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최근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트리고 있는 일련의 사건을 대하자니,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묻고 또 묻게 된다.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묻지마 범죄’에서부터 도무지 믿기지 않는 학부모 악성 민원까지, 처음엔 별개의 사건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들여다보니 고립화된 핵가족의 부끄러운 민낯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강대 사회학과 이철승 교수의 책 ‘재난 쌀 국가’(2021년)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어디든 부적응자도 있었을 테고, 게으른 놈, 눈치 없는 놈, 거짓말을 일삼는 놈, 약삭빠른 프리 라이더(아무 노력이나 참여를 하지 않은 채 남들과 성과를 공유하는 무임 승차자) 등이 분명 있었을 텐데, 이웃 논에 발을 담그며 협업을 해야만 했던 농경사회의 특성상 마을 공동체 안에는 이들을 다루는 나름의 방식이 존재했으리라는 것이다. 그중 우리네 행실을 바로잡는 데 비교적 잘 먹히던 메시지는 “네 부모 얼굴에 먹칠하지 말라” 아니었을까 싶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 가타다 다마미(片田珠美, 1961~ )의 책 ‘철부지 사회’(2015년) 속에도 뜻밖의 통찰이 담겨 있다. 우리는 흔히 전통사회에서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리라 상상하지만, 애시당초 그런 건 없었으리라는 것이 그의 추론이다. 그보다는 가족을 촘촘하게 둘러싸고 있던 이웃과 마을과 친족 공동체가 부모를 대신해서 젊은 세대에게 지켜야 할 규범과 가치를 전수하고 버릇을 가르치며 훈육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이 자식”이요 “부모가 자식 가르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을 종종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산업화 도시화의 흐름을 타고 가족은 빠르게 독립의 길을 걸어왔다. 늘 마주치며 일상을 공유하던 이웃과 번화한 친족 집단의 감시와 통제에서 자유로워진 핵가족은 만세를 부르며, 가족의 자율성과 개인의 자유를 만끽했다. 개인에게 적당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일련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다양한 공동체가 빠르게 사라진 오늘날, 부모-자녀관계만 남은 핵가족은 독립의 기쁨도 잠시,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너나없이 철부지로 남아 어리광을 부리는 미성숙한 사회가 되어버린 건 아닐는지.

낯선 사람들과 이웃해서 살고 있는 지금은 피차 내가 뉘 집 자식인지 내 부모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된 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중반,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가 절반을 넘기 시작했던 그때만 해도 마을과 동네는 살아있었고, 친인척 관계도 번화했으며 왕래도 빈번했다.

마을도 사라지고 이웃도 소멸하고 친족관계도 대폭 축소된 과정을 꼼꼼히 살펴봐야 할 테지만, 최근엔 핵가족마저 세포분열을 시작해서 지금은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다. 이웃의 시선에 신경을 곤두세운 채 부모 얼굴에 먹칠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사라진 대신, 개인의 부적응을 다스려주고 고립감을 해소해 줄 완충지대도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 자리는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상담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국가의 책임과 역할 또한 확대 강화되고 있는 중이다.

예전 사촌 형제자매는 친형제자매만큼이나 가까운 경우가 많았고, 속 깊은 고민을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어른이나 인생의 선배들이 주위에 널려 있었다. 지금은 고민이 생기면 정신과 의사나 전문 상담가 ‘선생님들’을 찾아간다. 물론 전문가의 전문적 지식에 딴지를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과거의 주먹구구식 조언보다는 문제 해결에 실질적 도움을 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문제들은 굳이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이웃 공동체나 친족 관계나 인간관계 속에서 충분히 해결 가능하지 않았던가.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 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공동체의 지혜가 스며들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치고 자기 자식 귀하게 여기지 않을 이 누가 있으리요만, 내 자식 귀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일수록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깊은 속내와 함께, 행여 부모로 인해 자기만 잘난 줄 아는 독불장군이 될 것을 경계하라는 숙성된 지혜로움이 담겨 있지 않았던가. 소설가 김훈이 명명한 ‘내 새끼 지상주의’는 자녀교육의 기본 중 기본상식이 화끈하게 무너진 결과에 다름아닐 것이다.

핵가족의 고립은 가족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키는 주범이요 부모-자녀 간 스트레스와 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가족이 건강성을 유지하려면 이웃을 향해 활짝 열려 있어야 하고, 이웃 또한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지금도 무례한 젊은이와 마주치면 행여 봉변당할까 두려워 입을 꾹 다물어 버리고, 막무가내 어린이에게 잔소리라도 했다간 부모로부터 고발당할까 두려워 외면해버리는, 나의 이기적 비겁함부터 반성해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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