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도시설계)

김기호 논설위원
김기호 논설위원

‘망우역사문화공원’. 이제 개장한 지 1년이 좀 넘은 공원이다. 1933년에 문을 열었으니 역사가 그리 짧지 않은 장소다. 그러나 독자들이 공원 이름에서 이미 짐작하는 대로 이곳은 공원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공동묘지’로 출발한 곳이다. 어쩌다 그동안 기피시설로 취급당하던 ‘북망산천(北邙山川)’이 공원으로, 그것도 역사와 문화를 내건 공원으로 등장하게 되었는지 감춰진 이야기가 있을법하다.

일제 강점기에 문을 연 이 공동묘지는 1970~1980년대 전성기 때는 명절마다 신문에 대서특필되었으며 1974년 한가위에는 하루 15만 명의 성묘객이 찾았다. 그러나 묘지는 초만원이 되어 1973년 매장이 중지되고 그 후 망우묘지공원(1977), 망우리공원(1998)으로 명칭을 바꾸며 1990년대에는 묻힌 위인들을 기리는 움직임을 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망우역사문화공원, 봄 풍경. 유택(幽宅, 사자의 집) 사이의 골목길을 산책하는 사람들. 자료:https://manguripark.or.kr, 망우역사문화공원 홈페이지
망우역사문화공원, 봄 풍경. 유택(幽宅, 사자의 집) 사이의 골목길을 산책하는 사람들. 자료:https://manguripark.or.kr, 망우역사문화공원 홈페이지

그 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도 선정되고(2013) 내부에 ‘망우리 인문학길 사잇길’ 2개 코스가 조성되었다. 소파(小波) 방정환 묘소 등 8군데는 국가등록문화재다. 공동묘지가 서서히 역사와 문화의 장소로 새로이 인식되게 되었다.

건물형 봉안당(좌, 납골시설)과 추모의 숲(우, 산골(散骨)시설), 서울시립승화원 용미리묘지. 공원과 다름없이 자연과 시설이 편안함을 제공하고 있다. 자료: 서울시설공단/장사시설 홈페이지.
건물형 봉안당(좌, 납골시설)과 추모의 숲(우, 산골(散骨)시설), 서울시립승화원 용미리묘지. 공원과 다름없이 자연과 시설이 편안함을 제공하고 있다. 자료: 서울시설공단/장사시설 홈페이지.

공동묘지는 근대화와 함께 새로 생긴 개념이고 시설이다. 전근대 시기에도 문중별 선영(先塋) 외에 마을마다 가까이 ‘북망산’으로 흔히 부르는 집단묘지들이 있었다. 근대적 공동묘지는 주로 도시지역에서 대규모로 사자(死者)를 수용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하고 관리하는 시설이다. 유교적 관습과 문화로 다루어졌던 죽음을 근대 이후엔 위생이나 도시 토지이용 측면에서 다루려 한 것이다.

일제 총독부는 강점(强占) 후 곧 묘지규칙을 발포(1912년, 총독이 인정하지 않는 곳에 공동묘지 형성 불가)하고 바로 다음 해 경성부 관영 공동묘지 19군데(미아리, 신당리, 신사리(新寺里, 현재 은평구) 등)를 선정 발표했다. 도성 밖으로서 대체로 이미 ‘북망산’으로 이용되던 곳들이다. 그 후 홍제동(1929), 망우리(1933) 등 4곳이 추가되었다. 공동묘지들은 점점 늘어나는 인구와 도시화로 인해 폐지되고 주거지가 되었으며, 도시계획은 장기적 도시발전을 고려하여 원거리에 권역별로 5개(신사리, 미아리, 망우리 확장과 구로리, 언주면 추가)의 대형 공동묘지를 계획하였다(1939년 ‘방사형 묘지계획’, 계획대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이 같은 이전 및 폐쇄는 해방 후 197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은 이렇게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그와 함께 공동묘지는 점차 외진 곳, 무서운 곳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현재(2022) 서울시에는 공동묘지가 없다. 비록 망우리에 아직 7000여 기의 묘지가 남아 있지만 그곳은 이제 ‘망우역사문화공원’이라는 독특한 테마를 가진 공원이 되었다(2022 개관, 중랑구 관리). 현충원(구 동작동 국립묘지)이 있지만 이는 매우 특수한 묘지다. 그렇다고 서울시가 시민들을 위한 장례 관련 서비스를 멈춘 것은 아니다. 서울시설관리공단에는 서울시립승화원이 관리하는 벽제승화원(고양시), 용미리(파주시) 묘지와 서울추모공원(서초구)이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서초구 외에는 모두 경기도에 있으며 수용능력이 다해가고 있다.

화장(火葬)이 대세가 되면서 사자를 위한 공간이나 시설도 큰 변화를 맞아 다양한 형태(봉안시설(납골), 산골시설(추모의 숲 등), 자연장시설(잔디장, 수목장 등))가 나타나고 있다. 매장 묘를 대신하는 이런 시설들은 대체로 간소하고 공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시설들은 도시를 벗어나 대다수 경기도권의 산과 임야에 위치하고 있다.

변화하는 주거문화에 따라 재건축되고 있는 시가지. 건물이나 녹지 등 어느 부분엔가 잃어버린 경건한 공간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김기호, 2022
변화하는 주거문화에 따라 재건축되고 있는 시가지. 건물이나 녹지 등 어느 부분엔가 잃어버린 경건한 공간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김기호, 2022

묘지란 무엇인가? 다양한 의미가 있겠으나 그곳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장소다. 자주 찾아뵙기도 하고 때맞추어 성묘하기도 한다. 이제 현대 장례문화의 큰 변화 속에서 사자의 집(幽宅)을 예전 북망산처럼 동네 가까이에 모시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사자(死者)를 꼭 집에서 멀리 떠나 외진 곳에 모셔야 하는 이유는 없어 보인다. 자주 가 보기도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들며 위생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큰 문제가 없지 않은가? 이제 거리낌 없는 장소가 된 망우역사문화공원(구 망우리공동묘지)과 주변 주거지의 관계는 이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시가지 내 종교시설의 한 부분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신축 아파트단지의 한 부분에 경건한 사당(祠堂) 같은 곳을 설치하고 사자를 모실 수도 있을 것이다. 제법 큰 공원이 만들어진다면 그곳도 충분히 이런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기능과 경제성만 강조하여 삭막해진 현대의 도시공간에 경건하기도 하고 상징적 의미가 있는 시설과 공간이 들어온다면 사람들이 일상 속에 가끔 옷깃을 여미게 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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