라고 합니다. 들어본 적 없고 가사도 못 찾았지만, ‘굼’자 때문에 때로는 신명 나는 ‘각설이타령’과는 달리 축축 처지는 노래일 것 같습니다.

‘굼드렁타령’ 바로 다음은 ‘굼뜨다’입니다. ‘굼뜨다’에서 몇 낱말 건너뛰면 ‘굼벵이’가 나오고 그 뒤에 ‘굼실거리다’ ‘굼적굼적’, ‘굼지럭거리다’ 등 뜻이 비슷한 ‘굼’자 낱말이 죽 이어집니다. 맨마지막은 ‘굼틀거리다’입니다. ‘몸의 한 부분을 구부리거나 비틀며 자꾸 움직이다’인데, 이게 ‘꿈틀거리다’로 강하게 발음되면 ‘힘없이 약하게, 안간힘을 쓰는구나’라는 느낌이 물씬해집니다.

어떻습니까? ‘굼’자를 보면 언짢다는 내 말이 과장은 아니지요? 나는 이 불쾌한 ‘굼’자 낱말들 가운데 ‘굼뜨다’가 제일 불쾌합니다. 노인들의 움직임, 표정과 연결해서 사용될 때가 많기 때문이지요.

‘굼뜬 노인’, ‘굼떠 보이는 노인’은 도처에 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 교통카드를 품에서 꺼내 찍고 다시 넣을 때,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에 오르고 내릴 때 노인들은 참으로 굼뜹니다. 전화가 왔다는 소리가 크게 울리는데도 어디 뒀는지 몰라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뒤져서 전화기를 꺼내고, 전화기를 찾았어도 이 단추 저 단추 한참 눌러야만 겨우 통화를 시작하는 노인들….

요즘 들어 굼뜬 노인이 가장 많은 곳은 ‘키오스크-무인주문기’만 있는 식당일 겁니다. 이 장치로 메뉴를 고르기는커녕 어떻게 시작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겨우 시작을 하면 메인 메뉴냐, 사이드 메뉴냐, 세트냐 단품이냐, 세트라면 끼워 먹을 건 뭐로 할거냐, 따라 나오는 마실 거리는 뭐로 할 거냐, 돈 조금 더 내면 그거 말고 다른 거 마실 수도 있는데 그거는 어떠냐, 한 개(1인분)만 시킬 거냐, 여기서 먹을 거냐 가져 가서 먹을 거냐, 결제는 카드로 할래 현금으로 할래, 영수증 받을래 말래. 일일이 확인하면서 눌러야 할 게 정말 많습니다. 자주 해보지 않아 익숙지 않은 사람은 같은 가게에 두 번, 세 번을 가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처럼 굼뜨다 보니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할 때도 자주 있습니다. 손님이 드문드문한 때는 연습이라 치고 느긋이 해보겠지만 많을 때면 뒤에 서 있는 사람들 때문에 스스로 옆으로 물러나는 노인도 있습니다. 할머니까지 옆에 있으면 정말 자존심 상하고 열 받아 “아, 이것들이 돈은 다 받아먹으면서 손님을 이렇게 힘들게 하네. 이런 거 만들어 놓으면 자기들이야 편하겠지만 우리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욕이 튀어나오게 됩니다.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 점에나 있던 이놈의 키오스크는 이제 제법 비싸고 분위기도 좀 나는 식당-테이블에 앉아서 서비스를 받는-에도 많이 깔렸습니다. 테이블마다 설치된 태블릿으로 메뉴를 고르면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와 깔아주는데, 손님이 주문을 못해 쩔쩔매건 말건 아랑곳 안 하는 패스트푸드와 달리 이런 식당에서는 종업원들이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라면서 손님이 원하는 메뉴를 대신 입력해주기는 합니다만 “내가 정말 굼떠졌구나”라는 자괴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굼뜨다’가 사용되는 빈도(입밖으로 나오지는 않고 마음속에서 떠올려지는 것 당연히 포함)는 더 많아지면 많아졌지 결코 줄지는 않을 겁니다. 노인은 늘어나고 더 오래 살 것인 데다가 병원, 터미널, 마트, 은행 같은 곳에 이미 진출한 키오스크는 더 다양하고 더 많은 곳에 설치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아, 정말 어떻게 하나. 키오스크 앞에서 이것저것 눌러 보고, 무력하게 옆으로 물러나 분노하고 절망하는 그들을 ‘굼’자 낱말 속, 그 ‘벌레’로 여기지는 않을까. 어느 사회학자는 키오스크 앞 노인들을 이 사회의 디지털 흐름을 방해한다는 의미로 ‘디지털 버그(Digital Bug)’에 비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같다고 썼더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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