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현 논설위원, (주)터치포굿 대표

박미현 논설위원
박미현 논설위원

선거는 대중이 투표를 통해 공직자나 대표자를 선출하는 의사 결정 절차로,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실시되던 공공행사이다. 민주주의의 대표적 특징이기도 하고 누가 더 우리 지역과 나라발전에 기여할 일꾼인지 고민하는 절차는 국민의 권리이기도 의무이기도 하다.

선거가 끝나면 나는 굉장히 바빠진다. 선거에 사용된 현수막, 공보물 등의 더미를 비추며 이 쓰레기들을 어찌할 것이냐 하는 인터뷰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주 직업은 재활용이 어려운 버려진 자원을 디자인과 기술을 통해 유용한 생활물품으로 만드는 업사이클러다. 현수막은 그 대표적 소재이다.

쓰레기도 보통 쓰레기가 아니다. 거의 전면에 컬러 잉크를 사용한 합성섬유여서 재활용이 어렵다. 스티커인 선거 공보물 표지를 다시 테이프로 붙이고 철핀까지 박은 상태여서 다루다 보면 찔리고 긁히기 일쑤이다. 요즘은 상황이 더 나쁘다. 투표율을 높인다고 선거법을 개정함에 따라 크기 제한이 사라져 건물 전면을 덮은 현수막이 늘어났다. 후보의 공약을 담아야 할 선거 현수막에 정책은 하나도 없고 비방글이 들어 있어 투표율을 높이는 데 어떻게 이바지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최근엔 당선사례 현수막-이것은 공식 선거 현수막이 아님-에다 낙선사례까지 게시하는 이상한 문화가 생겨 버려지는 현수막이 더 늘어났다.

공익을 위해 일하겠다는 공직자 후보 중 환경부가 정한 친환경 종이를 사용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작고 코팅이 되어 있어 재활용이 어려운 명함, 비닐 창이 붙어있는 공보물 봉투, 코팅된 포스터, 현수막 재질로 인쇄되는 어깨띠까지 선거 쓰레기는 종류도 많다. 선거의 유행인 유세차량의 빛 공해와 소음공해 또한 심각하며, 공회전이 금지되어 있는데도 누가 따라다니면서 신고하지 않는 이상 적발도 쉽지 않다.

최근에 내가 집중했던 쓰레기는 선거에 사용되는 의류로, 조끼와 점퍼까지 종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면에 글씨가 크게 새겨져 있어 입을 엄두가 안 나기도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후보자를 상기시키는 물품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버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의류로서의 가치는 충분한 옷을 분해해서 다른 제품으로 업사이클하지 않고 처음부터 계속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마련해 선거 때마다 모든 정당에 보내고 있다. 후보자 이름 부분을 탈·부착으로 제작해 선거가 끝난 후에도 입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비용도 많이 늘지 않는 방식이라 금방 채택될 줄 알았지만, 선거판은 워낙 정신없이 진행되는 터라 결국 늘 그 모양 그 꼴이 되고 만다.

선거 현수막을 업사이클해서 한정판을 만들어 지지자들에게 판매하는 프로젝트를 한동안 해왔더니 선거가 끝나면 으레 “선거 현수막을 보내줄까?” 하는 전화가 빗발친다. 소각되는 현수막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줄여보고자 진행한 프로젝트가 면죄부로 활용되는 것을 보면서 공식적으로 선거 현수막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선거법 개정 및 대안을 제시하는 일을 돕는 중이다.

쓰레기 문제의 가장 큰 맹점은 모든 것이 끝난 후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선거 중에는 바쁘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그 후속처리로 바쁘고, 선거 캠프 자체가 해체되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내 고민은 언제나 공중에서 분해된다.

그래서 이제는 미리부터 외쳐보려고 한다. 본격적인 선거 준비 철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은 선거의 환경영향성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선거가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공법상 공해 영역으로 설명되는 수질, 토양, 대기, 소음, 진동 등 모든 오염을 다 일으키고 있는 이 모순을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선거 다음 날 승리에 취한 후보 옆으로 쓰레기 더미 사진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한국에서 특히 많이 사용되어 ‘한국형 쓰레기’라고도 불리는 선거 현수막 더미에 둘러싸이지 않도록 지금 바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선거 종료 후 비용 정산뿐 아니라 탄소 중립 보고를 의무적으로 하게 만드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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