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우현 논설위원, 한불협회 회장, 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전 숙명여대 객원교수

손우현 논설위원
손우현 논설위원

올여름 아프리카에서는 한 달 간격으로 니제르(Niger)와 가봉(Gabon)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 지난 7월 26일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가인 니제르에서 대통령 경호실장이 주도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2021년 니제르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절차를 거쳐 당선된 친서방 성향의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이 실각했다. 이번 쿠데타는 1960년 니제르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다섯 번째다.

니제르는 남으로는 나이지리아, 동·서로는 차드와 말리 및 부르키나파소, 북으로는 알제리·리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이며 세계 7위의 우라늄 생산국이다.

이번 쿠데타에서 최대의 이해 당사자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과거 식민지였던 니제르에 반(反) 지하드 작전을 위해 약 1500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니제르를 대(對) 사헬전략 재편(reset)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사헬(Sahel) 지대는 세계 최대의 사막인 사하라사막과 세계 최대의 사바나기후 지역인 아프리카 중부 사이에 동서 방향의 띠 모양으로 분포된 지역을 가리킨다. 한편 미국도 니제르를 북·서 아프리카 대테러 전선의 핵심 파트너로 간주해 1100명의 병력을 주둔시켜왔다. 미국이 갑작스러운 쿠데타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다. 프랑스에 이어 둘째로 많은 외국인 투자를 니제르에 쏟아붓고 있는 중국도 이해 당사자다.

사헬 지역에서 확산 중인 반(反)프랑스 정서는 니제르 쿠데타에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수도 니아메에서 벌어진 친쿠데타 시위대는 “프랑스 타도(À bas la France!)”를 외쳤다.

'프랑스 타도(À bas la France!)'를 외치는 니제르 쿠데타 지지자들.
'프랑스 타도(À bas la France!)'를 외치는 니제르 쿠데타 지지자들.

니제르 군사 정권은 프랑스와 체결한 일련의 군사 협정을 종료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프랑스군 철군을 요구하고 있다. 또 자국 주재 프랑스 대사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프랑스는 니제르 군사 정권이 합법성이 없다며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5일 실뱅 이태 프랑스 대사가 니제르 군부에 의해 ‘인질’로 잡혀 있는 상태로 식재료 보급이 차단돼 군용 배급 식량으로 식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르몽드 보도에 의하면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과 바줌 대통령은 매일 통화하고 있으며 프랑스 주둔 병력의 이동은 바줌 대통령의 요구가 있을 때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프랑스 공영 방송 ‘프랑스 24’는 니제르, 말리, 부르키나파소의 군사 정권들이 지난 16일 상호 방위 협정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니제르 군사 정권 대변인은 프랑스가 ‘서아프리카 국가 경제공동체’(CEDEAO, 영어 표기 ECOWAS) 회원국들과 공동으로 니제르 침공을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니제르 쿠데타 이후 한 달여 만에 아프리카 중서부의 가봉에서도 지난달 30일 쿠데타가 발생했다. 가봉도 니제르와 마찬가지로 과거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은 나라이다. 지난 8월 26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알리 봉고 온딤바(64) 대통령의 3연임이 확정되자 군부가 “선거 결과는 무효”라며 들고 일어난 것이다. 봉고 대통령은 1967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만 42년간 집권한 오마르 봉고 온딤바 대통령의 아들로, 올해로 14년째 재임 중인 상태다. 부자가 도합 56년간 한 나라를 통치해 온 것이다.

쌍용그룹이 1976년 현지 국영기업들과 합작하여 15층짜리 4500평 규모로 첨단 백화점(유신백화점)을 세워 주었던 가봉은 한국과도 교류가 많았던 나라이다. 이번 쿠데타로 봉고 대통령 부인의 비서관으로 근무해온 한국인 1명이 군부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서방 친러 친중을 표방하는 군부가 집권하면서 그동안 봉고 부자와 관계가 좋았던 한국과의 관계는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번 쿠데타를 규탄하고 취소된 선거 결과를 존중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은 ‘쿠데타‘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고 이번 사태의 책임자들이 민간 통치를 유지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관계 당사자들이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입장 차이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면서 봉고 대통령의 신변 안전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1950년 이후 전 세계에서는 242건의 성공적인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그중 106건이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다. 최근 서아프리카와 사하라사막 남부(사헬) 지역은 말리와 기니, 부르키나파소, 차드, 니제르 등에서 연쇄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쿠데타 벨트’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BBC방송은 1990년 이후 사헬 지역에서 발생한 27건의 쿠데타 중 78%는 불어권 국가에서 일어났다고 지적하며 이는 ‘프랑스 식민주의의 유산(legacy of French colonialism)’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레너드 엠불레-엔지에게(Leonard Mbulle-Nziege) 케이프타운 대학의 아프리카 전문가를 인용 보도했다.

프랑스의 아프리카 전략이 실패한 원인으로는 민주주의 열망을 과소평가한 점이 꼽힌다. 프랑스는 정권 투명성보다 안정성을 선호했는데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차드 등 구(舊)식민지 국가들의 독립 이후에도 내정에 간섭하여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프랑사프리크(françafrique)’ 정책을 펼쳐온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카트린 콜로나(Catherine Colonna) 프랑스 외교장관은 르몽드와의 회견에서 “‘프랑사프리크’는 사망한 지 오래다.(La ‘Françafrique’ est morte depuis longtemps.)”라고 주장하며 프랑스는 바줌 대통령의 정부만 인정하며 (니제르의) 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역내 국가들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니제르 군부와 프랑스의 힘겨루기가 어떻게 결말이 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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