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논설위원,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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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업이 가장 많이 기부하는 곳은 어디일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하 대중소기업재단)을 손꼽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랑의 열매로 유명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대부분 알지만 대중소기업재단은 잘 모른다. 이 재단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을 촉진하고, 공업과 함께 농어업이 동반성장을 할 수 있도록 기금을 조성해 공익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초창기 정치적 영향으로 다소 소란스러웠지만 지금은 한국의 유나이티드웨이(United Way)라고 불릴 정도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비영리 지원기구로 발돋움했다. 기금의 규모뿐 아니라 그 운영도 너무 깐깐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투명성을 보이고 있다. 반면 대중소기업재단은 일반인들에게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대기업이 이렇게나 많이 기부하는 당위성도 홍보되어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외부기관의 투명성 평가도 받지 않았다.

우리나라 6대 기업(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LG생활건강, 포스코, KT)이 기부한 금액 중 48%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대중소기업재단에 전달되었다(2022년도 국세청 공시 기준). 국세청에 표준서식으로 공시한 공익법인 수가 1만1435개인데 단 두 곳이 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을 제외한 일반적인 공익법인에 기부한 비율은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통계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기업 재단과 일반 공익법인(NPOs)을 놓고 기업 간 특징이 달랐다. SK하이닉스는 그룹사 출연 재단, 즉 기업재단에 자사 기부금의 55%를 전달했다. 포스코도 일반 공익법인에 기부한 비율은 3%에 불과하며 대부분 자기네 기업재단에 기부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사회적 가치연구원, 최종현학술원, 한국고등교육재단 등 소셜 임팩트 연구와 인력 양성을 위해 약 230억 원이 넘는 돈을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포스코교육재단이 기부받은 70억 원은 포항제철고등학교 등을 비롯한 학교 운영비로 모두 배분하고 있었다. KT 또한 같은 유형인데, 연간 기부금의 30%(약 23억 원)를 KT그룹 희망나눔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KT그룹 희망나눔재단의 기부금품 지출 명세서를 살펴보니 지급처 명에 케이티와 자회사(케이티디에스, 케이티커머스, 케이티파워텔 등)가 많았는데, 임직원 봉사단으로 추측되는 ‘사랑의 봉사단’, 생필품을 구입한 ‘취약계층을 위한 희망 BOX’, 그리고 통신이라는 전문성을 활용한 ‘목소리복원마음TALK 솔루션 개발’ ‘클라우드 서버 이용료’ 목적으로 사용된 돈이다. 기부한 돈이 다시 기업의 매출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이와 대조적으로 LG생활건강의 기부금 중 43%는 일반 공익법인에 돌아갔다. 해당 통계는 기업이 기부금을 다루는 방식을 보여준다. LG생활건강은 희망을나누는사람들, 아름다운가게, 밀알복지재단 등 다양한 중소규모 공익법인과 파트너십을 맺고 공익사업을 하고 있었다. 이 단체들은 공익법인 민간평가기관인 한국가이드스타에서 투명성 및 책무성, 효율성을 검증받아 별점 만점을 획득한 곳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에도 일반 공익법인들에 기부하고 있는 비중이 41%에 달했다. 기업 재단 내에서 기부금을 소화하거나 비영리 파트너에 위탁해버리는 방식의 차이가 확연히 보였다. 현대자동차는 함께만드는세상, 어린이재단이 투명성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국내 50대 기업 중 공익법인과 파트너십을 맺은 기업이 약 64%라고 한다. 제휴를 맺으며 다수 공익법인들은 제3자 기관에 의뢰해 투명성 평가를 받아 기부자의 신뢰를 더하기 시작했다. 기업들 입장에서 보면 비영리기구와 파트너십을 맺을 때 불확실성이 하나 치워진 것이다. 지속 가능한 ESG 측면에서 기업이 비영리 파트너와 협업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가치를 이루는 것이고, 비영리 파트너 또한 영리하게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제3자의 검증을 받은 공익법인이 많지 않고, 기업이 기부처를 선택한다 해도 기부금의 투명성 및 책무성이 양자 간의 관계에서만 증명된다는 것은 아쉽다. 한국가이드스타 공익법인 평가 결과에 따르면 6대 기업이 기부한 기부처 중 일반관리비 0원, 직원 0명, 인건비 최저임금 이하 등 평가 제한 사유에 해당하는 기부처가 23%에 해당했다.

기부금은 공공의 자금이다. 기부금에 대한 세제상의 혜택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 사용된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막연한 신뢰를 기부자의 눈높이에 맞춰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은 내부 정보를 공개해 제3자의 평가를 받는 것이다. 이미 몇몇 공공기관은 제3자에 의한 공익법인 평가 결과를 인용해 기부처를 선택하고 있다.

기업 사회공헌은 기부금을 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비영리 생태계의 동반성장을 위해서 기업 사회공헌의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 기업이 만들어내고 싶은 사회적 영향력을 시작으로 어떤 기준으로 자선단체를 선택하고 협업할지도 지배구조(Governance)의 한 축이 됐다. 이제 위탁 단계의 사회공헌은 시대가 지났다. 직접 비영리 파트너를 찾고,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사회공헌은 비영리 색채를 더해 더욱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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