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논설위원,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원장

김용호 논설위원
김용호 논설위원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보면 ‘정치의 과잉, 정치의 빈곤’이라는 서로 모순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유권자의 정치참여 방식이나 요구가 너무 과격하고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과잉 현상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를 무조건 추종하는 ‘개딸(개혁의 딸)’을 비롯한 팬덤들의 정치적 극성은 이미 여의도 정치를 흔들어댈 정도가 되었다. 더구나 유튜버를 비롯한 각종 1인 매체들이 정치적 입장이 다른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한편 정치의 빈곤은 정치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야 정치인들의 극한 대립으로 인해 정치적 대화나 타협을 통한 입법이 지연되거나 실종되고 있다. 정치권이 서로 상대방을 헐뜯거나, 사법당국에 고소, 고발하는 일에 바빠서 정작 본연의 입법정치는 마비되고 있다. 정치권이 국정 현안을 사법부의 판단을 맡기는 정치의 사법화가 횡행하고 있다.

그러면 ‘정치의 과잉, 정치의 빈곤’이라는 상호 모순적인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인가? 민주화 이후 유권자들의 정치적 자신감이나 효능감이 높아져서 정치참여나 요구는 날로 증가하는데,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정치권의 역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비롯한 온라인의 발달로 인해 유권자의 정치참여 비용이 현저히 낮아져서 일반 유권자의 정치참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또 새로운 정보나 주장, 심지어 자극적인 가짜 뉴스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실시간으로 확산되는 바람에 일반 정치인이나 정당이 유권자의 정치참여를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3김 이후 정치지도자들의 권위나 역량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유권자의 정치적 요구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자기 진영에 속한 팬덤이나 이익단체, 시민단체의 정치적 요구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실천하기 어려운 공약이나 약속을 남발하는 바람에 선거가 끝난 후 이들의 과도한 정치적 요구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정치 과잉을 싫어하는 유권자들은 정치나 정당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9월 초 갤럽의 여론조사를 보면 무당파 유권자가 30%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 무당파가 많다(18~29세는 44%, 30대는 35%). 한편 여야의 극한 대립과 입법 표류 등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정치 불신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날로 증가하는 탈정당화와 정치 불신을 해결할 방안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정당의 정상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우리나라 정당이 유권자의 정치참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팬덤, 시민단체, 매스미디어를 비롯한 대안조직이 정치참여의 유력한 도구가 되어 있다. 많은 유권자들이 당원이 되기를 싫어하지만, 시민단체에는 기꺼이 참여한다. 유권자의 정당 불신이 강하기 때문에 정당 참여를 꺼리고, 정당 참여가 저조하기 때문에 정당이 제 구실을 못하는 바람에 정당 불신이 높아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어야 대의제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 개혁이 필수적이다. 현행 중앙당 위주의 명사정당 조직을 개편하여 풀뿌리 정당조직을 육성함으로써 지지자-당원-지방 당이 중심이 되는 명실상부한 대중정당(mass party)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자나 엘리트가 창당하여 하향식(top-down)으로 정당을 운영하는 방식이 과도하여 일반 당원이나 지지자들이 정당에 대한 일체감(party identification)을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지도자가 당을 좌지우지하지 않고 당원이나 지지자가 당 운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일체감이 생기게 될 것이다. 예컨대 정당 지도자가 당원이나 지지자의 분명한 동의 없이 정당의 이름을 함부로 바꾸거나 합당을 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조건은 중앙당의 지도부가 장악하고 있는 공천제도를 지지자-당원-지방 당이 공천에 참여할 수 있는 분권형 공천제도로 바꾸어야 한다. 지방 당이 공천에 참여하면 정당의 풀뿌리 조직이 살아나고, 개딸과 같은 팬덤이 당을 좌지우지하지 못한다. 지금은 당 조직이 매우 부실하고, 또 동원력도 없으니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팬덤이나 시민단체나 다른 대안조직에 의존하게 된다.

한편 정치의 빈곤을 해결하려면 국회 개혁이 필요하다. 국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나라가 대통령제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처럼 내각제 식으로 국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각제에서는 당론이 중요하고, 소속 국회의원들이 당론에서 이탈하면 내각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당을 중심으로 국회가 운영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제에서는 국회의원의 임기가 보장되어 있어서 정당 활동보다 의정활동에 몰두할 수 있는데, 거의 모든 국회의원들이 당직을 가지고 국회직보다 당직에 열심이다. 국회는 놀고 있는데, 여야 국회의원들은 매일 당사에 나가 서로 상대방 정당을 비난하느라 바쁘다. 이런 제도와 관행을 고쳐야 한다.

예컨대 지금처럼 여야 교섭단체 위주로 국회를 운영하지 않고, 상임위 중심으로 국회를 운영하도록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지금은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하거나 재가하지 않으면 본회의는 물론 상임위도 개최하기 어려우니 국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내년 총선이 7개월 정도 남았는데, 여야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표를 모으려고 하지 않고, 정치개혁 경쟁을 통해 유권자의 지지를 얻도록 노력해야 우리 정치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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