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우현 논설위원, 한불협회 회장, 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전 숙명여대 객원교수

손우현 논설위원
손우현 논설위원

2024년 미국 대선에 도전하는 8명의 공화당 경선 후보가 지난 23일 밤(현지 시각) 우파 방송 폭스뉴스의 진행으로 첫 토론회를 열었다.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지지율로 압도적 1위를 달리는 도널드 트럼프(77) 전 대통령은 “시간이 아깝다(It wasn’t worth his time)“는 이유로 불참했지만 토론의 승자는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였다.

토론회 참가자 중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낸 인도계 기업인 비벡 라마스와미(38)는 “트럼프 대통령이 21세기 최고의 대통령”이라고 극찬하는가 하면 역시 인도계로 뉴욕타임스가 “최상의 트럼프 대안(‘the Best Trump Alternative)”이라고 호평한 니키 헤일리(51, 여)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트럼프는 미국에서 가장 반감을 사는 정치인이다. 본선에서 그런 식으로 이길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면 유죄 판결을 받아도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애사 허친슨 전 아칸소 주지사를 제외한 7명이 손을 들어 동의를 표했다. 이 중에는 트럼프 팬덤의 야유가 두려워 마지못해 손을 든 이들도 있다고 미 CBS방송은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차 공화당 토론의 승자와 패자’ 제하 기사에서 승자 1순위로 트럼프를 선정했다. 신문은 트럼프가 불참하면 자신을 변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며 참가자들의 공격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 경선 주자 중 정치 신인인 라마스와미에 집중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트럼프를 애써 거명하지 않으려 했다고 지적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토론의 절반이 지나서야 헤일리가 트럼프 재임 기간 중 미국의 국가 부채가 8조 달러나 증가했다고 비판하자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도 트럼프의 행동은 유죄 여부와 관계없이 미국 대통령직의 품위를 실추시켰다(“beneath the office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고 맹공했다. 허친슨도 2021년 1월 6일 미 의사당 난입 사건에서의 트럼프의 역할은 미 수정헌법 14조에 의해 그의 대통령 선출 자격을 박탈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정헌법 14조 제3항은 미국 헌법을 지키겠다고 선서한 공직자가 폭동이나 반란에 관여한 경우 어느 누구든 공직에 출마하는 것을 금지한 규정이다. 크리스티와 허친슨이 트럼프를 비판할 때 청중석에서는 야유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위 승자는 이번 토론에서 돌풍을 일으킨 라마스와미라고 평가했다. 인도계 이민 2세인 라마스와미는 1985년생으로 하버드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후 제약 기업을 창업해 백만장자가 된 밀레니얼 세대다. 그는 교육부 폐지 등 ‘미국 혁명의 부활’을 주장하며 ‘기부자에게 매수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사재 1500만 달러를 들여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그의 이름도 모르던 많은 공화당원들에게 이날 토론에서 첫선을 보인 라마스와미는 한때 '트럼프 대항마'로 기대를 모았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제치고 펜스 전 부통령과 크리스티의 집중 포화를 받으며 급부상했다. 두 사람은 라마스와미를 ‘신출내기(rookie)’라고 비하했다. 크리스티는 라마스와미를 ‘챗GPT’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공격은 라마스와미의 체급만 키워주었다.

허나 라마스와미가 수세에 몰린 순간도 있었다. 유엔 대사를 지낸 헤일리는 “당신은 친미 국가(우크라이나)가 아닌 살인자 국가(러시아)를 선택했다.”고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라마스와미의 입장을 질타했다. 청중은 이 대목에서 큰 박수로 헤일리에게 지지를 보냈다.

가장 큰 패자는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다. 그는 이날 라마스와미에게 무대를 뺏겼다. 이번 토론은 디샌티스의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으나 그는 이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는 단지 그의 크로나 격리 반대 정책과 2022년 자신의 압도적인 주지사 재선을 상기시키며 트럼프와의 차이를 부각시키려 애썼다.

한편 헤일리는 자신이 몸담은 공화당의 비판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트럼프의 높은 비호감도를 지적하는가 하면 유일한 여성 경선 후보로서 공화당의 낙태 금지 법안을 비판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헤일리의 지적이 공화당을 분발시키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a wake-up call’)이기는 하지만 공화당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칼럼 필진을 대상으로 평점을 물은 결과, 헤일리 전 대사가 평균 6.3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고 이어 펜스 전 부통령(5.1), 크리스티 전 주지사(4.8), 디샌티스 주지사(4.5) 등 순이라고 보도했다. 라마스와미 후보는 3.6점에 그쳤다.

한편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자신이 패했던 조지아주에서의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한 혐의로 기소된 트럼프는 24일 애틀랜타 풀턴카운티 구치소에서 미국 전·현직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머그샷’(범인 식별용 사진)을 촬영한 후 보석금을 내고 약 20분 만에 풀려났다. 트럼프 측은 이어 그의 ‘머그샷’에 ‘절대 투항하지 마라(Never Surrender)’라는 캡션을 넣어 제작된 티셔츠, 포스터, 범퍼 스티커 등을 온라인으로 판매해 이틀 만에 총 710만 달러(한화 약 94억2000만 원)를 모금했다.

 '절대 투항하지 마라'고 씌어 있는 트럼프 머그샷 티셔츠.
 '절대 투항하지 마라'고 씌어 있는 트럼프 머그샷 티셔츠.

 

트럼프는 2020년 대선 결과 전복 모의 혐의 등으로 네 차례 기소됐는데 그의 혐의는 모두 91개에 이른다. 그는 풀턴카운티 구치소를 떠나면서 취재진에게 “나에 대한 기소는 사법을 희화화한 것(a travesty of justice)”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을 희화화하고 있다. 28일(현지 시간) 보도된 미 ABC방송과 입소스의 공동 여론조사에 의하면 조사 대상 미국 성인의 50%는 트럼프가 후보 사퇴를 하여야 한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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