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 논설위원, 가정경영연구소장,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신림동과 서현역에서 벌어진 ‘묻지 마 범죄’로 공포와 불안이 가득하다. 흉악 범죄는 주로 중증 정신질환자가 저지르는 것처럼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일부 언론의 태도가 염려스럽다. 민감한 개인 정보인 특정 진단명을 범죄와 연결 지어 보도하는 것은 범죄 발생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일이며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게 하는 일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온갖 편견과 오해, 멸시, 사회적 낙인은 대부분 무지와 무경험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무엇보다 정신질환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 백혈병이나 당뇨, 심장병, 특정 암 같은 병의 환자에게는 그런 시선을 보내지 않으면서 유독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만 냉대하고 낙인을 찍는 것은 고통을 배가시키는 일이며 일상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정신질환은 매우 드물고 희귀한 병이 아니다. 조현병과 주요 정동(情動)장애(조증, 우울증, 양극성 장애처럼 주로 감정에 관련된 장애) 역시 새롭거나 특별한 질병이 아니며 부모의 잘못으로 걸리는 병도 아니고 전염되지도 않는다. 정신질환자는 위험하고 사악한 존재, 불쾌한 존재, 공포나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이웃의 한 사람이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과 함께 사는 가족은 나의 배우자나 자녀, 부모나 형제자매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는, 끝이 안 보이는 장기전으로 탈진하고 포기하는 가족이 많다. 자신과 가족의 한계를 인정하고 비현실적인 기대는 내려놓아야 절망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다.

무엇보다 환자를 존중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사람과 병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며 병을 탓할 일이지 환자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본인은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울까를 떠올리며 무시하거나 윽박지르거나 어린애 취급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끝없는 멸시와 조롱, 사회적 낙인 속에서도 환자가 유일하게 버틸 힘이 존중해 주는 가족의 태도이다.

자신에게 맞는 약을 발견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고 또는 약의 부작용 때문에 약을 끊거나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가 많다. 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는 병식(病識)이 없으므로 진료나 투약, 입원 등을 설득하는 것도 매우 힘들다. 환자의 권리에 관한 법률 때문에 성인인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투약하거나 입원시킬 수도 없다. 하지만 약물 요법은 가장 효과적인 단일 치료법이라는 것이 일관된 연구 결과이다. 그러기에 작은 협조와 진전에도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통해 지속적으로 치료받게 해야 한다.

논리적 근거도 없는, 끈질긴 죄책감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그랬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자기 삶을 샅샅이 뒤지며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하면서 자신을 망가뜨리는 죄책감은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다.

모든 것을 환자에게 맞추어 지나치게 환자 중심으로 사는 일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증상이 악화하여 도저히 함께 살기 어려운 경우에는 입원시키거나 잠시 따로 지내면서 더 나은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지속해 나를 지지해 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만 전달해 줄 수 있다면 정기적인 통화나 짧은 면회로도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환자와 반드시 떨어져 있는 나만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고 내가 즐겁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돌파구도 만들어야 버틸 수 있다. 처음에는 한가하고 사치스러운 소리, 도저히 불가능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그것이 가족과 환자 모두가 살아남는 길이다. 환자 이상으로 도움과 지지가 필요한 사람이 나 자신임을 잊지 말자.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삶까지 무너지면 환자를 돌볼 수 있는 가족자원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의 자조 집단 모임이나 지지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다. 의사도 줄 수 없는 실질적인 해결책과 정보도 얻고, 지지와 공감을 나누면서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편안함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

환자의 병을 주변에 알리는 것도 가족의 고민이다. 병은 자랑해야 낫는다는 말이 있지만 숨기기에 급급한 가족은 말도 못 하고 냉가슴만 앓고 있으니 사회적 지원이나 예산도 빈약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모든 사람에게 문제의 모든 측면을 다 설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병에 대한 정확한 지식 위주로 사실을 알려주어야 서로 당황하고 상처받는 일을 줄일 수 있다. 그것이 그들의 소외감과 원망을 방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평소 가족끼리 정신질환에 대해서 개방적으로 대화하고 서로의 생각이나 감정을 나누는 것도 유익하다. 서로의 생각이나 병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과 속도를 존중하면서 타협하고 조정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의견이 서로 팽팽하게 맞설 경우 누가 최종 결정권을 갖는 것이 좋은지 미리 합의해 두면 갈등과 불화를 줄일 수 있다.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나 재산에 피해를 주는 행동, 법을 어기거나 마약이나 알코올 등 심각한 물질 남용과 관련된 경우, 특히 폭력이나 방화 등으로 안전에 치명적인 위협을 받을 때는 즉시 경찰이나 119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가족 일에 어느 누가 경찰이 개입하기를 원하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외면할 이유가 없다. 평소에도 재발 징후를 신속하게 포착하여 조기에 개입하면 치료 기간을 줄이고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응급 전화번호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의 연락처를 잘 보이는 곳에 적어 두는 것도 방법이다.

망상이나 환각 때문에 횡설수설하는 환자의 얘기에 일일이 논리적으로 대응하거나 논쟁을 벌이는 일은 피해야 한다. 외국인과 대화한다고 생각하고 내용보다 환자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공감해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안전에 위협을 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적절하게 무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협상의 대상이 절대 될 수 없는 행동에 대해서는 몇 가지 규칙과 벌칙을 세우고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된다.

이전에 알던 사람이나 친구는 점점 멀어지고 결국 옆에 남는 건 가족뿐이다. 부정, 슬픔, 무기력, 우울, 외로움, 소외감, 버림받은 느낌으로 괴로워하는 환자에게는 오래도록 지속해 사랑과 지지를 보내 주면서 자신을 믿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누군가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가족이다.

환자의 인권과 사회 안전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환자의 목소리를 배제한 정책과 제도도 관점을 바꾸어 개선해야 한다. 무조건 격리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들의 한숨을 외면하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지 않으면 천문학적인 국가 예산을 투입하고도 최악의 사태를 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환자와 가족, 의료진 그리고 현장 실무자와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하여 ‘사법입원제‘ 같은 제도도 더 깊이 고민해 볼 때다. 무엇보다도 치료를 포기하거나 환자를 방치하는 일 없이 정신질환은 반드시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급선무다. 그리고 환자와 가족, 일반인들을 위한 교육을 통하여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를 우리 함께 만들어 나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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