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논설위원, 전 한국일보 심의실장

정숭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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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말단’, ‘주제에’, ‘~랍시고’, ‘깜도 안 되는 것이’, ‘꼴에’, ….

며칠 전에 ‘제발 입 좀 다무세요’라는 글을 읽다가 떠오른 말들입니다. 그 글은 “한국 정치인들의 말이 갈수록 거칠고 험해지는 것을 못 보겠다. 정치인들아, 제발 입 좀 다물어라”라는 내용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말을 못 하도록 입 다물게 하는 것보다는 말을 가려서 하도록 하는 게 더 좋지 않으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내가 ‘이런 말은 제발 쓰지 맙시다’라는 글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사실이 그렇지요. 입은 밥 먹는 데도 필요한데 입을 다물면 밥은 어떻게 먹나요? ‘제발 입 좀 다무세요’라는 글을 읽은 몇 분이 “입 다물게 하겠다고 그 입을 재봉틀로 박을 수가 있나, 인두로 지질 수가 있나”라는 댓글을 단 걸 보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이 꽤 있을 듯합니다. 또 말을 가리는 건 정치인들은 물론 보통 사람들의 수준도 높여 사회의 소란을 크게 줄여 줄 겁니다. 수시로 곤두박질하는 대한민국의 품격이 크게 올라가는 것이지요.

그래도 ‘제발 입 좀 다무세요’는 한국 정치인들이 얼마나 말을 함부로 하는지, 그 결과 국민의 마음이 얼마나 황폐해지고 심성이 비뚤어지고 있는지를 최근 들어 가장 보여주는 글인 건 맞습니다. 제가 나름 요약, 정리했는데 한번 읽어보세요.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혀로 상대를 죽이고 자신을 불태우는 게 점점 더 심해져 구제 불능 상태인 것 같다. 무엇으로 이 고질병을 없앨 수 있는지 한심하다. 퇴임 후엔 잊히고 싶다던 전 대통령이 틈만 나면 현실 정치에 개입, 물의를 빚고 있다. 그런데,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여당은 좀 내버려 두면 안 되나? 일일이 꼭 맞대응해야 할 일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국민의힘이 하루에도 몇 번씩 벌이는 말싸움은 이제 피곤하고 넌더리, 신물이 난다. 이런 것들을 중계방송하듯 일일이 시시콜콜 전달하는 언론도 문제다. 요즘 언론이 다루는 정치 뉴스는 대부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 잡동사니요 공해일 뿐이다. 좋은 말, 바른말, 곧은 말, 남을 칭찬하는 말만 하고 살기에도 인생은 짧으니 제발 그놈의 입 좀 다물어라!”

한국 언론계 어른들 다 모이면 중간쯤에는 분명히 자리할 임철순(데일리임팩트 주필)이 쓴 이 글은 대차고 시원합니다. (원문은  http://www.freecolum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54를 클릭하면 모니터에 바로 뜹니다.) 그의 글은 그런 장점이 있으나, 앞에서 봤듯, 날 때부터 뚫려 있는 입을 다물게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말은 하도록 하되 가려서 하지 않으면, 즉 점잖고 품위 있으며 남들의 본보기가 되도록 말을 하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떨어뜨리겠노라고 하는 게 더 바람직합니다.

나는 말을 가려 하는 게 그리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얕잡아 보는 말, 상대방의 자존감을 해치는 말만 쓰지 않으면 된다고 봅니다. 바꿔 말한다면, ‘민주적인 말’을 하는 습관을 들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말에는 상대방을 얕잡아 보는 말과 표현이 참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중에서 저 위에 늘어놓은 것들이 대표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몇 개 짚어보겠습니다.

‘일개’는 ‘따위’ 혹은 ‘나부랭이’처럼 상대방의 자존심을 완전히 밟아 뭉개는 표현이지요. “일개 〇〇인 주제에 감히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완전히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네 따위가? 너 같은 나부랭이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개 〇〇 따위인 주제에 네가 감히 나에게?”라고 말하는 사람도 어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건 최악의 어법이지요, 권위 있음을 보이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일 터인데, 사실은 권위가 전혀 없음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말단’이라는 말도 ‘일개’와 비슷한 모멸감을 담은 말입니다. ‘말단 공무원’, ‘말단 사원’ ‘말단 병사’ ‘말단 기자’처럼 어느 조직에나 제일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아래에서 일한다고 뭉뚱그려 ‘말단’의 틀에 집어넣으면 어떤 말단이 좋아하겠습니까.

‘주제에’, ‘~~랍시고’, ‘깜도 안 되는 것이’, ‘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너는 나에게 그러면 안 돼. 너는 나랑 말을 섞을 처지가 아니야. 나와 같은 곳에 서 있으면 안 돼. 저 아래로 가 있어!” 이런 뜻을 내포하는 말입니다. 이런 말은 일도 같이 한 처지에 여행도 함께 하고 밥도 같이 먹은 사이인데도 나는 그 사람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음직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말에도 ‘안면인식 장애’가 있을 수 있는 거지요. 

 명언을 많이 남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한마디. "나쁜 말은 뱉지 말고 삼키시오. 위장 상할 일 없으니." 출처: AZ Quotes.
 명언을 많이 남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한마디. "나쁜 말은 뱉지 말고 삼키시오. 위장 상할 일 없으니." 출처: AZ Quotes.

 

 

 

 

 

 

 

 

이런 비민주적 어휘들은 결국 민주주의를 훼손하게 됩니다. 상대방도 자신과 동등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 말이니까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따위로 말하는 사람은 민주적 혹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입에 담으면 안 될 사람입니다. 상대방을 낮춰 말하는 게 몸에 밴 사람들이 어떻게 평등을 말하는 민주주의자가 되겠습니까.

말을 가리는 건 쉽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어휘만 안 쓰면 됩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법인데, 가는 말에 이런 말이 섞여 있으면 절대 고와지지 않습니다. 듣는 사람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곱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한 가지 더. 우리는 숙성의 민족입니다. 된장 고추장 간장 김치는 물론이고 고기, 생선, 술 등등 모든 것을 숙성해서 먹는 민족입니다. 그걸 자랑으로 삼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생각과 말은 갈수록 ‘날것 그대로’를 좋아하는 야만족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상하고 슬픈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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