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보 논설위원, 한국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 회장

민경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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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전문가들의 예측대로 이번 여름은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점심 후 40분 정도 걷기를 거의 매일 해온 필자는 이달 들어 들쑥날쑥하고 있다. 근무지 근처에 유명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데이터센터 공사현장’에서 언제부턴가 점심시간이 되면 불법이 횡행한다. 차량마다 에어컨을 켠 채 꼭꼭 창을 닫고서 쉬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수십 대 차량이 30분 이상 공회전하는 것은 일산화탄소와 탄화수소, 미세먼지 발생은 물론 에너지 낭비를 유발하고 자신의 건강에도 해롭다. 대기환경보존법 제59조(공회전의 제한) 위반으로 과태료 대상이기도 하다. 몇 번이나 신고할까 하다가 이렇게 더운 날 오죽했으면 하는 생각에 참고 있다.

이런 일은 한여름 공사현장이면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는 다반사일 것이다. 건설사나 발주처에서는 이런 사정까지도 살펴야 튼튼하고 멋진 건물이 완공되지 않을까 싶다. 기후의 변덕은 태풍 카눈의 이동 시뮬레이션을 추적했던 우리나라를 비롯한 관계국(일본, 중국 등), 미국 해양대기청(NOAA)조차도 거의 매일 경로를 수정하다가 코앞에 와서야 우리나라를 관통한다는 발표(8월 8일)를 했다. 슈퍼컴퓨터도 기상 전문가도 당황했다고 고백하고 있을 만큼 극한기상은 이제 식량안보까지 위협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을 비롯한 국제기구는 물론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업전망 2030보고서’)도 식량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식량위기의 근본 원인으로는 매해 더해지는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와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 가난과 불평등으로 인한 경제위기, 그리고 가축용 곡물소비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로 보고 있다. 더욱이 러-우 전쟁은 식량 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어서, 곡창지대의 밀·귀리·콩 등의 감소는 물론 생산된 물량의 유통(러시아의 흑해 곡물 수출협정 탈퇴)마저 어려워짐에 따라 세계 곡물 수급전망은 매우 힘든 상황이라고 WFP는 밝히고 있다.

급기야 지난 2일 인도 정부가 바스마티 품종을 제외한 쌀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평균 강수량의 10배가 넘는 비가 몬순 시기에 내려 침수 피해가 더했고, 이어진 폭염으로 농작물 작황 부진이 예상을 뛰어넘게 되자 자국 내 쌀 가격이 치솟아 내린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한다. 인도는 세계 쌀 수출량의 40%를 차지(2022년 기준)하는 최대 수출국으로서 많은 나라가 인도산 쌀에 의존하는 만큼, 세계 쌀시장의 붕괴를 우려한 국제 통화기금(IMF)은 금수조치 철회를 인도 정부에 촉구했지만 묵묵부답이다. 더구나 설탕 수출에까지 제동을 걸 수 있다는 뉴스까지 들린다. 인도 인구가 14억 명 이상으로 중국을 넘었다고 유엔경제사회처(DESA)가 지난 4월 말 공식 발표했다. 아마도 식량안보 차원에서 내린 자구책이 아닐까 싶다.

WFP는 유엔과 유럽연합 공동으로 지금 세계는 ‘심각한 식량 불안정’에 직면하고 있고,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면서 ‘2023 식량위기에 대응하는 글로벌 네트워크(Global Network Against Food Crisis)’ 연례보고서를 발표했다(2022년 5월 4일). 심각한 식량 불안정(Acute food insecurity)이란 적절한 식량 섭취가 없으면 생명이나 생계가 즉각적인 위험에 빠지는 상태를 뜻한다고 하는데, 2021년 대비 33%(6500만 명)나 급증한 58개국 2억 5800만 명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제 식량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어쩐지 실감이 나지 않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식량 하면 쌀을 염두에 두는 데다, 매년 풍년이 드니 식량 걱정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우리나라 식량안보 수준은 5점 척도평가에서 2.4로 매우 낮게 평가되고 있다. 이는 전체 식량 자급률이 46.7%에 그치고 있어 식량위기가 닥치면 국내 가공식품·소비자물가가 급등하게 되고, 수입곡물 전방산업의 생산 활동도 어려움이 가중되는 등 국민경제에 대한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30 참조).

국토의 63% 정도가 산인 나라(산림청 홈페이지)에서 주식인 쌀을 자급자족하고도 남아서 비축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았으면 한다(통계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 세계 30억 명 가량이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다고 하는 것에서 어쩌면 비상상황이 닥칠 때 타 곡물교환권(?)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이제 기후변화에 따라 재배 적지(適地)가 바뀌고 이상기후가 빈발하면서 농가경영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농가 단위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각지대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농업이 국민 식량안보의 교두보라는 점에서 농업·농촌의 가치와 필요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그 일환으로 1960~70년대 대학생들의 농촌 봉사활동 재개를 건의해 본다(물론 학교와 기업·정부 등이 학점, 취업가산점 등을 논의해 결정해야 하지만). 농촌의 삶을 체험해 보고 직접 땀 흘려 일해 보면, 먹거리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기후변화에 따른 농산물 자급률 문제와 바이오 농업, 푸드테크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 농민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농촌의 존재 이유와 미래농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특히 자극적인 모바일 환경에서 벗어나 아날로그 낭만을 즐기는 귀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농촌에는 도시에서 잃어버린 것이 아직 있다. 아침이슬 밟으며 걷기, 어른들께 인사하기, 정자에서 낮잠 자기, 냇가에서 멱감기, 밤하늘의 별 보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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