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논설위원, 전 KBS해설위원실장

이동식 논설위원
이동식 논설위원

조선조 중기 15대 광해군 3년 1611년 신해년에 스물네 살의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생모인 순흥 안씨의 3년상(喪)을 막 치르면서 추석을 맞았다. 얼마 전까지 무덥던 날씨가 어느새 가을로 바뀌자 맑은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가운데 하늘에는 두둥실 둥근 달이 떠올랐다. 시심이 동한 윤선도는 서늘한 바람을 배 위에서 맞으며 달밤의 흥취를 그린 소동파의 ‘적벽부’가 생각이 나서 ‘맑은 바람 밝은 달은 돈 한 푼 안 들여도 나의 것[淸風明月不用一錢買]’이라는 제목으로 먼저 저 바람과 달이 어떤 마음으로 우리에게 오는지를 물어본다;

​맑은 바람 밝은 달은 유독 무슨 일로 / 淸風明月獨何事

백수와 상관없이 내 앞에 오셨는가 / 不煩白水來吾前

흔연히 기쁘면서도 괴이하게 여겨져서 / 欣然自幸還自怪

물리를 사색하며 선천을 궁구하였다오 / 坐思物理窮先天

​시구절에 백수(白水)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백수진인(白水眞人)의 준말로 돈이라는 뜻이다. 중국 전한(前漢) 말기에 왕망(王莽)이 제위(帝位)를 찬탈하고 신(新)으로 나라 이름을 바꾸었는데, 그 당시 쓰던 돈 전문(錢文)에 금(金)과 도(刀)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는 것이, 자기가 거꾸러트린 한(漢)나라의 황제 집안인 유(劉)씨를 뜻하는 것이 되어 기분이 나쁘다고 재화의 샘물이라는 뜻의 ‘화천(貨泉)’이라는 글자를 돈에 새기게 했다. 이 화(貨)라는 글자를 파자(破字), 곧 글자를 나누어 보면 인(人)과 진(眞)이 되니 진인(眞人)이 되는 것이고, 천(泉)도 파자하면 백(白)과 수(水)가 되니 돈이라는 뜻으로 새로 새긴 화천이라는 글자는 백수진인(白水眞人)이 되는 것이다. 윤선도도 그 백수라는 말을 써서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어떤 연유로 내 앞으로 왔다는 말인가”라고 묻는다.

이렇게 전제를 하지만 윤선도 자신도 크면서 임진왜란을 겪었고 서울에서 생활을 하면서도 일반 백성들의 어려움을 늘 느꼈기에 돈이 귀하고 어려운 것인 줄 알고 그 사연을 시에 담는다. 처음 세상이 열릴 때에는 백성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로 도우며 잘 살았는데 돈이란 요물이 생긴 이후에는 그것 때문에 세상이 험악해지고 혼란해졌다고 한탄을 한다;

​혼돈이 조판(肇判, 처음 쪼개어 갈라짐)된 지 오래지 않은 옛날 / 昔者混沌判未久

하늘의 법도 따르는 백성들 모두가 어질어서 / 順天之則民皆賢

군자는 밭이 없어도 사람들에게 얻어먹고 / 君子無田食於人

시골 사람도 마른밥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았는데 / 鄕人亦戒乾糇愆

공형이 귀신을 부리기 시작한 때로부터는 / 自從孔兄使鬼神

사람의 힘이 불어나고 하늘은 권세를 잃어 / 人力漸勝天失權

천지 간에 온갖 것이 요란하게 널려 있어도 / 擾擾萬象覆載內

돈 없는 손안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오 / 一毫不入無錢拳

시에 나오는 공형이라는 말도 돈의 다른 표현이다. 엽전이라고 흔히 부르는 옛날 돈은 생김새가 겉은 둥글고 속 구멍은 모나게 뚫려 있어 이를 공방(孔方)이라고도 불렀고 윤선도는 이를 공형(孔兄)이라고 표현했다. 고려 의종 때의 문인 임춘은 “공방은 권세 있고 귀한 사람을 몹시 재치 있게 잘 섬겼다. 그들의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자기도 권세를 부리고 한편으로는 그들을 등에 업고 벼슬을 팔아, 승진시키고 갈아치우는 것마저도 모두 그의 손에 매이게 됐다. 이렇게 되니, 한다 하는 고관대작들까지도 모두들 절개를 굽혀 섬기게 됐다.”고 돈의 힘을 ‘공방전(孔方傳)’이란 글에서 묘사한 바 있다.

