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선 논설위원,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 연구교수

이주선 논설위원
이주선 논설위원

사람은 ‘한계적으로(marginally)’ 결정하고 행동한다. 이는 현대 경제학이 전제하는 합리적인 개인(rational individual)의 본질을 규정한다. ‘한계’라는 말은 가장자리 또는 끝자락을 의미한다. 이는 대단히 어렵지만 이해하면 기발해서 무릎을 칠 만큼 정확하게 사람의 행동이 지향하는 바를 알려준다.

한계적 변화란 한 상태에서 무엇인가가 아주 조금 변화할 때, 그에 따라 발생하는 변화를 말한다. 수학에서 이 변화율을 순간변화율이라고 한다. ‘한계적으로 행동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가 아니라 ‘주어진 상태(순간)에서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한계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의 사례들은 우리 삶의 일상에 비일비재하다.

한 학생이 내일 물리학 시험이 있어서 저녁에 시험공부 중이었다. 그런데 애인이 전화를 걸어 와 2시간 동안 자신과 놀자고 했다. 그래서 시험공부 중이라 어렵다 했더니 화를 내며 말하기를 “내가 중요해, 물리학 시험이 중요해?”라고 했다.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살지만 잘못된 비교다. 비교의 대상은 ‘애인과 물리학 시험’이 아니다. 물리학 시험 바로 전날 저녁 2시간을 시험공부하는 게 이득이냐 애인과 노는 게 이득이냐가 비교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므로 이 학생의 애인은 전부 아니면 전무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어리석게 화를 낸 것이다. 이런 사람과의 관계는 인생을 위해서 반드시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이 말고도 사례들은 너무나 많다. 그중에 손쉽게 볼 수 있는 사례는 시장에서 부자든 가난하든 한 봉투에 1500원 하는 콩나물을 사면서도 50원을 깎아달라고 실랑이하는 것이다. 그러면 파는 사람은 남는 게 하나 없다면서도 30원을 깎아주는 방식으로 타협한다. 이게 바로 사람들의 한계적 행동을 보여주는 시장거래 광경이다. 사실 부자든 가난하든 50원은 큰돈이 아니다. 그런데도 시장에 가면 많이 그렇게들 한다.

또 도로에서 사람들은 차가 더 짧게 늘어선 차선으로 계속 차를 이동시킨다. 실제 막히는 도로에서 그렇게 열심히 애써도 대개 1시간 운전에 평균 5분도 절약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단 10미터 공간만 비어도 옆 차선으로 여지없이 차를 밀어 넣는다. 거기서 절약되는 시간이 단 몇 초에 불과해도 그것을 택한다. 이 또한 사람이 한계적으로 결정함을 보여준다.

심지어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에서 죽어간 사람들도 실내에 흩어져 죽은 것이 아니라, 밖으로 향하는 문 앞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한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숨을 거둔 뒤 그 시신 위에 올라간다고 해서 그가 살아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사람은 가스가 먼저 차는 아래보다는 호흡이 그래도 자유로운 그보다 높은 곳을 택해서 올라간 것이다.

사람이 때로 지금 당장 참을 수 없어서 장래 너무나 큰 손실이나 어려움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극단에는 거의 내일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약, 강도, 강간, 폭행, 살인 등 중범죄들도 대개 이런 한계적 의사결정에 기인한다. 미래가 어떻게 되든 지금의 쾌락과 해소가 중요하다. 이것을 경제학에서는 미래를 기하급수적으로 할인한다고 한다. 이런 삶은 대개 질풍노도가 되고 궁극적 파멸로 끝난다.

이렇게 사람들은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항상 지금 당장 유리한 것을 선택한다. 그러므로 전체적(평균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대세에 지장이 없을 일에도 늘 다투고 경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금, 이 순간은 바로 한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게 경제학을 알든 모르든 사람이 세상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하는 모습이다. 경제학은 이를 토대로 합리적인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행동한다는 가설(hypothesis) 하에 소비자, 기업, 조직의 행동들을 한계적으로 분석한다. 그러므로 이를 안다면 그럴듯한 목적과 명분으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정치인, 정부, 기업, 조직의 행동도 경제학적 분석을 통해서 당연히 상당한 진실을 알 수 있다.

경제학의 분석은 비단 경제뿐만 아니라, 이런 의사결정이 포함된 많은 영역에 대한 분석과 예측도 다른 사회과학에 비해서 비교적 적확하다. 왜냐하면 대개 사람의 어떤 행동도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을 벗어나지 않고, 이익을 더 얻거나 손해를 덜 보는 데 최적화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사결정과 행동이 한계적 사고에 제약되므로 경제학의 한계분석(marginal analysis)은 사람의 인센티브와 행동 예측에 상당한 정확성을 가진다. 그래서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여왕(the queen of social sciences)’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한다.

흔히 대화하다가 견해차가 있을 때 “나는 경제학은 모르지만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는 사람을 본다. 그가 경제학을 모른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경제학적 관점을 벗어나 자신의 생각대로 하면 결국 그 자신에게 불이익이나 손해가 초래될 가능성이 지극히 크다. 그는 경제학을 알든 모르든 한계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하면서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편견이나 오류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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