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보 논설위원, 한국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 회장

민경보 논설위원
민경보 논설위원

긴 추석 연휴가 지났음에도 필자의 추석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한 해에 청명(淸明)·한식(寒食) 즈음과 추석에 하는 두 번의 정기 행사 성묘를 마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성묘 가는 날짜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정과 겹치고 가기 싫은지. 그러나 아무리 어찌해도 가족권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날은 이유 불문 참석이다. 차량 차출권이며 벌초에 필요한 도구 등 지정과 명령은 큰형님이 내렸다. 세월이 흘러 이제 필자가 명령을 내릴 순번이 돌아왔는데, 조카들도 나이가 들어 한 일가를 일구고 있으니, 부산하고 떠들썩해서 꼭 뒷말이 무성했던 성묘 풍속도는 옛 그림이 되고 말았다. 어쩌다 보니 팔남매 중 막내가 칠십 문턱에 들어서 윗대의 성묘가 내 몫으로 내려왔다.

다행히 큰형님께서 생전에 서울 근교에 유택을 마련한 덕에 아버지 어머니는 분당 너머 공원묘원에 모셨고, 큰형님 내외 둘째 형님 내외까지 같은 공원 안에 계셔서, 추석 전 한나절에 성묘를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런데 경북 봉화 물야면에 계신 할아버지·할머니 산소와 강원도 삼척 가곡면에 증조부 산소는 찾아뵙지 못했다.

큰형님 산소에서 내려다보니 맞은편 산 거의를 묘지가 뒤덮고 있었다. 

  9월 24일 용인공원묘원에서. 사진 민경보.
  9월 24일 용인공원묘원에서. 사진 민경보.

봄에 왔을 때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아내가 한마디 한다. “다른 건 다 바뀌면서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왜 안 바뀌는지 몰라. 엄마는 정말 잘하셨어.” 장모는 생전에 본인 장례에 대해 유언을 하셨는데 화장(火葬)해서 산골(散骨)해 달라고 하셨다. 화장해서 뼛가루를 어디에 남기지 말고 없애 달라는 말씀이셨다. 그냥 지나가는 얘기가 아니라 장인 제삿날이나 명절 때면 매번 얘기하셨다. 장모님은 만 90세에 그것도 당신 생일 하루만 아프시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그런데 막상 장례가 닥치자 산골은 안 된다고 딸 넷이 눈물 바람을 했다. 고인의 유언을 들어드리는 것이 마지막 효도하는 길이라고 설득하고, 외아들인 처남도 무언의 동의를 해서 화장 후 산골로 무사히 장례를 마쳤다. 성남화장장은 산골하는 장소가 한적한 곳에 있는데, 어느 정도 높은 곳에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 경건한 분위기로 기억된다. 스테인리스(Stainless-stell) 재질 통에 같은 재질의 덮개가 있었는데, 산골 때에는 담당자가 서류를 확인하고, 자물쇠가 장치된 작은 문을 열고, 그의 입회하에 산골을 했다.

필자가 직업의식(?)이 발동해, 최종처리는 어떻게 하는지 물어봤더니 일정량이 차면 화장품회사에 연락하고, 폐기물로 반출된다고 한다. “그러면 어떤 화장품 만드는 원료로 사용되느냐?”고 물었더니 이상한 사람 다 본다는 눈으로 “그런 건 모른다.”고 했다. 처가는 성묘를 가지 않고, 명절이나 제삿날에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다.

이번 추석, 집에 온 아들 며느리에게 나와 아내 장례를 외할머니처럼 해달라며 유언이라고 얘기했다. “에이 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한다. 하지만 아내가 정색하고 다시 얘기했다. 그래도 “나중에 얘기하시지요.” 그런다. 물론 부모의 죽음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추석에 얘기하는 일이 마뜩지 않겠지만 정신 멀쩡할 때 장례 얘기를 아들과 웃으면서 할 수 있으니 괜찮은 추석날이었다

추석 성묘 음식은 酒·果·脯[술, 과일, 북어포]에 송편을 준비하는데 작년부터는 이마저도 생략하고 있다. 차린 음식을 다 먹을 수 없으니 남기게 되고 남긴 음식은 누구를 줄 수도 없고 그러니 버리게 된다. 산소까지 가서 음식물 쓰레기를 생산하지 말자는 뜻에서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산소 화병에 꽂아놓는 조화(弔花)도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생화는 비싸기도 하지만 시들면 그 모양새도 그렇고 해서 조화(造花)를 사 갔는데, ‘산소에 피는 환경공해 플라스틱 꽃’이라는 언론 보도를 접한 후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번 성묘에도 묘원에는 플라스틱 꽃이 가득 피었다.플라스틱과 합성섬유·철사로 조합된 조화는 한여름 뙤약볕, 비나 태풍 등을 만나고 나면 처치가 곤란한 폐기물이 되고 만다.

9월 24일 용인공원묘원 둘째 형님 산소 부근. 플라스틱 꽃이 만발해 있다. 사진 민경보.
9월 24일 용인공원묘원 둘째 형님 산소 부근. 플라스틱 꽃이 만발해 있다. 사진 민경보.

‘플라스틱 조화 금지 운동’은 지방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다. 부산 경남을 중심으로 부산시설공단과 공원묘원 등은 조화의 반입 통제와 계도, 판매 금지 등을 지난 7월부터 시민에게 홍보했고, 이번 추석에는 공원묘원 조화 반입과 판매를 금지했다고 한다. 경남에서는 매년 177톤가량의 조화폐기물이 발생하고 있는데, 거의 중국 수입품(연간 약 2000톤)이라는 설명이다. 전남 순천시도 작년 설 명절부터 관내에 있는 시립추모공원, 시립묘지 내 조화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공원묘지 인근 조화판매장에는 조화보다는 생화 판매를 권장하고 석재상(石材商)에는 묘지 설치 때 화병이 있는 좌대를 설치하지 않도록 협조를 구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국립묘지에 중국산 플라스틱 꽃이 세금으로 피는 것은 볼썽사납다.

이제 코로나 핑곗거리도 없어졌으니, 찬바람 불기 전에 삼척 가곡면을 시작으로 안동 둘째 누님 뵙고, 봉화 물야까지 다녀오는 가을 여행계획을 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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