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논설위원,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원장

김용호 논설위원
김용호 논설위원

지난 8월 18일, 한미일 정상들이 미국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Camp David)에 모여서 앞으로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3국간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하였다. <표>에서 보는 것처럼 3국 정상은 향후 협력의 기본 방향을 제시한 ‘캠프 데이비드 원칙’과 구체적 행동 계획을 담은 ‘캠프 데이비드 정신,’ 그리고 ‘협의를 위한 공약’이라는 세 가지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그리고 중국의 남중국해와 대만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국제 공급망 리스크 공동 관리, 차세대 기술 개발 협력, 아세안과 태평양 도서국 공동 지원 등을 위해 앞으로 3국이 정상 회의, 각종 장관급 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합의사항을 실천해나가기로 한 것이다.

이번 합의가 나온 배경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과 북한의 위협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불안이 증가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상대적 국력 약화를 메우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유엔을 비롯한 다자기구를 통한 국제질서 유지에 한계를 느껴, 소다자주의(mini-multilateralism) 외교 전략을 활용하고 있는바, 그동안 미국-일본-인도-호주가 참여하는 쿼드(Quad), 호주-영국-미국이 참여하는 오커스(AUKUS) 등을 만들고, 이번에 한미일 3국 협력체를 추가하였다. 가장 핵심적인 배경 요인은 한일관계 개선이 이루어진 점이다. 그동안 과거사 문제 등으로 인한 한일 갈등은 한미일 협력을 어렵게 만들었는데,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담대한 노력으로 한일관계가 좋아지자,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미일 3국 협력의 새로운 틀을 만들었다.

캠프 데이비드 합의는 세 가지 측면에서 한국 외교의 새로운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첫째, 과거에는 한국이 미국과 일본의 주니어 파트너(Junior Partner)였으나, 이번 3국 정상회의를 통해 명실상부하게 대등한 파트너가 되었다. 과거 미국은 일본의 안보를 미국의 핵심 이익(primary interest)으로 생각하면서 일본을 대등한 파트너로 대우한 반면, 한국의 안보는 미국의 부차적인 이익(secondary interest)으로 간주하고 한국을 주니어 파트너로 여겼다.

그런데 중국의 위협이 증가하자, 아이로니컬하게도 미국이 지정학적 측면에서 한국의 안보적 가치를 중시하게 되었다. 또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북한의 위협이 현실화되자, 이를 억제하기 위한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높아졌다. 더구나 한국 기업의 경쟁력으로 인해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의 투자와 기술을 필요로 하게 됨에 따라 한국이 미국의 무시할 수 없는 파트너가 된 것이다.

둘째, 이번 캠프 데이비드 합의에서 3국 간 협력의 지리적 범위와 분야가 과거에 비해 크게 넓어졌다. 과거 3국 협력은 지리적으로 주로 한반도와 동북아에 국한되었는데, 이번에는 남중국해와 양안관계를 포함하여 동남아와 태평양 도서국가를 포함하는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3국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다. 또 협력 분야는 3국 합동 군사방어훈련의 정례화와 북한의 사이버 해킹 공동 감시를 포함한 군사 안보 외에 국제 공급망 구축, 인공지능, 우주, 사이버 등 차세대 기술 개발과 기술 표준화, 개발원조 등으로 확대되었다.

셋째, 이번 합의에서 3국 협력을 정례화·제도화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우선 정상회의, 외교-국방장관 회의, 국가안보실장 회의를 매년 1회 이상 개최하고, 재무장관 회의 등 신규 협의체도 추가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한미일의 국내정치가 3국 협력을 중단시킬 수 있다. 예컨대 내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는 경우 이번 합의의 계속 이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우리 정부는 내년 상반기에 서울에서 두 번째 한미일 정상회의를 개최함으로써 3국 협력의 제도화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합의는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합의사항을 효과적으로 이행하여 성과를 올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이번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3국이 내부나 외부로부터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을 만날 수 있다. 따라서 3국이 내부적으로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또 이행하기 쉬운 합의사항부터 차근차근 성과를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3국이 합의사항 실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서로 정책을 조율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이른 시간 내에 세 나라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각국이 국내외의 비판에 시달리게 되고, 3국 협력의 제도화가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의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대외정책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 진영 간의 갈등이다. 우리 사회가 반일과 친일, 친미와 친중 등으로 나누어져 반목을 거듭하면 국익만 손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여야는 물론 사회 각계 지도자 등을 초청하여 이번 캠프 데이비드 합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진영을 초월한 협력을 구할 필요가 있다. 이런 노력이 1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꾸준히 이루어져야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 정부가 한미일 협력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연루(連累, entrapment)와 방기(abandonment)의 리스크를 잘 관리해야 한다. 전자는 다른 나라와 동맹이나 협력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올가미가 되는 경우이고, 후자는 동맹국이나 협력국을 무조건 믿고 따라가다가 우리가 버림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우리나라가 중국·대만 갈등에 미일의 입장을 무조건 받아들여 한쪽 편을 드는 경우 쓸데없이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우리 정부는 외교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향후 한미일 협력이 중국이나 북한을 자극함으로써 한중관계나 남북관계가 지나치게 경색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 나가야 한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