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데일리임팩트 주필

전국의 대학로는 거의 30군데나 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대학로는 서울의 혜화동로터리~종로5가역에 이르는 1.6km 구간이다. 1965년부터 대학로로 불려온 이곳에는 서울대 연건캠퍼스를 비롯한 많은 대학이 주변에 있다.

하지만 서울대라면 1975년에 관악산 밑으로 떠나간 문리대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센강’이라고 불렀던 개천과 ‘미라보다리’가 생각난다. 마로니에공원이 된 이곳에 오면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 버렸네”라는 박건의 노래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1971년)을 흥얼거리게 되고, 김광규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된다.

옛 서울대 문리대 입구(왼쪽)와 문리대 터에 조성된 지금의 마로니에공원.
옛 서울대 문리대 입구(왼쪽)와 문리대 터에 조성된 지금의 마로니에공원.
1956년부터 60년 넘게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학림다방. 사진 임철순
1956년부터 60년 넘게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학림다방. 사진 임철순

 

‘문리대 제3 강의실’이었다는 길 건너편의 서울미래유산 학림다방의 창에는 ‘Since 1956’과 함께 “우리에겐 아직 지키고 반추해야 할 어떤 것이 있노라고...”라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그렇게 지키고 반추해야 할 것들을 만들어온 곳이 지금은 새로운 낭만과 유흥, 연극과 축제의 거리가 되었다. 옛것과 이별하는 아쉬움과 상실의 향수가 담긴 낭만이다. 학전소극장 부조에 새겨진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가 그 정서를 대변한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1985년부터 대학로는 주말에 차가 다니지 못하는 곳이었다. 차 없는 거리에서 갖가지 문화 공연을 벌여 젊음과 낭만의 장소로 만들고 상권을 살리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무분별한 음주와 각종 사고로 4년 만에 이 조치는 폐지되고, ‘차 없는 거리’ 행사는 그 뒤 간헐적으로 시도됐다. 올해에도 6월 17일(토), 7월 16일(일), 8월 19일(토) 이렇게 한 달에 한 번꼴로 대학로는 ‘차 없는 거리’가 됐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은 도시에 일정한 규율과 질서를 세우는 일이다. 차가 다닐 곳과 사람이 다닐 곳을 분별하는 질서를 의도적으로 깨거나 흩뜨리면 그 공간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9월 23일 '차 없는 거리' 초청 포스터.​
​9월 23일 '차 없는 거리' 초청 포스터.​

대학로는 9월 23일 토요일에 다시 차 없는 거리가 된다. 서울 종로구가 상명대 총학생회와 함께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또 놀러 와! 대학로, 차 없는 거리로”라며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오전 10시~오후 9시에 혜화역 1번 출구 앞~서울대병원 입구 앞 대로 350m 구간의 차량 진입을 막고, 정오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각종 공연과 예술 체험 프로그램을 펼친다. 130여 개 중소 공연장이 밀집한 문화 관광지가 차 없는 거리가 되면 보행관광이 더 자유로워지고 거리문화 콘텐츠가 늘어나며 공연 생태계가 활성화한다. 행사 참여자들에게는 30개 업소에서 1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바우처도 제공한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날이 추분이라는 점이다. 추분은 춘분과 함께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이다. 입춘부터 동지까지는 여덟 가지 바람이 분다고 한다. 이 팔풍(八風) 중 추분에 부는 바람이 창합풍, 서풍, 우리말로는 하늬바람, 곧은바람, 섯갈바람, 화을바람이다. 추분이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져 가을을 실감하게 된다. 춘분에 제비가 돌아오면 기러기는 북으로 날아가고, 추분에 제비가 남쪽으로 날아가면 기러기가 북에서 돌아온다. 연안대비(燕鴈代飛), 제비와 기러기는 이렇게 서로 엇갈려 만나지 않는다.

 행사마당으로 변할 대학로. 350m 구간에서 흥겨운 각종 공연과 축제가 벌어진다. 사진 임철순
 행사마당으로 변할 대학로. 350m 구간에서 흥겨운 각종 공연과 축제가 벌어진다. 사진 임철순
대학로에는 행사를 알리는 현수기가 항상 걸려 있다. 사진 임철순
대학로에는 행사를 알리는 현수기가 항상 걸려 있다. 사진 임철순

특이한 천체현상은 유난히 밝고 큰 별 노인성(老人星)이 나타나는 것인데, 춘분이나 추분에 이 별을 본 사람은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국가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노인성제(老人星祭)를 지냈다고 한다. 또 흉악범을 제외한 사형수는 봄·여름을 지나 추분 후 춘분에 이르는 가을~겨울에 형을 집행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른바 대시(待時)제도다.

이런 여러 가지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계절의 변화와 교대 시기에 모든 것의 균형과 중용을 지향해야 한다는 교훈이 아닐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다. 놀이만큼 중요한 활동도 없다. 다만 낙이불류(樂而不流), 즐기면서도 지나치게 들뜨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일과 놀이의 균형, 낮과 밤의 균형, 여름과 가을의 균형, 음과 양의 균형, 남성과 여성의 균형, 도시와 시골의 균형, 차도와 인도의 균형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런 마음가짐을 다지면서 즐겁고 흥겹게 놀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라는 한가위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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