일찍 어렵게 살아온 경험이 있는 윤선도도 가을 하늘 밝은 달을 보며 오직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이 세상을 한탄한다. 다만 그런 가운데 저 하늘의 두 물건, 곧 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권세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평등하고 풍성한 선물이 되어주니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라고 반긴다.

​그렇더라도 현대의 우리들의 삶은 돈을 떠날 수 없다. 사회가 풍족해지면서 돈이 있는 사람들은 쇼핑센터나 대형 매장 등에서 추석 선물을 사가며 명절 기분을 낸다. 그러나 그런 매장에 근무하는 분들, 공익을 위해 밤을 새우며 근무를 해야 하는 분들은 추석 연휴에 집에서 명절 기분을 내거나 쉬지도 못하고, 고향에 내려가 볼 생각은 하지 못한다. 더구나 올해는 추석 연휴 다음 날 평일인 10월 2일까지 휴일이 되어버려, 쉴 수 있는 사람들은 좋아하겠지만, 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이 더 가중된다. 대형 매장들은 늘어난 휴일에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계속 영업을 할 것이고, 그러면 이들 근로자는 더욱 쉴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추석 연휴 앞에 이런 근로자들이 단체 행동으로 휴일을 요구했다. 우리도 가족이 있고 고향이 있는데 며칠씩 휴가를 받을 수는 없지만 단 하루라도 쉴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였다.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추석 연휴가 연장되면 좋아할 사람들이 많지만 반대로 늘어난 휴일로 고통받는 분들도 또 많아진다. 추석이 온 가족이 모여서 정을 나누는 자리라면 이런 분들도 이 기쁨을 가질 권리가 있고 사회든 정부든 이들에 대한 배려도 해주어야 한다. 이 문제도 10월 2일을 휴일로 만드는 순간에 함께 고려되어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정책이 발표되었어야 하지만 정부에서는 그저 휴일을 늘렸다는 소리만 한다.

​이번에 중간의 휴일이 하루 더 연장되어 최장 6일 연장 휴일이 가능해진 만큼 추석에 쉬지 못할 분들을 위해 이들도 명절을 조금이라도 함께할 수 있도록 미리 정부나 업계가 배려를 했어야 한다. 너무 늦게 대책이 나오면 이미 고향이고 가족 만남이고 미리 준비할 수가 없으니 이들에게는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또 연휴가 연장되니 너도나도 해외로만 나가서 국내의 소비수요 증진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책적인 배려라는 것을 가급적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가는 방향으로 미리 준비를 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시원한 가을 밤 둥근 달을 완상하는 사람들. 사진 안기성.
  시원한 가을 밤 둥근 달을 완상하는 사람들. 사진 안기성.

어쨌든 이틀 후부터 한가위 명절 연휴이다.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이 시원한 바람과 보름달은 돈만 아는 우리들의 가난한 마음을 질책한다. 보름달의 밝은 빛처럼 이웃에도 많이 나누라고 한다. 마음을 맑고 밝게 해서 다시 예전의 정이 넘치는 사회로 돌아가자고 한다. 억지로 휴식기간을 찔끔 받은 분들도 풍족하지 않더라도 시원한 가을바람에 밝은 달을 보며 시름을 잊고 포근한 인심 속에 모처럼 삶의 희망을 다시 다지기를 소망해 본다. 그것이 400여 년 전 윤선도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보름달의 덕이자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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