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현 논설위원, (주)터치포굿 대표

박미현 논설위원
박미현 논설위원

필자는 지금 파리에 체류 중이다. 센강 옆의 멋진 카페에서 멋진 칼럼 한 편을 남기려 했던 처음 생각과 달리 전 세계 언어가 치열하게 오가는 패션 전시장 한가운데에서 이 분위기를 담아보고자 한다.

프랑스의 대표적 연례 패션 전시행사 중 하나인 ‘who’s next Paris’에 한국의 13개 업사이클(부산물, 폐자재와 같은 쓸모 없거나 버려지는 물건을 새롭게 디자인해 예술적·환경적 가치가 높은 물건으로 재탄생시키는 재활용방식) 브랜드가 초청되어 한국 업사이클관을 운영했다(9월 2~4일).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업사이클 브랜드를 보유한 국가이다. 2022년 연구 기준 500여 개의 업사이클 브랜드가 활동 중이고, 매년 50개 이상의 신생 브랜드가 생겨난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10개 정도, 좀 더 활발하게 진행된다는 유럽 국가들도 50개 이상의 브랜드를 찾기 어려운 것에 비교해 수나 다양성 면에서는 엄청나게 이 산업을 이끄는 중이다. 아직 규모 면에서는 신생 기업들이 많아 아쉬운 점이 있지만, 국제전시회에서의 관심과 위상을 보니 대형 브랜드로 성장할 것도 가까운 미래라는 확신이 든다.

이번 출장을 위해 자료조사를 하면서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한국에서 업사이클이라고 하면 버려진 것들을 해체해서 다시 새로운 형태나 기능의 제품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물리적으로 세탁 등만 진행하고 그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 재사용이라고 달리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프랑스의 경우 업사이클 브랜드들이 빈티지 가게와 같은 이름으로 이해되면서 버려진 가구나 의류들을 세척, 수선하여 원래 기능 그대로 판매하는 것이 유난히 많은 것을 발견했다.

프랑스의 대표 백화점인 라파예트에 커다란 규모의 RE스토어가 있는데 재활용, 업사이클, 수선상품, 빈티지 등 환경 제품들을 소개하고 판매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청바지를 해체하여 새로운 형태의 청바지나 가방 등을 만들거나, 유리병을 잘라서 촛대나 컵으로 만드는 브랜드, 자투리 천을 활용하여 소품을 만드는 브랜드를 볼 수 있다. 그리고 50% 이상은 모두 빈티지 의류 판매장으로, 이미 판매되었던 제품을 백화점 신상품 판매장 바로 옆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아주 목이 좋은 자리에서 말이다.

현지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설명을 듣다 보니 어렴풋이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다수의 명품(가격이 아니라 완성도나 제품에 철학을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의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국가 입장에서, 이미 잘 만들어진 옷이 있으면 그 옷이 최대한 잘 활용되는 것이 더 중요하지, 그걸 다시 잘라서 버려지는 부분이 생기고 추가적인 인력과 전기(재봉틀)를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낭비라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업사이클 제품 판매점의 컨셉을 알려주는 간판.
업사이클 제품 판매점의 컨셉을 알려주는 간판.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에 크고 눈에 띄게 자리 잡은 매장 전경.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에 크고 눈에 띄게 자리 잡은 매장 전경.

세탁만 해 판매하면서 업사이클이라고 하다니, 우리는 버려진 자원들의 가치를 다시 업그레이드해보겠다고 일일이 해체하고 세탁하고 다시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하는데, ‘너무 쉽게 작업하는 것 아니야?’라고 했던 질투가 눈 녹듯 사라졌다. 대신 다른 부러움이 생겼다. 모든 생산자가 사용 이후까지도 고려해서 버려지는 것이 없는 것을 목표로 하면 어떨까?

판매 중인 각종 빈티지 의류.
판매 중인 각종 빈티지 의류.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버려지는 것이 없으면 소재가 없어서 업사이클 기업들이 다 망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터치포굿의 목표는 처음부터 ‘잘 망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었다. 우리의 지속을 추구하느라 좋은 쓰레기가 계속 배출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대대적으로 밝히고 있는 목표이다. 더 이상 버려지는 것이 없어서 업사이클할 것이 없는 세상이 오면 얼마나 행복할까? 프랑스에서 그 행복을 살짝 맛본 기분이다. <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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