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논설위원, 전 한국일보 심의실장

정숭호 논설위원
정숭호 논설위원

정기국회가 개회한 지난 1일, 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지난해 미국 출장비 상세 내역을 공개하라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다그칠 때 공무원 출장비가 어떻게 지급되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두 사람 중 누가 옳은 말을 하는가를 가리려는 게 아니라 국내출장이건 국외출장이건 공무원 출장비 중 ‘식비’와 ‘일비’라는 걸 아직도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는가가 궁금해서였습니다.

식비는 문자 그대로 밥값인 걸 알겠는데, 일비에 대해서는 똑 부러지는 설명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냥 주는 수당이라는 설명도 있고, 출장지에서 사용할 택시비 등 교통비와 통신비라는 설명도 있습니다만 식비나 일비는 출장 떠나기 전에 현금으로 받는 출장비입니다. 현금으로 지급하다 보니 일비와 식비에 대해서는 지저분한 이야기가 많이 있었지요. 수년 전, 국민권익위가 서울 한 구청의 전 직원을 상대로 출장비 부정 지급 현장 조사에 나선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조사 결과가 하도 한심해 나는 ‘출장비, 공무원 복지대책인가?’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국민권익위는 지난달 서울 모 구청에서 출장비 부당 수령과 관련,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현행 ‘공무원 여비 규정’은 국내 출장 여행 시간이 4시간 이상이면 2만 원, 4시간 미만이면 1만 원을 현금 지급하도록 되어 있는데 가지 않은 출장을 갔다거나, 출장 기간을 늘려서 출장비를 부풀려 받아 갔는지에 대해 조사한 것이다. 한 개인이나 한 부서가 아니라 구청 소속 공무원 1,300명 전원이 조사를 받았다. ‘만연(蔓延)된 부패’라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출장비 허위 및 과다 청구 사례는 정부 홍보 홈페이지인 ‘정책브리핑’에도 등장한다. 그만큼 자주 여러 곳에서 발생한다는 뜻일 것이다. ‘교육에 참석한 후 집으로 돌아갔음에도 40회에 걸쳐 출장비를 받아 간 사람’, ‘지인의 장례식 참석 등 17건의 사적 용무를 공무출장으로 처리한 사람’, 허위로 49일 출장 신청을 한 사람’ 등 치사하고 간교하며 쩨쩨한 수법으로 국민 세금을 털어간 사례가 죽 나열되어 있다.(2017년 5월 15일 내일신문)

권익위는 그때 이후에는 국내 출장비 부당 수령과 관련한 조사를 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관련 기사가 그 이후에는 나온 게 없으니까요. 공무원 사회가 전보다 맑아진 결과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 칼럼에는 해외 출장비를 속여 먹는 이야기도 몇 줄 있습니다.

개인적 사유로 일본에 가면서 공무 출장인 것처럼 속여 출장비를 받아간 한 공공기관장이 지난해 하반기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허위 출장보다 더 심각한 것은 출장지에서 관련 기관이나 기업체에게서 밥값, 술값, 교통편 등 편의를 받아 안 쓴 출장비를 자기 주머니에 넣는 공무원들이다. 재외 공관 대상 국정감사를 나간 국회의원들부터 시찰, 교육 및 회의 등등 이런저런 이유로 출장 간 공무원들이 이런 식으로 ‘한몫’ 잡는 이야기는 여러 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함께 출장 갔다가 귀국하는 공무원들이 비행기 안에서 달러를 침 묻힌 손가락으로 세어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공무원이 해외 출장을 갈 때는 어떤 명목으로든 현금을 주지 말고 공무용 신용카드만 사용하도록 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출장비는 또 다른 공무원 복지대책인가?

인사혁신처 홈페이지 국외출장비 규정은 지금도 일비와 식비는 현금을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직급에 따라 일비는 하루 30~60달러, 식비는 37~186달러입니다. 식비와 일비를 카드로 결제토록 하면 공무원이 출장지에서 기업이나 산하기관에서 얻어먹으면 국민세금 아낄 수 있게 되고, 대한민국 엘리트인 공무원들이 밥값 아껴 돈 모으려는 쩨쩨하고 치사한 모습은 사라질 겁니다.

해외에서 그런 접대를 받는 것도 어려워질 겁니다. 기업이나 산하기관, 혹은 ‘지인’이 베푸는 접대는 대체로 훗날을 도모하기 위한 것일진대, 스무 끼니를 먹어야 할 일정에서 열 끼니만 먹은 것이 알려진다면 조직 안팎에서 반드시 뒷말이 나올 겁니다. 훗날을 위한 친목 도모성 접대는 슬금슬금 사라질 겁니다.

인사혁신처 홈페이지에는 ‘공무원 여비 100문 100답’도 있습니다. 그중에는 “국외출장 첫날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었을 때 식비는 어떻게 지급해야 하는가?”와 같은, 내 생각에는 ‘쪼잔한’ 질문이 꽤 많습니다. 식비와 일비를 카드로 결제토록 한다면 ‘100문 100답’이 ‘50문 50답’쯤으로 줄어들 겁니다. 기내식을 먹고 도착해서 밥을 또 사 먹으면 사 먹은 거고, 안 먹었으면 안 먹은 게 카드 사용 기록에 다 남을 터니 이런 걸 문의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한동훈 장관의 미국 출장비에 대한 김의겸 의원의 공격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는 모르겠으나, 내 생각에는 김 의원이 이런 문제, 공무원 출장비를 현금으로 주도록 한 것을 폐지하고 무조건 카드만 쓰도록 규정을 바꾸는 데 앞장섰더라면 자신에 대한 그다지 좋지 않은 국민의 평가를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김 의원의 분발을 기대합니다.

(“기내식을 먹었을 경우 식비는 어떻게 되나요?”라는 질문에는 “식비를 일부 감액해서 지급해야 합니다”라는 답변이 달려 있었습니다. 카드로 사용케 하면 이런 거 일일이 계산해서 출장비 지급해야 하는 담당 공무원 일손 줄어들고, 그러다 보면 공무원 숫자도 줄일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내가 너무 큰 그림을 그린다고요? 큰일은 작은-쪼잔한-희망에서 시작될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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