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훈 논설위원, KBSI 분석과학마이스터

이석훈 논설위원
이석훈 논설위원

지난 6주간(7월 25일~8월 31일) 진행되었던 제16회 주니어닥터(Jr. Doctor)가 막을 내렸다. 주니어닥터는 대전 연구단지 일원에서 출연연, 대학, 정부 공공기관과 민간기관이 참여하는 과학문화 축제로 국내외에서 가장 긴 기간 운영되는 과학문화 프로그램이다. 5회 이상 참가하고 감상문을 제출하면 ‘주니어닥터’, 10회 이상 참가하고 감상문을 제출하면 ‘슈퍼주니어닥터’ 인증서를 수여하고, 제출된 감상문에 대해 2번의 서면평가와 발표평가를 거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상, 대전광역시장상 및 대전교육감상을 포함 30명에게 표창장을 수여한다.

올해 행사엔 비록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민간기관의 참여가 저조해 예년에 비해 참가 기관이 줄긴 했지만,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주관으로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등 11개 출연연, 대전지방기상청, 한국조폐공사 기술연구원, 국립문화재연구원 복원기술연구실, 한국수자원공사 K-water연구원,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등 11개 국가·공공기관, 충남대학교, 한남대학교, 대전과학기술대학교 등 대학 및 부설기관, 그리고 대덕넷, 한국자연사박물관, 대전·충남생태보전시민모임, 한국기술사업화진흥협회 등 민간기관 포함 30개 기관·단체가 참여하였다.

이번 행사에서는 참여기관을 직접 방문하여 과학을 체험할 수 있는 대면 프로그램은 88개 주제로 318회 운영되었다. 비대면 프로그램으로 ‘과학 DIY 챌린지’ 20종 및 ‘랜선 과학교실’ 23개 영상이 함께 운영되어 참가자가 약 1만7000여 명에 이르는 성황을 이루었고,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이 과학의 향기에 흠뻑 빠져드는 기회가 되었다. 올해 설문 결과가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전년도 설문 통계를 보면 전체적으로 95%의 만족도를 나타냈고, 세부적으로 활동 만족도, 교육내용, 과학 이해 및 재참여 의사가 모두 95%를 넘어 프로그램의 운영 및 효과 면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 가고 있다.

2001년 국제회의로 미국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을 방문한 적이 있다. 미국 기상청(Nation Weather Service, NWS)이 위치한 곳이다. 태풍 경로를 예측할 때 자주 등장하는 기관으로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미국 정부 조직이지만, 당시엔 기상청이 그 지역에 있는 줄도 몰랐을 때이다. 저녁 먹으러 들른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동네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기상과학과는 무관한 직업을 가진 소시민인 그들의 기상과 안전에 관한 해박한 지식은 기상학 전공은 아니지만 지구과학을 전공한 사람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바다가 가까워 날씨에 관심이 많아서인가 했지만, 실은 기상청이 진행하는 정기 교육을 이수한 결과란다. 기상업무라는 게 한시도 여유가 없는 일인데도 시민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주민들과의 소통에 노력하는 미국 기상청의 운영철학과 과학자들의 사명감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리고 교육을 이수하면서 지역에 기상청이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는 주민들을 보면서 부러웠고, 국가연구기관의 연구자로서 국민과의 소통에 대한 책임감도 함께 커졌다.

돌아와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가장 큰 인프라인 첨단 연구장비를 중심으로 과학 대중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한편 그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여름방학 기간 2박 3일의 과학캠프를 개최했을 때 의외로 지원자가 너무 많아 당황하기까지 했다. 첨단과학에 대한 학생·교사들의 목마름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2004년부터 초·중·고·대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엑스사이언스(X-Science : 체험, 실험 및 탐구 프로그램)’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기초지원(연)은 대전 이외에 전국 6개 지역의 지역센터를 통해 전국적 과학대중화 프로그램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10년간 정부 지원을 받으며 연간 1만여 명이 참가하는 대표적 과학문화프로그램으로 정착되었고, 정부 지원이 끝난 현재도 규모가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연구소의 자체 예산으로 계속 운영하면서 20년째 이르고 있다. 그만큼 과학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크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전 연구단지에는 많은 정부출연연구소와 과학기술 관련 국가·공공기관, 대학, 민간연구소가 집중되어 있다. 이들 인프라로 과학 대중화 확대 방안을 마련하면서, 교육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이 단순히 치러야 하는 업무가 아니라 스스로 보람을 느끼게 하고, 참가하는 학생들은 다양한 과학 세계를 체험하며 미래 꿈과 희망을 갖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2년에 걸쳐 ‘주니어닥터’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2008년 여름 3주에 걸쳐 6개 기관이 참여한 시범운영을 통해 프로그램의 목적과 효과가 공유되면서, 이후 참여기관과 참가자들이 급격히 늘었다. 프로그램 참가 신청을 할 때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를 맞기도 했고, 최고 40개 기관이 참여하고 4000회 이상 운영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과학문화 축제가 되었다.

참가자들의 지역 분포를 보면, 인접한 대전 및 인근 지역의 참가자가 가장 많지만, 서울·경기지역은 물론 강원도와 제주도의 참가자 비율이 높아지고 있어 전국 학생과 학부모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무더운 여름을 시원한 바다나 산이 아닌 더 뜨거운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의로 식히는 여름 과학축제로 자리 잡아가고 있어, 휴가를 반납하고 프로그램 운영에 집중한 연구자들에게 보람을 느끼게 한다. 특히 해외 빈곤 지역을 지원하는 ‘글로벌 협력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탄자니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운영할 만큼 주니어닥터가 진일보한 것에 더없이 큰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는 ‘글로벌 주니어닥터’(사진 위와 아래).​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는 ‘글로벌 주니어닥터’(사진 위와 아래).​

그러나 주니어닥터 운영 횟수가 해를 거듭하면서 처음 기획 의도와는 다른 현상들이 나타나 안타깝게 하고 있다. 과학문화는 말 그대로 과학을 매개로 국민과 소통하는 프로그램이다. 비록 미래의 주역들에게 기회를 주고

자 참가 대상을 초·중·고 학생으로 한정하고는 있지만, 참가 대상자 모두를 과학자로 키우겠다는 것도 아니고, 또 과학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생활 자체가 과학기술의 산물인 요즘,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높여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위해 과학 지식을 공유하고자 함이다. 그러기에 국민적 관심이 높은 에너지, 원자력, 기후환경, 의·생물 분야의 기관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참여해오고 있다.

그러나 과외활동의 한 방편으로 인식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프로그램 참가를 선점함으로써 다른 이들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상을 타기 위해 전문가에게 감상문을 의뢰하는 일부 학부모들의 일탈이 사명감으로 참여하는 과학자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또한 대전시가 일부 운영예산을 지원해주고 있어 과학자들의 열의와 책임감으로 유지하고는 있지만, 과학자들의 사명감만으론 늘어나는 참가자들을 감당할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엔 역부족이다. 운영 초기에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도 있었지만, 지금은 참가 신청이 너무 빨리 종료되어 참가할 수 없게 된 학부모·학생들의 불만이 게시판에 넘쳐난다. 과학이 국가의 미래이고, 국민이 국가의 주체임을 인식한다면, 국가는 과학과 국민이 소통하는 과학문화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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