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언론인
이석구 언론인

“게도 구럭도 다 잃었다.” 무슨 일을 하려다 아무 소득도 없이 도리어 손해만 봄을 이르는 우리 속담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행보가 꼭 그런 것 같다. 이 대표는 24일 만인 23일 단식을 중단했지만, 21일 검찰의 영장 청구에 따른 국회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부결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최소 29명의 민주당의원이 찬성표를 던져 가결됐다. 그의 호소는 그가 자신의 말을 쉽게 뒤집는 정치인이라는 것만 부각시키고, 체포동의안은 가결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

소탐대실이다. 악수도 그런 악수가 없다. 사실 표결 전날만 해도 부결이 점쳐지는 분위기였다. 야당 대표가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는데 대통령실을 비롯 여당은 아무도 그를 찾지 않고, 검찰은 영장 청구로 압박하는 모양새가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다. 여당의 모습이 너무 매정하고 비인간적으로 비친 탓이다. 비명계 의원들도 단식 중인 초췌한 모습의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데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대표는 불체포 특권 포기 약속을 뒤집었다. 체포동의안 표결 직전 부결을 호소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 그러면서 앞으로 당을 친명계 중심으로 운영하지 않고 공천도 공정하게 하겠다고 비명계 의원들을 달랬다. 이 호소가 오히려 분위기를 바꿨다고 한다. 이는 ‘방탄 단식’ ‘말 바꾸기 선수’라는 이미지에 덧칠을 하는 격이 됐다. 이 대표의 진정성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에 대한 비명계의 동정론도 힘을 잃게 됐다고 한다. 비명계는 자신의 지역구에 친명계 인사들이 총선 출마 채비를 하는 이 대표체제에 위기의식도 갖고 있다.

이 대표는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진 정치인이다. 중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흙수저 출신이지만 변호사가 됐다. 무명의 성남시장에서 경기도 지사,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 거대 야당의 대표가 됐다. 인기가 하늘로 치솟던 이낙연 전 국무총리나, 정세균 전 국회의장 등 기라성 같던 중앙정치인을 밀어내고 대선 후보가 됨은 물론 대선 패배 후에도 야당 역사상 최다 득표로 당 대표가 됐다. 그는 용의주도하고 임기응변에 능하다. 검찰은 300여 회에 걸친 압수수색에도 불구하고 그가 직접 금품을 수수한 물증을 찾지 못했다. 그는 이를 근거로 자신에 대한 수사를 정치적 보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보듯 그는 큰 정치인은 아니다. 대국을, 멀리 내다보는 눈을 갖지 못한 것 같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원칙과 신념을 가진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도 없다. 떨어질 줄 알면서도 부산에 계속 출마한 ‘우직한 바보 노무현’도 아니다. 지지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인 노 전 대통령 같은 신념도 아직 보여준 바가 없다. 이들 전 대통령들은 당장 눈앞의 손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멀리 내다보고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추구했다. 무엇보다도 대의명분을 중요시했다. 약속을 밥 먹듯 뒤집지 않았다. 작은 이익에 연연, 임기응변과 술수를 부리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이런 무게감과 듬직함이 없다

이 대표가 21일 국회 표결에서 자신의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져 달라고 민주당 의원들에게 당부했다면 어찌 됐을까? 그의 말대로 민주당이 가결에 동조, 체포안이 통과됐더라도 그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실리를 얻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가 무죄라면 영장실질심사에 나가 당당히 자신을 변호하면 되는 것이다. 의원 불체포 특권 뒤에 숨을 일이 아니다. 또 우리 사법부는 인신구속에 매우 신중하다. 곽상도 전 의원이나 박영수 전 특검의 뇌물수수 혐의도 한 차례 영장이 기각됐었다. 대장동 의혹 주범 김만배도 영장이 한 차례 기각됐었다.

이 대표는 도주 우려가 없다. 300여 회의 압수수색으로 더 이상 인멸할 증거가 없다는 이 대표 측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면 법원이 영장을 기각할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물론 범죄의 중대성도 영장 발부 여부의 주요 기준이므로 속단할 수 없지만 상당수 법조 인사가 기각 가능성에 무게를 뒀었다. 더구나 그는 단식으로 몸도 쇠약해졌다. 판사도 인간이므로 법리를 떠나 영장 발부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함으로써 모든 것을 잃었다. 그는 26일 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이 기각된다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말 뒤집기로 신뢰를 잃고, 체포동의안 가결로 지도력에 금이 가고, 비명계와의 적대감은 더욱 커졌다. 영장이 기각되더라도 체포동의안 통과로 민주당은 내홍에 빠지고 지도력은 손상됐다. 만일 ‘범죄혐의는 소명되나 증거 인멸,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이 기각되면 정치적 보복이라는 주장마저 힘을 얻기 어렵다. 혹시 모를 영장 발부를 염려, 동의안 부결 호소라는 소리(小利)에 집착한 행보가 그의 정치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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